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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사 Feb 19. 2024

자격증 하나는 따야지_ 특성화고 필기시험 면제자 검정

_ 08. 90분 동안의 졸업식은 9000줄이 넘는 쓰기로


: 08. 자격증 하나는 따야지_ 특성화고 필기시험 면제자 검정


"이수는 실습 나갔다며? 방학인데 실습도 나가?" 먼 친척뻘 되는 아이도 청주공고에 다니고 있다. 과는 다르지만 학년은 같은데 아이가 실습 나갔다는 소식을 우리 엄마가 듣고 오셔서는 내게 전했다. 이수는 취업준비반이라서 여름방학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나가고 있다고 했다. "너는 신청 안 했어?" 아이는 안 했다고 했고, 나는 또 잘했다고 했다. 취업은 늦게 해도 되니까 학교 다닐 때만큼이라도 편히 다니라고. 엄마품에 있을 때가 제일 편다고.


나 대학 갈까?

아무리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아이라지만, 아무리 내가 너의 엄마라지만. 난데없는 얘기에 뒷목이 땅기기 시작했다. 졸업을 하고, 기술공으로 취업을 하여, 기계 조작을 하고 살아갈 아이의 모습을 그려볼 때마다 명치끝이 아렸다. 기술만 있으면 평생 먹고살 걱정 없다며, 무엇보다 기술이 최고라고 외치고 다니는 나이지만, 종일 서서 기계를 만지고 다닐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려왔다. 짠해라 내 아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산업체에서 3년을 일하면 '특성화고 전형'(재직자)으로 대학을 갈 수 있다는 말은 아이가 1학년 때 학과 설명회에 참석해서 처음 들었다. 방위산업체에 들어가면 군대와 3년 경력을 한 번에 얻을 수 있다는 말도 그때 들었다. 특성화고에 깜깜이였던 나는 특성화고라는 곳이 너무나 궁금했다. 아이가 어떤 기술을 갖게 될지, 아이가 실습을 하며 안전할 수 있는지. 혹시라도 아이의 마음이 변해 취업이 아닌 대학을 간다고 하면 갈 수 있는지.


3학년 학기 초에도 학부모 총회를 겸한 설명회가 있었다. 어머님이 되어 두 번째로 방문한 학교는 더욱 시설이 좋아졌다. 무심천 벚꽃이 한눈에 보이는 도서관은 웬만한 커피숍보다 뷰가 좋았고, 아이들이 실습하는 기계도 최신기종으로 바었다고 했다. 1학년 학과 설명회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대입관련해서도 진로지도 선생님이 오셔서 설명해 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는 대학 얘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기 때문에 건성건성 들었다.


이후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에서는 다른 거 다 필요 없으니 안전하게 졸업만 시켜달라 했다. 실습은 안 나갈 수 있으면 안 나가고 싶다고도 했다. 현장실습 나갔다가 다치거나 사망한 아이들을 뉴스에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담임 선생님께 다른 거 다 필요 없다고 했지만, 자격증 하나만큼은 꼭 취득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특성화고 졸업자가 자격증 하나는 따고 나와야지. 이는 아이에게도 줄곧 했던 말이다. 성적은 안 볼 테니까, 자격증은 꼭 따야 해! 니 애미가 자격증 사냥꾼이라고!!


청주공고 지춘호 도서관_ 2023.03.29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하여 달라질 건 없었다. 아이는 여전히 게임을 사랑했고, 나는 아이를 사랑했다. 그래도 특성화고를 갔으니 자격증 하나만은 꼭 따서 졸업하길 원했다. 큰 바람은 아니지 않은가? 특성화고를 졸업했는데 자격증 하나 없다? 진짜 공부 안 한 거 아니니?라고 생각했다.


2학년때부터 때마다 자격증 시험을 봤지만, 아이는 필기에서 계속 떨어졌다. 필기시험에 합격해야 실기시험을 볼 수 있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하니?! 56점, 58점, 54점. 늘 간당간당한 점수로 떨어졌다. 아이는 간당간당한 점수에 아쉬움을 표했지만, 60점을 맞아도 합격이고 100점을 맞아도 합격인 것처럼 59점을 맞아도 불합격이고 43점을 맞아도 불합격이다.


(공부 진짜 안 하는구나!!)라는 말은 속으로만 삼키고 "괜찮아. 다음에 또 보면 되지. 다음엔 열심히 CBT 돌리는 거다!"라는 말만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미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는데 잔소리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잔소리한다고 안 하던 공부를 할 것도 아니고.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기회가 또 주어진다는 자격증의 매력을 나는 알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특성화고 재학생에게는 필기시험 면제라는 아주 기막힌 제도가 있다. 아래는 2024년도 기능사 시험일정표이다. 제2회 차와 제3회 차 사이에 ⊠ 표시된 곳이 있다.


< ⊠ :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 및 특성화고 등 필기시험 면제자 검정(일반 필기시험 면제자 응시불가) >라고 되어있는데, 이게 바로 특성화고 아이들이 자격증 한 개도 못 따면 안 될 이유이며, 진짜 공부 안 한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물론 이건 자격증사냥꾼인 내 기준이긴 하지만, 특성화고 아이들에게는 일반인 응시자들과 다르게 기회가 한번 더 주어진다.


2024년도 기능사 시험일정 _ 큐넷


필기시험 면제자 검정. 필기시험에 합격해야 실기시험을 볼 수 있는 일반 응시자와는 달리, 특성화고 아이들에게는 필기시험 없이 실기시험을 치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 표시의 실기시험 접수는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 및 특성화고' 학생들만 가능하다. 


반 응시자들은 이 기간에는 실기시험을 볼 수 없다. 필기를 합격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까, 1회 차 시험에 필기합격한 일반 응시자의 실기시험 기회는 4번이 되는 것이다. 칸은 다섯 칸으로 나와있으나 ⊠표시의 실기 시험은 일반 응시자들은 응시불가이다.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 왜 나는 네 번만 기회를 주고 특성화고 애들은 다섯 번을 줘? 게다가 2회 차 실기시험 접수는 4월 23일(시작일 기준)이고, 3회 차 실기시험 접수는 7월 16일(시작일 기준)이다. 자격증 따보겠다고 큰맘 먹었는데, 실기시험 간격이 너무 벌어진다. 억울할 수 있다. 어떻게 아냐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특성화고에 재학 중이라고 해서 모든 기능사 시험에 필기면제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관련과 자격증만 가능한데, 우리 꼬맹이 학과의 경우 두 개의 기능사 자격증이 필기면제에 적용된다. 또 하나, 관련과 자격증이라고 해도 필기면제는 자격증 '한 개만' 가능하며, 3학년만 적용된다. 이 대목에서 일반응시자의 억울함이 조금 누그러졌을까요? 저는 몹시 억울합니다. 왜? 왜? 왜? 한 개만 되는 건데요?!


안전하게 졸업할 것과 자격증 하나만이라도 취득할 것을 바랐던 엄마의 마음은 뜻대로 이루어졌다. 아이는 오늘 안전하게 졸업을 했고, ⊠ 표시의 필기면제자 검정으로 실기시험을 치른 아이는 자격증 하나를 취득했다. 고마워. 고생했어 내 아들. 담임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용화사 부처님의 은혜에도 감사드립니다. :)



_ 90분 동안 진행된 졸업식 단상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에서 성인이 된 아이의 졸업식은 제게도 의미 있더라구요. 특성화고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마라는 이름이 내게 처음으로 주어진 것만큼이나 낯설었습니다. '특성화고 엄마'라는 이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아이는 졸업을 했습니다. 뒤돌아서면 까먹는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졸업식만이라도 기억하자 싶어 쓰기 시작했는데 90줄, 900줄 점점 길어집니다. 9000줄까지는 안 갈 수도 있고,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9000줄이라는 어감이 좋아(뭔가 대단히 길어 보이기도 하고) 소제목으로 얹어봤습니다. [ form_ Arisa ]


_ 사람 입장에 따라 생각이 이렇게 달라지네요. 특성화고에 다니는 아이가 있으니, ⊠ 표시의 기회가 왜 이리 감사한지요. 사람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로 대신해 볼게요. 저도 제 아이가 특성화고에 다니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D


01. 기본에 풍성함 약간 얹어 7만 원_ 졸업식 꽃다발

02. 내 졸업은 기억 못 해도 아이의 73회 졸업은 기억하리라! _ 졸업식 시작

03. "그렇다면 저는 특성화고를 보내겠습니다"_ 중3 담임선생님 면담

04. 내 아이 성적표도 안 보면서, 조지아텍 성적표를 매 학기 보고 있다!_ 현실판 SKY 캐슬

05. 특성화고 보내겠다고 과외시키는 엄마라니 _ 특성화고 특별전형

06. 아이의 세상은 내 세상보다 위대하고 찬란하다 _ 엄마와 아이

07. 남의 아이만 빨리 크는 것 같았는데 졸업이라니 _ 이제 졸업식 시작

08. 자격증 하나는 따야지_ 특성화고 필기시험 면제자 검정

09. 나를 잠식시키는 공포(Phobia)_ 안!전!제!일!

10. 안전하게 졸업만 하게 해주세요 _ 더글로리 용화사

11.



# 특성화고

# 졸업

# 대학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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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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