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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나린 May 16. 2023

내가 너 때문에 승진을 못했어!

< 영광 없는 폐허 >

햇볕이 뜨거워도 컨테이너로 만든 기자실은 서늘했다. 허술한 틈새로 물기를 머금은 찬바람이 들이찼다. 삐걱거리는 철재 미닫이문은 늘 이가 빠진 것처럼 닫히지 않았다. 기자들은 낡고 허술한 문을 여닫을 때마다 불만을 쏟아냈다. 돈주머니가 넉넉한 관공서지만 새집 이사를 앞둔 탓에 기자실은커녕 직원들 사무실도 손볼 여력이 없었다. 이런 사정에 이삿날만 손꼽아 기다릴 뿐이었다.


미닫이문을 요란하게 열어젖힌 한 여성이 씩씩거리며 기자실로 들어섰다. 얼마나 온 힘을 다해 문을 열었는지, 문짝이 귀퉁이에 벌러덩 드러누운 것만 같았다. 저것이 좀 전까지만 해도 삐그덕거리던 것이던가.

여성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격정의 분노가 쏠린 미간을 찌푸리며 그가 소리를 내질렀다.

"○○○가 누구야!"

내 이름이다. 호명된 나는 반사적으로 뒤돌아 그를 바라봤다. 나는 나를 찾아온 이를 알지 못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나는 누군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는 나를 향해 곧장 걸어왔다. 옳다구나, 너구나. 그도 그럴 것이 내 이름석자는 누가 봐도 여성의 것이고, 기자실에 여성은 내가 유일했다.

엉겁결에 의자에서 일어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누구시죠?"

내 질문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누군지도 설명하지 않은 채 냅다 쏘아붙였다.

"너야? 네가 ○○○야?"


'기자님'은 아니어도 '기자'라는 직함은 붙일 만도 한데, 그는 내 이름 석자만 고집했다.

내가 어제 무슨 기사를 썼더라. 오늘 신문에 뭐가 나왔더라. '기자'라고도 안 부르는 걸 보면 기사 때문이 아닌가. 개인적인 일인가. 내가 이 중년 여성과 무엇으로 얽힌 걸까. 도대체 이 여성은 누구란 말인가.

오만 물음표가 스쳐갔지만, 스스로 답을 찾을 도리는 없었다. 답은 분노지수가 극에 달한 여성만이 알고 있다.

"저 맞는데, 누구세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그는 당장이라도 내 멱살을 잡을 듯이 바짝 다가서서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나를 몰라?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꼬라지가 됐는데? 내가 7급만 17년이야. 너 때문에 내가 승진을 못했어!"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승진을 막았단 건가.

어리둥절한 이 상황을 이해하려 나는 잔뜩 상기된 그의 말들을 애써 조합했다.






사건은 한달도 전에 쓴 기사에서 시작됐다. 지역의 한 영농조합법인이 수년동안 사료 생산 실적을 부풀려 수억원의 보조금을 부당하게 챙겼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던 검찰이 보조금을 지급한 관공서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일이 있었다. 압수수색 소식을 듣고 역 취재한 검찰 수사 사건이 다음날 1면 머리기사로 실렸다. 단독기사였다. 단독기사는 후속기사로 이어서 치고 나가야 했고, 기사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이어졌다. 적잖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관공서가 증빙서류조차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는 지적 같은 것들.


나를 찾아온 중년 여성은 그 보조금을 지급하고 관리감독해야 했을 관공서 해당 부서 공무원이었다. 한달여 전 기사에는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그는 업무를 소홀히 했다며 감찰을 받고 있었다. 승진 대상에서도 당연히 누락됐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이 내 탓이라 비난했다.

"네가 기사만 안 썼어도 내가 승진했을 거 아냐!"


어처구니없는 궤변이다. 더는 들어줄 요량이 없었다. 흥분해 널뛰는 그에게 할 말이 없으니 그만 나가달라 부탁했다. 최대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중이었다. 고막을 찌르는 그의 말을 한마디만 더 듣고 있다간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컨테이너 밖으로 새어나간 소란에 홍보담당 공무원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가시죠."

여성은 꿈쩍도 하지 않고 신경질을 퍼부었다.

"에헤이, 여기 이러는 곳 아닌데."

점잖은 체 멀찍이서 구경하던 기자들이 한두마디 보탰다. 그제야 여성은 툴툴거리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가는 동안에도 분이 안 풀리는지 씩씩거렸다. "내가 너 두고 볼 거다."





그는 정말이지 나를 어지간히도 두고 봤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그는 나와 회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그의 근황을 접한 것은 우연히 법원에서였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6급으로 승진을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당시 보조금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소명하지 못했고, 이후로도 직원과의 불화, 업무태만, 근태불량 따위의 일들로 몇번의 감찰을 더 거쳐 결국 7급으로 강등됐다. 징계를 받아들이지 못한 그가 징계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것을 기사로 쓴 것이 화근이었다. 여러 공무원들이 비슷한 소송을 진행 중이란 기사였다. 여러 사례 중 하나였다. 다만 이번에는 그가 누군지 알았을 뿐이다.


그 짧은 기사 한줄이 그 6년 전의 격분 버튼을 눌렀던 모양이다. 그는 내 휴대전화 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문자폭탄을 보내기 시작했다. 기자의 전화번호라는 게 만인의 번호라, 마음만 먹으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관공서 벽면마다 붙은 것이 출입기자 명단이니, 6년 전부터 저장해서 두고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폭탄으로 투척한 문자메시지의 요지는 '이 모든 사단이 6년 전 네가 쓴 기사에서 시작됐다'였다.

손가락이 아팠는지 감감무소식인 반응에 답답했는지, 곧 문자는 전화로 바뀌었다. 그인 줄 모르고 받은 전화를 끊어내느라 애를 먹는 대신, 받지 않을 전화번호도 저장해야 한단 지혜를 얻었다.

그는 회사에 나 같은 기자는 잘라야 한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내가 기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회사가 시큰둥하자 그는 언론중재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통화 끝머리에 '마음대로 하시라'고 한 내 말이 그의 고삐를 당긴 것일지도 모른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를 당하면 답변서를 작성해야 한다. 중재위 조정일에는 데스크가 출석하지만, 답변서를 작성하는 것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어떻게 취재를 하게 됐으며, 얼마나 최선을 다해 취재를 했는가를 나열해야 한다. 10포인트의 글자 크기로 A4용지 2~3장이 넘어가는 것은 예사다. 답변서 내용을 뒷받침할 근거로 취재수첩을 뒤져 휘갈겨진 글씨를 복사하고, 녹음본도 찾아야 한다.

기사를 문제 삼는 이유가 터무니없을지라도 소명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언론 권력의 피해자를 구제해 줄 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나는 감히 귀찮은 일이라 여겼다. 깜지 같은 답변서를 쓰면서 답답한 마음이 가슴을 짓눌렀다.

10년간의 기자생활 동안 두번의 언론중재위원회를 겪었다. 중재위 결론은 모두 기사는 문제없단 것이었지만, 과정상의 괴로움은 어찌할 수 없었다.

같은해 한두달 간격으로 제소됐고, 이때가 두번째였다. 그것도 해봤다고 능숙한 답변서에 씁쓸했다.

앞선 첫번째 중재위 결론은 나왔지만, 같은 일로 명예훼손으로 고소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이었다. 내 취재지시를 받은 후배기자들도 함께 걸려 있었다. 집채만 한 돌덩이가 온몸을 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지방검찰청과 고등검찰청, 다시 고등법원을 거쳐 꼬박 2년이 걸렸다.


전투력을 상실한 벌판은 회의감만 남은 폐허였다.

내가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이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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