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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나린 May 22. 2023

알 권리는 어디까지인가요?

< 기레기와 옐로페이퍼 >

낡은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순찰차와 형사과 스타렉스, 구급차만으로도 버거웠다.

이럴 땐 차가 없는 게 속 편하다.

이 소란을 동네 사람들이 놓칠 리 없었다. 비탈진 도로 위, 빌라 옥상, 곳곳에 모인 이들은 아파트를 내려다보며 숙덕거리다가 혀를 찼다.

이름에 비운이 깃들었다는 동네다. 본래 그 뜻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음절의 소리대로 한자에 엮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사고가 터지는 탓에 경찰과 기자 사이에선 꽤나 골칫거리 동네였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를 거꾸로 걸어올라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냐는 질문에 간단히 신분을 밝히고 다시 재빨리 질문을 던졌다.

"간밤에 시끄럽지 않으셨어요?" "무슨 소리 못 들으셨어요?"

"글쎄요." 문밖으로 빼꼼 내민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들어가 버렸다.

다시 한층 더 위로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5번째 집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얀색 보호복을 입고 있는 남성이 절반쯤 열린 문고리를 잡고 서있었다.

어리둥절하게 선 남성의 어깨너머로 검붉게 덩어리 진 이불가지가 놓여있었다. 주변으로 신문지가 흩날렸다.

꺼림칙한 비린내가 코를 뚫고 뇌리에 꽂혔다.

'아, 여기구나.'





20대 남성이 이곳에서 경찰에 붙잡힌 지 불과 1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와 그의 사촌동생은 전날 저녁 이곳, 이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누구도 제 발로 나오지 못했다.

그는 또래의 사촌동생을 잔인한 방법으로 떠나보냈다. 오랜 기간 범행을 준비했고, 범행 수법은 지극히 원시적이라 더 참혹했다.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 곪아버리고 삐뚤어진 원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신 새벽을 지나, 날이 밝고, 비집고 나온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그는 전화기를 들어 112를 눌렀다.

그의 사촌동생은 처참한 모습으로 들것에 실려 떠났고, 그는 경찰에 끌려나갔다.


모든 이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범행도구였다.

흔히 강력범죄 기사에서 범행도구는 크게 두가지다. 흉기냐 둔기냐. 과일 깎는 과도, 사시미라고 불리는 회칼, 도끼나 송곳, 날카로운 유리파편처럼 끝이 뾰족한 건 흉기. 야구방망이나 각목, 망치, 몽키스패너, 벽돌이나 짱돌까지 날카롭지 않은 것들은 둔기.

그가 사용한 범행도구는 낯설었다. 끝이 날카로우니 흉기의 범주에 들어갔지만, 기존의 알고리즘에서 크게 벗어났다.

경찰이 그의 컴퓨터 기록을 분석했다. 낯선 범행도구가 나오는 잔혹한 미국 공포영화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영화를 정주행한 그의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이 펼쳐졌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이틀에 걸쳐 기사가 보도됐다.

공포영화를 본 기록이 확인됐다는 내용의 내 두번째 기사를 보던 한 기자가 비아냥거렸다.

"옐로페이퍼냐? 뭘 이런 것까지 쓰냐."

만으로 1년 된 기자가 제 딴에는 단독으로 취재한 내용이라 아침부터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가 있던 날이었다.

옐로페이퍼. 형편없이 자극적이고 저속한 내용이라고.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고.

그 기자는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댔다.


얼굴로 피가 쏠리고 있는 게 초단위로 느껴졌다. 눈앞에 거울을 들이밀지 않아도 얼굴이 얼마나 시뻘겋게 달아올랐는지 알 수 있었다.

기사를 놓쳐 시쳇말로 '물을 먹은' 그의 분풀이 같은 비아냥을, 나는 가뿐히 털어낼 수 없었다.





지역 언론사의 생태계에서 기자 짬밥은 돈과 권력을 따라간다. 경찰 기자가 경력을 쌓으면 법조 기자가 되는 것도 같은 섭리다. 기자 수가 턱 없이 부족한 지역일간지에서는 경찰 기자가 법조 기자를 하기도 한다. 경찰 기자를 맡아줄 후배가 없는 현실이다.

지방도시에서 법조 기자의 일과는 법정을 돌아다니며 재판 일정을 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형사재판은 죄명을, 민사나 행정재판은 원고나 피고를 눈여겨본다. 적당한 재판은 직접 방청하며 취재하고, 판결까지 재판 과정을 따라간다.


그날은 살인 사건의 두번째 재판이 있던 날이었다. 이혼 후 어려운 생계를 이어오던 젊은 여성이 어린 아들을 살해한 사건이었다. 오랜 우울증으로 범행 후 자신의 삶도 끝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한 채 법정에 선 그는 위태로워서, 그래서 애처롭기도 했다. 모든 죄를 인정하니, 더 다툴 것도 없어 검찰의 구형이 예정된 날이었다. 판사에게 몇년의 징역을 선고해 주십사 요청하는 날이다.


법정 문고리를 잡는데 한 노부부가 다가왔다. 그들의 발걸음은 신중했고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말의 틈마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소리에서는 조급함이 묻어났다.

"저기... 혹시, 기자님이신가요? 지난번에도 방청하러 오셨죠?"

직감으로 알았다. 그들은 여성의 부모였다.

문고리에서 손을 떼고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수첩에 꽂힌 명함 한장도 건넸다.

내 신원을 확인한 그들은 더 안절부절못했다.

"기자님, 제발 기사는 안 써주시면 안 될까요?"





난감했다. 이미 경찰수사 단계에서 기사가 나온 사건이었다. 게다가 기사를 쓰지 않을 거라면, 내가 여기서 한두시간을 보낼 이유도 없었다.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그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하기엔 그들의 눈빛에 서글펐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눈물이 글썽거렸다.

턱 하고 막히는 숨을 내적인 한숨으로 달래며 답했다.

"오늘은 제가 방청만 하겠지만, 판결이 나오면 좀 어렵습니다. 다른 기자들도 있고요."


다행히 이날은 금요일이었고, 법정에 다른 기자들은 없었다.

금요일은 휴일이고, 나는 내 피 같은 휴일을 쪼개 자의에 의해 나온 것이니, 회사에 보고할 이유가 없었다.

취재 중인 다른 기자들도 없으니, 물을 먹을 일도 없다.


나는 한시적인 침묵을 선택했다. 예정된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불과 한달짜리 침묵이었다.

비정한 어머니는 뒤늦게 눈물로 호소했다. 어미 손에 세상을 떠난 아이는 말이 없고, 그러니 용서를 구할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어머니는 감히 바라고 있었다. 그런 자식이라도 남은 삶을 살아낼 수 있길. 그는 가슴팍을 쥐어뜯으며 방청석 한켠을 끝까지 지켰다.

법정을 나서며 먼발치에서 그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숙여 짧게 인사했다. 연민과 격려를 직업적 거리감에 숨겼다.


내 짧은 배려가 별다른 도움이 될리가 없다.

한달 뒤 나는 기계적으로 기사를 썼다.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자판을 눌러쓴 기사에 감정따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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