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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Jul 21. 2023

우울과 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

타인에게 도움을 청할 용기


 동기가 사라졌다.


 3학년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단톡방에서 한국인 대학 동기 한 명이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동기는 나보다 몇살 많은 오빠였는데 생일날 친구들과 즐겁게 게임을 하고 집에 돌아가 의문의 글을 남긴 뒤 돌연 어디론가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영사관과 공안 사무소에 실종신고를 하고 그가 갈만한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그를 찾았다. 그렇게 다시는 오빠를 볼 수 없었다.


 나와 우리 과 동기들은 모두 검은색 옷을 입고 학교 대신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그 주의 모든 수업은 모두 휴강 처리되었다. 차례로 교수님들과 학과장과 기타 등등의 인물들이 장례식장에 나타나 얼마나 동기 오빠가 착한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했다. 동기 오빠의 친구들은 오빠가 생전 주변의 누구에게도 심적인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혼자 담아두는 편이었다고 했다.


 오빠의 일이 있기 이전, 다른 동기 한 명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나는 그때 인생 처음으로 장례식에 참석했고 그건 많은 내 동기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또 다른 사고로 한 명의 동기를 잃었다는 슬픔에 참담해했다. 누군가는 자조 섞인 말로 "우리 굿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는데, 나는 교회를 다니지만 굿을 해서 더 이상 우리에게 아픈 일이 없을 수만 있다면 정말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 또한 그와 같이 유학생활 도중 우울증이 심해져 휴학을 결심하고 귀국하려던 때가 있었다.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으로 발병한 공황발작과 우울증에서 비롯된 인지적 왜곡이 인간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갔다. 과 특성상 2년 휴학만이 가능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내 결정을 말렸지만 정서적으로 크게 불안정한 상태로 졸업까지 버텨낼 힘이 없었다. 하루는 휴학 전 동기에게 부탁받은 일이 생각나, 갑작스럽게 결정된 휴학 때문에 부탁을 들어줄 수 없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려는 찰나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휴학 이야기를 하며 돌연 엉엉 우는 나에게 그는 무슨 일이 있는지를 물었고 나는 모든 사연을 이야기하며 말했다. "진짜로 죽고 싶다"라고.


 그날 이후로 그는 매일 나에게 안부 연락을 했다. "오늘은 좀 어때?", "오늘은 좀 괜찮아?", "밥은 먹었어?"... 단순한 안부이며 내 답변 이후로 별다른 대화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사소한 호의가 사무치게 고맙고 또 미안했다. 오래 만난 여자친구가 있어 나에게 매일같이 안부를 묻는 일이 어려울 게 분명함에도 동기는 매일같이 연락을 주었다. 나는 내가 죽을까 봐 걱정하는, 친하지 않은 동기의 선한 호의 덕분에 조금은 살고 싶어졌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되었다. 사람은 때때로 아주 작은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하나보다.


 나는 이후 적극적으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붙들며 의지했다. 예상치도 못했던, 친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다. 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아직까지도 그렇다. 이전에는 나만의 기준에 따라 사람마다 차등적으로 내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상황에 따라,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이야기한다. 예전 같으면 내 속내를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을 사람들에게조차 내 일들을 털어놓자 그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함께 아파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나아지도록 관심을 가져주고 기꺼이 나의 이겨내는 과정을 함께 해 주었다. 나는 너무나도 고마워서 그 사람들이 힘들 때 다시 그런 존재가 되어 되갚아주기 이전까지는 죽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기를 포기했다.


 나는 그렇게 아픔에서 벗어났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게 누구든, 무엇이든 가릴 것 없이 잡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붙들었다. 극심한 우울감이 나를 끌어당겨 무력하게 만들지라도 나는 나의 감정을 토해내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고 동시에 주변 사람들을 더욱 의지하고 껴안았다. 그것이 나를 살렸다. 그러나 동기 오빠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운이 좋고 낯이 두꺼워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혀서라도 나 살고자 했지만 선하고 속깊었던 동기 오빠는 그러지 못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까 두려워 마음의 그늘을 드러내지 않았고 비집고 나오는 감정은 속으로 억눌렀을 것이다. 나는 진작 그의 아픔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마음에 큰 부채로 남아있다. 동기 오빠의 발인날 나는 스스로와 한 가지 약속을 했다. 타인의 정서적 지지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게 누구든 꼭 힘이 되어 주겠다고. 남의 아픔을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나를 살렸던 그 위로들처럼 나 또한 어떤 누군가에게 꼭 위로가 되겠다고. 세상에 의사만 사람을 살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작가이자 방송인인 허지웅이 혈액암을 투병하고 나서 쓴 글이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았다. 어린 시절부터 혼자 살아왔고 무슨 일이든 혼자 버티는 것이 익숙했던 그는 투병생활 중에도 아무에게도 함께 있어 달라고,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도움받을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나 또한 그에 공감한다. 모두 각기 다른 이유로 우울과 분투하고 있을 수많은 이들에게, 나는 당신이 주변에 있는 그 무엇이든 붙들기를 바란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군가 당신을 거절한다고 해도 굴하지 말라.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다시금 도움을 청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정말 간절히, 당신이 살아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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