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댈곳 없는 흙수저, 비혼의 퇴사 이야기

by 행백이


이건 흙수저에 비혼인 내가 재취업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적지 않은 나이에 무작정 퇴사한 이야기다.

백수 1년 10개월차에 네이버 블로그에 썼던 글을 조금 더 다듬어서 브런치 첫 글로 올려본다.




전 직장은 원래도 업무량이 적지는 않은 회사였는데,

밤 10시에 퇴근하면

'아 오늘은 좀 일찍 퇴근했네..' 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1년 좀 넘게 업무량이 정말 많았던 시기가 있었다.












전 직장은 외국계 회사였는데

나랑 메시지 주고받던 유럽 동료가 먼저 퇴근하고,

미국 동료가 점심 먹으러 가는 날엔 현타가 세게 왔다.

위의 사진은 아마 그런 날 찍었던 컴퓨터 속 시계 사진일 거다.



화장실에 갈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아서

쉬는 날에도 쫓기는 느낌이 들었고

작은 핸드폰 진동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결국 불안장애 약까지 먹게 됐다.



그러다 어느 날,

컴퓨터 앞에서 일하다 이유도 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때쯤 그게 번아웃이라는 걸 처음 인지했던 것 같다.



번아웃은 1년이 지나도 쉽게 극복되지 않았고

오랜 고민 끝에 사직서를 냈지만 팀장님은

"회사가 전쟁터면 밖은 지옥이야"라며 나를 설득했다.



그렇게 머리가 터지게 고민한 후

겨우 용기 내서 퇴사하겠다고 말해놓고

난 팀장님의 그 말에 바짝 쫄아버려

퇴사 의사를 철회했다.



팀장님이 나를 위로하며

휴가를 다녀오라고 하셔서 며칠 쉬었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쉬고 돌아온다고 해서

그 일들이 어딜 가는 건 아니니까.



어쨌건 짧은 휴가를 다녀온 후

'회사에 남기로 한 만큼

다시 힘내서 열심히 해보자!'라고 마음먹었지만,

이미 번아웃으로 지친 나에겐

그럴 에너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경제적으로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에

힘들 때마다 돈이 최고라며 자기 최면을 걸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유 없는 설사를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몇 달을 했고, 꽤 자주 두통을 앓았다.


아무리 돈이 최고라고 스스로를 세뇌해도

번아웃은 쉽게 극복되지 않았다.


그래도 버티고 또 버텼는데

마지막엔 결국 사람 때문에

참고 참던 퇴사라는 방아쇠를 당기게 됐다.



퇴사를 하고 이제 1년 10개월이 다 되어간다.



팀장님의 말대로,

회사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말했던 대로,

내가 만난 회사 밖의 세상은 정말 지옥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