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퇴사하면 후회할까?

by 행백이

나는 번아웃 때문에 퇴사했다.

퇴사하고 번아웃을 회복하기까지

1년 좀 넘게 걸린 것 같다.



내 번아웃의 시작은 ‘적성’이었다.



대학교 때 광고, 마케팅과 관련된

다양한 대외 활동을 했던 나는 이미 그때부터

마케팅은 정말 나랑 맞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외국계 IT 회사 마케터가 되었다.



긴 백수 생활 끝에 나를 불러주는 곳은 이곳뿐이었고

그렇게 마케팅을 시작하게 되었다.

(삼십 대 초반에서야 첫 취업을 했다.

이 얘기는 추후에 따로 올려야겠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어쩌고 저쩌고...!)



처음 2년 정도는 할 만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점점 일이 어려워졌다.



마케터는 전략적으로 사고해야 하고

숫자에 밝아야 하는데

타고난 내 성향과는 너무 맞지 않았다.



나는 기업용 IT 솔루션을 마케팅했어야 했는데

뼛속까지 문과인 내가 복잡한 IT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 또한 너무 어려웠다.



물리 빵점 맞던 애가 갑자기 양자역학 논문을

매일 써야 하는 기분이 이런 건지 싶었달까.








그래서 더 나를 갈아가며 열심히 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 이후 회사 매출은 확 줄었고

내 업무량은 확 늘었다.



10시에 퇴근하면 빠른 날들이 1년간 계속됐다.

그때부터 불안장애와 우울이 시작됐다.



이와 함께 고민도 시작되었다.


삶에서 이 제일 중요한 지,

아니면 건강행복이 제일 중요한 지,


돈으로 건강과 행복도 어느 정도 살 수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이 힘듦도 참고 여기서 버텨야 하는 건 아닌지.



정해진 답이 없는 고민을 2년간 했다.



어떤 날은 건강과 행복이 최우선 같고,

어떤 날은 돈이 최고인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하다 결국 번아웃(97%)과 사람(3%)으로 인해 퇴사하게 됐는데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퇴사를 후회한 적이 없다.



비록 경제적으론 그때보단 쪼들릴지언정

정신적, 신체적으로 훨씬 건강한 지금이 더 행복하다.



만병의 근원은 회사가 맞는 것인지

퇴사 전 6개월간 시달리던 이유 모를 설사도

퇴사하자마자 멈췄다.



물론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더 쪼들리면

후회할 수도 있으려나?



하지만 지금까지 후회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딱히 후회하진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 취업한다면

마케팅은 안 하고 싶다.



하는 내내 적성에 안 맞아서

매일매일이 물속에서 전력질주를 하려 애쓰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내가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 진 모르겠지만

내가 갈려 나갈 땐 갈려 나가더라도

재미를 느끼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럴 수 있길 바라며

오늘의 글은 끄읏-




위의 글은 내가 백수가 된 지 1년 10개월쯤 됐을 때 네이버 블로그에 썼던 글이다.

이때보다 훅 줄어든 통장 잔고로 인해 경제적으로 좀 더 쪼들리긴 하지만

여전히 퇴사에 대한 후회는 없다.

다만 취준을 좀 더 빨리 시작할 걸 하는 후회는 있다. 2년간 너무 놀아제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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