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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테시아 Nov 29. 2022

단      절

고양이 열두 녀석과 살아가다

문. door.

이 단어는 이중적인 감정을 들게 한다.

열려 있는 문은 나에게 호의적이라면,

닫혀 있는 문은 나에게 꽤 불편하면서도 단절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부부 싸움이든, 연인들의 싸움이든.

싸우는 주체들과 전혀 상관없는 집안의 문이든, 차문이든.

문들이 고통을 받는다.

평상시와는 다른 강도와 압박으로 닫아 버리는 싸움의 주체자들.

그 주체자들은 문을 닫을 때의 소리가,

크면 클수록 작은 희열까지 느낀다.


그리고, 단절한다.


오래된 이야기다.

와이프와 5개월 간의 토론(?)과 전투가 끝나고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결정이 났다.

강아지가 이미 있었기에 반대를 한 나였지만,

집안의 가장인 아내의 집요한 설득과 회유, 강압에 의해

두 아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그것도 성별을 나눠서.


녀석들이 새로 왔다고 생활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강아지는 늙어서 어린 고양이를 상대하고픈 의지가 없었고,

3개월이 갓 지난 고양이들은 마냥 신나서 뛰어놓았다.


강아지 때문에 평상시도 집안의 문은 닫지 않고 생활했기에

평소와 같았다.

딱 하나. 화장실 문만은 예외였다.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은 새끼 고양이들은 최후의 보루 화장실에서

천국을 만난 듯했다.


이곳 저것 구석진 곳이며 변기 뚜껑이며.

집에서 제일 습한 곳을 좋아하다니 여간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 볼일을 보는 순간에도 따라와 온갖 짓(?)을 다하니

방도를 찾아야 했다.


고민 끝에 여닫이 문을 미닫이 문으로 교체하기로 결정.

그것도 문이 어느 정도의 무게가 나가서 고양이들이 힘으로 밀지 못하는 정도.

난데없이 문짝 공사. 

사방에 먼지가!!! 먼지가!!!

드릴 돌아가는 소리에도 짜증이! 짜증이!


몇 년 전의 일이지만, 미닫이 문 교체는 정말 잘한 일이었다.

볼일을 보거나, 족욕을 하거나, 베쓰를 하거나.

고양이 녀석들이 안달나게 만큼만 열어놓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니 적어도 단절은 되지 않는 간격이니 말이다.


세상 여리디 여린 고양이들에게.

단절은 공포일 것이다. 

두려움일 것이다.

사람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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