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마음 1
삼십 대 중반이 넘어섰을 즘이다. 살면서 듣게 되는 무수히 많은 얼토당토않은 거친 말들, 어이없는 말들이 있다. 존재함을 알아는 두되 정작 듣고 싶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에겐 없으리라 여겼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직장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지인도 아닌 진한 피를 나눈 나의 가족, 내게 고귀한 생명을 하사하신 분 - 나의 엄마, 강여사 이야기다.
그날 따라 찬찬히, 평소와는 다른 예리한 눈빛으로 거실로 나온 딸을 쓱- 곁눈질하며 훑는 엄마.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나를 빤히 바라보신다. 뭐? 왜 그래? 싶어 나도, 멀뚱히 바라본다. 그대로 아무 말 없는 두 여자. 주말 아침, 부녀지간에 민낯 얼굴을 마주하길 5초나 지났을까나. 입을 연 엄마는 대뜸.
"수술하자. 눈만 더 크면 그래도... 쌍꺼풀만 있어도 사람 이목구비가 달라진다는데... 아무래도 눈 때문인 거 같다. 요즘은 앞도트고 뒤도 트고 다 한다더라. 눈 조금만 더 크게 만들자."
뭐래, 뭐라는 거야. 웃자고 하는 말치곤 구체적이라 어이없긴 하지만, 뭐 엄마의 애교로 받아들이자 싶어 '왜 이러셔.' 하며 그냥 웃어넘겼다. 그런 나를 여전히 쳐다보고 있는 엄마. 이번엔 연구대상 관찰하듯 나를, 내 얼굴을 만져가며 구석구석 살핀다. 면전에서,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하는 말씀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 딸이다.
"압구정 쪽에 잘하는데 많다더라. 한번 가보자. 가서 얼마나 나올지 견적이나 한번 내보자..... 비싸려나."
오우, 마이, 가앗... 엄마는 지금 진심이다. 아아, 미치겠네... 얼토당토않은 말을 내뱉은 강여사에게 따지듯 물었다. '엄마, 나 이만하면 괜찮잖아. 키도 크고, 어? 그닥 뚱뚱한 것도 아니고. 어? 돈도 잘 벌고. 이만함 어디 내놔도 꿀릴 거 하나 없는 거 아냐? 아니 말이야,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쁘다잖아. 아냐?' 나름의 논리 정연한 대꾸가 아닐 수 없다, 싶었건만 엄마귀는 닫힘이다.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엄마의 다음말이 이어진다.
"그러게. 고슴도치도 지새끼 이쁘다 한다던데··· " (소리 내어 웃는 엄마다....!)
..... 한다던데, 그다음 뭐? 하고 잠시 기다리는데 아무 말이 없다. 짤막히 웃기만 하고 뒷말은 어디 갔는지 없다. 장난으로 하는 말이다 싶어 가벼이 장난으로 받아치려 했는데, 어쩌나. 지금 엄마는 진. 심. 이. 다. 엄마가? 딸한테? 나한테? 성형을 권한다고? 이런 일이 진짜 있다고?!
보통은 딸이 하겠다 하고, 엄마가 우리 딸 이쁜데 뭘~ 하고 말리는 게 일반적이다 생각했건만.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엄마는 나의 작은 눈을 거쳐 이번엔 나의 두툼한 코를 유심히 보신다.
"콧대를 세우고... 콧대가 너무 낮아서 한번 세워서는 모르려나...." 새하얀 가운만 걸치면 영락없는 서울 최고의 명의, 성형외과 전문의다.
아직 놀래긴 이르다. 딸과 부인의 대화가 또렷이 들리고도 남을 터인데, 침묵으로 일관하며 파스락 소리 내며 신문을 넘기고 있는 나의 아버지. 아무런 말도 없이, 미동도 없이 글자를 읽고 계시는 전직 교장선생님이 남았다. 점잖으시고 인자하신 젊은 감각의 소유자 나의 아버지. 아빠에게 솔직한 의견을 물었다.
'아빠는? 아빠는 어떻게 생각해. 내가 고칠 데가 있다고 생각해? 내 눈이 작아?'라는 딸의 얼굴을 돋보기안경 너머로 바라본다. 정적 속에서 4초간 셋째 딸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떼시고 한마디 하신다.
"쌍꺼풀 하면 더 낫긴 하겠네."
탕. 탕. 탕. 내 귀에만 울려 퍼지는 판사님의 봉소리가 우렁차다. 햇살 좋은 주말의 토요일 아침, 난 나의 사랑하는 부모님께 완전한 KO 패를 당하고 말았다.
한참이 지난 옛날얘기지만, 여전히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는 나의 삼십 대 중반에 일어난 잊지 못할 한바탕 소동이다. 일본에서 데려다 놨더니, 주야장천 회사 일만 하고 주말은 운동만 하는 딸. 더 나이 들기 전 서른에 데려왔건만 벌써 서른 중반씩이나 넘어가는데, 멀쩡한 남자하나 못 만나고 결혼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허구한 날 선보라 해도 입버릇처럼 바쁘다는 말만 하는 딸.
그러다, 생각하셨다한다. 어쩌면 내 딸이 못생겨서, 못생기고 매력이 없어서 남자들이 쳐다도 안 보나 보다. 솔직히 이쁜 건 아니니 그럼 성형을 권해보자. 하셨다 한다. 진심으로 날 수술대로 올리려 했다는 말이다. 허허, 세상에나 만상에나가 아닐 수 없다.
삼십 대에 들어서면, 특히 서른 중반의 나이에도 결혼이야기가 일절 나오지 않는 경우라면 우리네 부모님은 걱정이 급격히 많아진다. 우리 딸, 한참 좋은 시절 다 지나가네. 이제 누가 데려가나. 더 나이 들면 선도 안 들어올 텐데. 내가 더 나서야 하나. 하면서 본인 나이듦은 잊은 채 나이 들어가는 딸 생각을 한다. 급기야, 성형수술까지 꺼내들 정도로 말이다.
부모님의 근심을 몸소 겪었던 그때를 떠올려보니, 마음 한편이 짠하다. 다 큰 딸 걱정은 관두고 다른 일들에 더 몰두하시거나, 보다 즐거운 생각들로 당신들의 삶을 채워가실 수도 있었을 텐데. 시집 못 간 노처녀 딸, 이대로 늙어갈까 봐 성형외과까지 알아보실 정도였다니, 싶다.
나이를 들어감에 있어 삼십 대의 우리들은 죄가 없다. 그러나 부모님의 걱정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그러지 못했던 나는, 그 후 한 가지 똑똑한 대안을 내놓았다. 딸을 걱정하는 대신에 맛있는 것 많이 드실 수 있도록 용돈을 두툼히 드리기 시작했다. 외식용 카드도 따로 만들어 드렸다.
가족에게서 듣는 남자니 결혼이니 시집가네마네 하는 이야기는 사실 듣기가 매우 거북하다. 때론 아주 별로라서 일절 모른척 해줬으면 싶다.
서른 넘은 처자의 '남자 스트레스'로부터 가급적 멀어질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다. 서둘러 만나던지 아니면, 현금으로 입막음하듯 마무리를 짓는 것. 현재로선 최고의 대안이지 말이다.
그렇게, 김진사댁 셋째 딸은 얼굴에 칼 하나 대지 않고 여전히 부모님이 물려주신, 그 작고 반짝거리는 눈과 한없이 낮지만 유난히 복스러운 코를 유지한 채, 태초 태어난 그대로를 고이고이 유지한 채 살고 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