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이 지나는 시간들
스물 넷에 떠나와 어느덧 6년차다. 다 큰 어른이라 착각하며 자신만만하게 홀로 떠나온 늦은 유학. 막냇동생뻘인 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보기도 하고 틈틈이 생활비도 벌어가며 무사히 졸업도 마쳤다. 우여곡절 속 도쿄 한복판에 위치한 중견 IT회사에 취직도 하였다. 매일아침 반듯하게 차려 입고 출퇴근을 하는 어엿한 직장인. 진짜 서른의 어른이 되어간다. 서울이 아닌 외국에 살며 일을 하게 되면 뭔가 특별할 줄 알았다. 하루 24시간, 더도 덜도 아닌 일상의 연속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다.
퇴근 길. 북적북적한 전철을 내리니 어느새 어둑함이 짙다. 동네 가장 번화가인 전철역 주변을 빠져나와 집으로 걸어가는 길. 그 길 끝 모퉁이를 돌면 은은한 네온사인 불빛이 어우러진 식당들 사이로 꽃집이 하나 있다. 밤 공기 타고 코 끝에 와 닿는 향기에 이끌리듯 잠시 들러 보기로 했다. 장미를 닮은 탐스러운 흰 꽃송이가 한 움큼 달려있는 식물이 눈에 띄어 이름을 물었다. 구치나시노하나(口無し). 낯선 이름의 식물이다. 제 값을 치른 뒤, 그윽한 꽃 향기 맡으며 가슴에 품은 채 집으로 데려왔다. 살아는 있으나 아무런 말도 없고 대꾸도 없다. 그저 그만의 특별한 향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킬 뿐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무척이나 무덥던 여름의 끝자락. 재학중인 한인 유학생들이 동문 선후배와의 자리를 마련했다 하기에 퇴근 후 늦은 참석을 했다. 도착한 신오오쿠보의 식당 안에는 일본사는 한국인들로 빼곡하다. 어찌 지내느냐는 대선배의 물음에 ‘저 요즘 식물 키우기 시작했어요.’라며 운을 띄우자 마자, 멀찍이 앉아있던 한 남자선배가 이런 말을 한다. ‘타지 생활 하면서 초록 잎 식물을 키운다는 건 외롭다는 산 증거야. 혹시나 식물에 말도 걸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위험신호고. 조심해. 넌 거기까진 안 갔겠지?’ 끝 말을 마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나도 식물 키우는데. 나도, 나도… 한바탕 웃으며 너나할 것 없이 식물 키움이라는 공통된 커밍아웃을 시작한다.
그날 이후로도 변함없이 식물을 돌봤다. 흙이 마르지는 않았나, 통풍은 잘 되고 있나, 햇볕은 적당한가 하며 정성을 다했다. 물론 말도 걸었다. 어쩌면 외로움의 끝판까지 왔겠으나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저 우스갯소리일 뿐이라고, 잊고 지냈다. 내 집에서 함께하는 유일한 살아있는 존재다. 돌아오지 않는 대화임을 알고도 현관 귀퉁이에 놓인 자그마한 화분에게 빠짐없는 인사를 건넸다. 이른 출근을 할 때도 늦은 퇴근을 하고서도 은은한 향이 옅어 질 때까지 매일같이 말을 걸었다. 장미를 똑 닮은 새하얀 꽃잎들이 모두 다 저물어 없어질 때까지도, 계속해 대꾸 없는 대화를 시도했지 말이다.
떠도는 이야기는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그 해 가을, 단칸방에 사는 혼자임에 마침표를 찍듯 얼마 안 되는 이삿짐을 모두 한국으로 보냈다. 이십대의 홀로서기 신고식을 제대로 치르고, 삼십대의 시작인 서른을 넘겨 이 곳 서울로 돌아왔다. 즐거운 추억보다는 고단함과 서러움에 눈물겹던 유학시절 고비를 넘기고서 어렵사리 취업한 직장. 그 모든 일상을 뒤로하고 가족이 있는 한국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스피드를 올려야 하는 경주마도 아니건만, 지금껏 그저 앞만 보고 쉼없이 달린 이십 대의 시간들. 스스로를 위한 그간의 작은 보상으로, 귀국 후 백일 동안은 완전한 백수로 지내보자 마음먹었다.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집 밥을 먹으며 그저 빈둥빈둥 놀아 보리라. 했건만, 쉽지가 않다. 무료하고 심심한 나머지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나니, 사람이 그립다. 지인의 소개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방문을 시작으로, 오랜만에 한국 회사의 직장인들을 만나니 일이 하고 싶어 진다. 결국, 석 달은 커녕 한 달도 채 안 되어 취직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음 달부터는 본격적인 한국에서의 일상 – 회사원이 된다. 서른 넘어 시작되는 인 서울 직장인. 삼십 대의 전부가 될 강남 테헤란 로의 회사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는 이 하나 없이 맨땅 헤딩으로 시작된 이십 대의 일본생활.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보면, 그저 외롭고 힘든 건만은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든 자랑스레 얘기할 수 있는 둘도 없는 인생 친구들이 있고, 몇 년이 지나 갑작스레 연락해도 두 팔 벌려 반겨주는 직장동료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십 대 시절 내내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생각이 늘 따라다녔다. 사실 이런 생각은 나이가 젊던 그렇지 않던 간에, 한번 즘은 거쳐가는 생각이자 고민일수도 있다. 그리고 이 고민의 해결방법은 절대 타인이 갖고 있지는 않다. 해답은 질문의 주인인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인 스물 넷이 되던 즈음, 청춘의 방황기가 왔다.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에 건조한 나날이 계속되던 중, 나의 주변 그리고 환경을 모두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조금은 무모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굼뜨던 행동 세포들이 일제히 깨어나듯, 무의식이 말을 걸며 거주하는 곳을 옮겨보라는 메시지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결정했다. ‘그래. 어디든 가보자. 떠나보자.’했다. 부모님 설득까지는 무척이나 어려웠으나, 결국은 승낙을 받아냈고 혼자만의 선택과 결정으로 떠났다. 그리고, 6년째가 되어가는 해에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다만 달라진 것은, 사는 곳이 어디든 환경적응에 문제없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또 무엇을 시작하건 본인 마음먹기에 달린 것임도 이제는 안다.
상공 거리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두 나라 한국과 일본. 지구상에 위치하는 좌표만 바뀌었을 뿐인데 서울로 돌아온 이후, 점차 의식되어가는 것이 하나 생겨났다.
그 동안의 이십대에는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기에 가끔은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무엇을 하더라도. 또 누구를 만나더라도 같다.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이건만. 몇 년 만에 마주한 친척들 이건만. 동네 만두가게 사장님 마저도 같은 질문을 한다. 올해 나이가 몇인지, 결혼은 언제 하는지.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안했느냐 하며 빨리하라 다그친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질문이 어느새 대뜸 혼냄으로 다가온다. 그칠 줄 모르는 한 여름 우박 섞인 소나기 같다. 지금껏 별반 의식 없이 살아왔기에 나이 확인 현타가 적잖다. 솔직히 왜들 이러나, 싶을 지경이다. 확실한 건, 타인의 생각은 나의 의지로 절대 바꿀 수 없음을 알기에 가능한 이 상황에 적응해야만 한다. 일희일비 반응할 것 없이 신경을 차단하자, 하며 덤덤하게 넘어가려 무던히도 애썼다. 그럼에도 이 아라비안 숫자는 삼십을 기점으로,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요지부동이다. 되려 찰싹 달라붙어 함께 동고동락 중이다.
서른 초반대라 불리는 지금. 언젠가부터 새벽까지 일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져 가고 있다. 선택한 일에 대한 거부감은 없으나 양이 줄어들지 않는다. 모두가 해야 할 일에 전념하면 좋으련만, 직장 내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에 날숨이 길어진다. 직장 내 정치라 일컫는 각종 행위들에 두통이 끊이질 않는다. 요즘 들어서는 상당히 힘에 부치기도 한다. 각자의 맡은 포지션대로 일만 하면 되던 옛 직장이 그립기도 하다. 다시 돌아갈까 고심했지만 회피라는 생각에, 그저 참고 견디며 너무도 많은 시간을 덧없이 흘러 보냈지 싶다. 활기차던 생기도 잊고 야근의 연속에서 몇 년을 지낸 어느 날, 무미건조하게 지나는 시간에 이대로 뭍여가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지내는 것은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지 못 함임을 알아차렸다.
수첩을 꺼내 들고 무작정 적어 보았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어떤 것들인지 생각해가며 메모를 해 보았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에 집중하려 했다. 자극되는 호기심에 무의식적으로 따르며 무엇이든 도전하고 실행에 옮겨보자 싶었다. 몰입할 수 있고 관심이 가는 것들도 다 해보자 맘먹었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법인지, 나를 알아가는 수단인지도 모른 채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에 따라 행했다. 맨 처음은 악기부터 시작되었다. 피아노 한번 배워본 적 없건만, 플루트 부는 여자가 되어보고 싶었다. 검색 끝에 강남 뱅뱅 사거리 뒷골목 지하에 위치한 교습학원을 찾았고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야근이 일상인 회사에서 까만 악기가방을 최대한 숨겨가며 학원을 다녔다. 애써 배운 끝에 목표하던 오케스트라 합주멤버의 일원이 되어 보기도 하였다.
성취라는 것은 매력적이게도 욕구와 갈망을 계속해 만들어낸다. 플루트 다음으로, 이번에는 외국어를 배워보자 싶었다. 일본어에 이어 마스터하고 싶은 언어는 영어 그리고 중국어다. 영어는 일하며 항시 필요로 했기에 언젠가 올 기회를 잡고자 시작해보자 싶었다. 덤으로 중국어도 동시에 다져 두자 맘 먹었다. 취미 란에 어학이 추가되는 순간이다. 어디 그뿐이랴. 운동의 운도 관심 밖 이였건만 등산동호회는 물론 당구, 배드민턴, 탁구 등 사내 운동동호회에 최대한 참석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몸을 움직여 땀이 흐르는 경험을 하니 테니스는 물론 수영까지 취미 슬롯이 의도치 않게 확장되어 갔다. 삼십 대 싱글의 취미부자 타이틀이 생기는 순간이다.
복잡한 관계 속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바램이 쉼 없이 움직이는 취미부자를 만들어냈다. 바라고 원하는 대로 평일은 평일대로, 주말은 주말대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바쁨을 즐기듯 지내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적지 않은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면서, 눈썹 휘날리게 지냄에도 불구하고 뭔가 허전하다. 때에 따라서는 허한 가슴이 아려 오기도 한다. 아주 간간히 드는 느낌이라서 지나치기 일쑤라 금세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던 그것. 서른 중반이 되고서야 선명히 나타났다. 제 아무리 취미가 많고 나름 신나게 즐기며 산다 한들, 이 공허함은 도대체가 채워지지 않는다. 그 이름하야, 남자라 불리는 존재이다. 나의 취미는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가는데, 이 텅 빈 공백을 메우기엔 그 어떤 화려한 취미로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 허함은 무슨 수로 채운다, 생각에 관한 생각을 하다가 생각만으로는 달라짐이 전혀 없음을 알아챘다. 생각은 공기중에 흩날리는 연기와도 같기에 그 생각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액션을 취해보기로 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그저 한번 해 보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속절없이 지나는 이 시간들 속에서 나의 관심사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냈으니, 어쩌면 다음 차례는 나를 좋아해 줄 단 한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할 때인가 보다. 어느새 서른 중반에 다다르고 있는 취미부자. 그녀의 마지막 취미는 ‘내 남자 찾기’로 결정했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