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못 찾겠거든 내가 널 찾을게

와인을 마셔보렵니다

by 김혜진




지금도 그러하지만, 네이버든 다음이든 대형포털은 사람 끌어들이는 재주가 남다르다.




같은 걸 좋아하거나, 관심사가 비슷한 이들을 한 곳에 모아주는 모임. 동호회를 찾고자 하면 얼마든지 검색할 수가 있다. 조깅부터 시작해 각종 운동은 물론이고 지식공유를 하는 스터디모임도 있고, 뮤지컬 같이 보러 가기 류의 모임도 존재한다.




인터넷이 있어 편리한 세상이다,라는 말은 이제 너무 일반적인 상투적인 말이 되었다. 스마트폰을 손에 손잡고 마냥 누구나가 소지하는 기기가 된 지금이다. 하고자 하는, 찾고자 하는 니즈만 있다면 원하는 동호회 하나쯤은 금세 찾는다.




삼십 대 중반이 넘어서며, 내 남자를 한번 만나보자. 찾아보자. 싶었기에, 나도 인터넷을. 스마트폰을 이용했었다.








돌고 돌아 내 눈에 들어온 모임은 다름 아닌, 와인. 와인시음회를 메인으로 하는 와인동호회였다. 네이버와 앞다퉈 고객확보에 심혈을 기울이던 다음도 카페 활성화에 적극적이었는데, 양 포털을 오가며 키워드명 '와인'으로 모임을 찾았더랬다.




당시에 와인붐이 일었던 탓도 있으리라. 종류도 많고 맛도 다양한 와인에 살짝 심취해 있었기에 위 퐁당 당하게 와인공부를 좀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포도품종만 다양하리, 사람들도 다양하게 만나야 하는 법. 하는 생각으로, 회사 밖의 사람들을 폭넓게 만나보고자 했다.








그렇게, 함축적 의미가 깃든 '와인'에 발을 들여보기로 결심했다. 어느 금요일 후덥던 여름이 지나고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도 불던 날이다.




바삐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며 정시퇴근을 했다. 혼자서, 낯선 장소에. 나이대도 모르고 성별도 모르고 물론 직업도 모르는 모임에 참석하러 가고 있다. 어둑해지는 공기색이 도로 위 불빛들과 어우러져 선명하게 보인다. 도시에 살고 있음에 편안함마저 드는 퇴근길이다.




모임장소는 내부 조명이 어둑한 이탈리안 식당이다. 천천히 긴장한 기색 없이 들어갔다. 안쪽 기다란 테이블이 보이고, 한 무리의 사람들도 앉아있다. 높은 힐 또각또각 소리가 내 귀에 엄청나게 크게 들린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난달 모임에도 왔던 것 마냥 목청 높여 인사하고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다. 조명빛 받은 테이블 위 와인이 10병은 되려나. 세상에나 만상에나, 개인이 들고 온 와인까지 꺼내드니 최소 15병은 되어 보인다. 모인 사람은 10명 내외인데 이걸 다 마시는 건가? 생각이 많아진다.








음식이 나오고, 와인을 하나 둘 셋 종류별로 시음한다. 와인맛이 궁금해 물으면, 주최한 이가 해당와인에 대해 어젯밤 암기한 건지 와인고수인지 모르게 포도종을 비롯해 연도와 나라와 향과 마시는 법 그리고, 어울리는 음식과 비슷한 종류의 와인들이 무엇인지까지 봇물 터지듯 이야기를 한다.




와인이야기는 뭐 그럭저럭 호기심 일었던 것들 알아보는 정도로 되었다 싶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남자가 절반 이상이다. 의외로 와인 관심은 남자들이 많은가 싶다가, 모인 남자들을 빠르게 스캔해 봤다. 없다. 한 명도 없다.




말이 통하는 이도 없을뿐더러, 그냥 당연하리만큼 주야장천 와인얘기뿐이다. 내가 너무 시커먼 맘을 갖고 왔나 싶을 정도다. 와인만 계속 마신다.




처음 자리에 앉자마자 맛본 와인 세네 개 까지는 맛 분별이 되었는데, 한 시간쯤 지나고 보니 다 그게 그 맛이다.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 로제까지 섞이니 이젠 거의 미각을 잃기 직전이다. 물로 헹구고 다시 마셔본들 어쩌나. 모두 비슷비슷, 병의 모양과 술의 색만 다를 뿐이다.








두시간즘 되었을까. 모임에 온 이들은 다들 밖으로 나왔고, 나처럼 오늘 처음온 여자분 두 어명 하고 삼삼오오 기분이 가 좋아서 2차를 가기로 한다. 주최한 와인동호회 운영진의 소개로 근처 이자카야를 갔다. 이자카야다. 맥주와 소주를 주문하고, 골뱅이무침과 어묵탕을 시킨다. 갑자기 분위기 회식이다.




나이 얘기에 회사얘기에 사는 얘기. 간혹 와인 이야기도 있지만 소맥잔 건배 탓에 묻힌다. 하하 호호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고 떠 들기를 몇 시간. 막차시간이 다가온다. 낼이 주말인데 하며 모두 택시귀가를 결정짓고, 더 마시기로 한다. 다들 주량들이 대단하다. 나는 이미 한계치다.








와인도 알아보고, 사람도 만나보자. 더 많은 사람들과 접촉해 보자. 하는 바람으로 찾아간 와인동호회 모임이다. 물론 새로운 경험이었고 즐거웠다. 그 후로 한번 더 나갔었는데 두 번이면 충분했다.




그 길로 모임은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와인에서 소주로 끝나는 모임은 내게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그냥 술이 고픈, 이야기에 갈증 난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지 싶다. 그래서 결론은 나와는 맞지 않는구나, 였다. 나타나지 않는 내 남자를 찾아보려 움직여봤으나, 실패다.






마음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실천하여야 한다.






마음만으로는 어느 하나 이룰 수 없음을 알기에, 움직였으나 목적을 갖고 사람을 눈여겨보는 것은 아닌가 보다. 인생, 하나 배운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이 하나 더 있다. 난 지나치게 술을 즐기는 남자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다.




내 남자 찾기는 비록 실패했으나, 얻어가는 건 두 개나 되니 이걸로 되었다.










추신 1.

와인모임 다음날. 정산 카톡이 도착했는데, 모임회비 4만 원과 합하니 1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거기에 심야 택시비까지! 역시 나와는 맞지 않는다.



추신 2.

적당한 와인은 몸에 좋다 한다지만, 와인숙취는 생사를 오간다. 머리 두통이 역대급 최고치다.



추신 3.

미국 나파밸리 와이너리에 다녀온 적이 있다. 와인을 진정 알고 싶다면, 미국이든 프랑스든 이태리든 현지 와이너리 체험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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