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하와이

플루메리아의 잔향

by 김혜진




생각을 모으고 있습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흡족한 여행이 되어야 하기에 유럽으로 가느냐, 몰디브로 가느냐 아니면 하와이는 어떨지를 두고 공식적이고도 프라이빗한 둘만의 일주일을 셀렘 가득한 마음 담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요.



하와이 날씨가 그렇게나 환상적이래. 여름날씨인데 습하지도 않고 말이야. 게다 생각만큼 그리 멀지도 않아서 비행시간도 절약될걸?



가우디의 나라도 궁금하고 얼마후면 지구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바다도 가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부터 환상의 섬으로 각인되어 온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침을 맞이하고 싶어 졌습니다, 이 남자와 말이죠. 함께하는 결혼생활 내내 기억되어 회자될 신혼여행. 그 생각의 목적지는 여덟 개의 섬으로 이뤄진 하와이가 되었습니다. 여행은 떠나기 전 설렘을 느끼려 한다는 말도 있듯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시작으로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도 여기저기 찾아 적어 내려 가 봅니다. 이 시간들이 순수하게 즐겁지 말입니다.










공항. 예약된 항공사 프런트에서 짐을 부치려는데 미국비자가 없어 발권이 안된다고 합니다. 준비 철저히 했다 싶었건만 그만 비자를 잊었지 뭡니까. 다행히도 침착하고 친절한 직원분 덕분에 놀란 가슴 진정시키고 공항비즈니스 룸에서 신속히 비자발급을 마쳤고 쉼 없이 움직여 호놀룰루행 비행기에 탑승완료. 무사히 하와이 국제공항에 안착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국내선 비행기를 갈아타고서 도착한 이곳은 마우이입니다.



둘만의 온전한 시간을 보내려 여기 하와이까지 왔습니다. 바라보는 풍경도 먹는 음식도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처음입니다. 그 첫 시작을 같이 하고 싶어 손 마주 잡고 여기까지 왔나 봅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소스라치게 놀랠만한 일이 생겼지요. 몰랐습니다, 하와이의 밤바람이 이렇게나 거센 줄은요. 낮과는 대조적으로 저녁이 되어갈 즘 바람이 세다 싶더니, 밤이 되니 머물던 집이 통째로 뽑힐 것 만 같았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인가요? 토네이도에 휩쓸려 날아가던 도로시의 집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며 잔잔하던 바다가 무서워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바람 소리가 호러영화를 방불케 합니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곳인데, 설렘 가득으로 잠 못 이루던 날들이 허무해질 정도로 엄청난 비바람 소리가 밤새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로 이 세상이 끝나려나보다, 싶은 정도의 들어본 적 없는 게센 바람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무래도 잠들기엔 어렵겠습니다. 그런데 옆에 누워있는 남자는 졸음이 몰려오는지 하품 삼매경입니다. 괜찮을 거라며 안심시키는 말을 하고 눕습니다. 술에 약한 이 남자, 기분 좋아 따라주는 대로 마신 모스카토에 금세 취한 건지 오랜 비행 후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니면 어디를 가도 솔솔 풍기던 플루메리아 향에 녹아든 건지. 이토록 세찬 바람소리가 그에겐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8번과도 같은 음역으로 들리나 봅니다.



졸려하는 남자를 깨우길 두 차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티브이를 켜고 일기예보 방송을 틀어보았으나 별다른 속보는 없습니다. 하와이에서는 흔한 일인가 보다, 애써 놀랜 맘 추스르며 테이블 위 남은 와인을 남김없이 마셨습니다. 낮에 사 온 맥주마저 홀짝홀짝 - 마른 목 타고 흐르는 그 차가움이란! - 마시다 보니 어느새 새벽 한시가 넘어갑니다. 미국 술에 취한 건지 소란스러운 바람소리가 백색소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혼 첫날이라는 오늘. 곤히 잠든 신랑 그리고 그 옆으로 볼 빨개진 신부도 가만 눕습니다. 아직도 무서움이 남아 손을 꼭 잡으니 그 손으로 팔베개를 만들어주네요. 그리고 가만 속삭입니다. 무서워하지 마, 내가 같이 있잖아. 낼이면 언제 그랬냐 하게 될 거야.



잠결에 들려오던 숨소리가 얼마 안돼 새소리로 바뀌었습니다. 숲 속인가 싶을 정도로 온갖 새들의 아침맞이 소리가 요란해질 즈음, 잔디 정원과 연결된 커다란 발코니 창문 틈으로 투명하리만큼 반사된 태양빛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과 없는 햇살에 눈부심도 잠시 맨발로 걷고 싶어 지기에 그대로 나가보기로 했어요. 걷다 보니 간밤의 매섭던 폭풍과도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리조트 정원사의 손길만 그저 분주할 뿐입니다.



플루메리아 나무가 어디에 있는건지 바람 타고 온 진한 꽃향이 코끝에 다다릅니다. 몽롱해지는 기분 기꺼이 만끽하며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한 하와이에서 숨 한번 크게 들이쉬며 가슴가득 그대로 맞이해 봅니다.










*플루메리아(Plumeria) : 하와이, 괌, 사이판, 인도, 태국,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를 여행할 때 만날 수 있는 식물입니다. 러브 하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지요. 하와이 꽃 목걸이 레이(lei) 혹은 귀 뒤에 꽂는 꽃으로도 사용되지요. 머리의 왼쪽에 꽂으면 미혼, 오른쪽에 꽂으면 기혼을 표시합니다. 꽃말은 '당신을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 또는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화요일 연재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