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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담긴 시간들

by 김혜진





순간의 기분이 멈춰있는 사진. 집안 정리를 하던 중 앨범에 꽂히지 못한 사진들이 한 무더기 발견됐습니다. 모두 결혼 전 사진들입니다. 초등학교 아닌 국민학교 시절의 소풍사진도 한 두 장 들어있고, 한복 입고 졸업해야 했던 졸업식 사진도 보입니다. 학창 시절 주 1회 취미로 참여했던 미술반 단체사진도 보이네요. 누가 누구였는지 이름조차 가물하지만 그 시절 기억은 옅게나마 남아있네요.


그 밖에도 여행 다니며 찍은 필름 사진들도 많았는데요. 일본 유학시절에 룸메이트가 찍어준 사진도 보이고, 회사 친구와 미국 가려다 비자 문제로 행선지를 괌으로 했던 추억샷도 발견했습니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당시의 뜨겁던 날씨가 느껴집니다.


루브르 박물관이었으려나요. 나이키 여신상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동생과 함께 했던 프랑스와 영국의 추억들이 영화의 티저필름처럼 빠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살아보고 싶어 서른 중반에 홀로 연수를 떠났던 텍사스 시절 사진들은 계절이 계속해 여름이네요. 교회 다니는 친구 따라 놀러 갔던 강가 피크닉도 보이고, 바톤 스프링(barton spring)이라는 오스틴 지역 인기 스폿에 멕시코, 아프리카, 브라질 친구들과 수영하러 갔던 날도 있네요. 하나같이 모든 사진들이 함박웃음입니다. 게다가 외국 친구들과 어울리며 비키니까지 입고 있네요. 뭐가 그리도 재미있어 웃고 있는지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참을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입가에 웃음이 환하게 번지는 걸 보면 무척이나 즐겁던 시절임이 틀림없습니다.


그 시절의 풋풋함을, 사진 속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고서 결심 하나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목표는 6kg, 체중 감량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뜬금없는 다이어트를 어느 배우의 모습도 아닌 자신의 과거 사진을 보고서 해보자 마음먹다니 맥락 없는 생각에 우습기는 합니다만... '중요한 건 해보자 하는 마음가짐 아니겠는가'라며 당찬 혼잣말을 홀로 읊어 봅니다.


추억 속 빛바랜 사진이건만 알고 보니 강한 의지와 힘을 지닌 물건임을 간과할 뻔했습니다. 과거의 나를 만나보는 시간에서 지금의 나를 발견해 본 시간이었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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