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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자국을 지키는 일

by 김혜진




누군가의 마음을 오래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말보다 먼저 빛나는 무언가가 있다. 글이든, 그림이든, 멜로디든. 창작이란 결국 마음의 자국을 밖으로 꺼내 보이는 일이다. 내가 겪은 계절, 내가 견딘 밤, 내가 끝내 사랑했던 이름들이 모여 하나의 형태를 갖추는 그 순간. 그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삶의 결이 묻어난 한 조각의 예술이다.


하지만 그 소중한 조각들이 때로는 허락 없이 옮겨지고, 이름 없이 떠돌기도 한다. 마치 누군가의 손 편지를 몰래 훔쳐 가서 내 이름으로 발표하는 일처럼. 그것이 바로 저작권 침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일상적인 비극이다.


나는 종종 두 세계를 비교해 본다. 하나는 물건의 세계, 또 하나는 창작의 세계다. 누군가의 가방을 훔쳐가면, 우리는 그것이 ‘도둑질’ 임을 명백히 안다. 하지만 누군가의 글을 그대로 가져가서 본인인 양 쓰는 일에는 의외로 관대한 사회 분위기가 있다. “그냥 좋은 글이라 퍼왔어.” “출처 밝혔으니까 괜찮은 거 아니야?” 우리는 창작물을 무형의 것이라 생각하고, 그 가치를 쉽게 간과해 버린다.


하지만 마음을 담은 결과물에는 그 사람의 시간과 감정, 노력이 촘촘히 배어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을 뿐, 실제보다 더 무거운 노동일 수 있다. 그리고 그 노동은 존중받을 때, 비로소 또 다른 창작으로 이어질 힘을 얻게 된다. 저작권은 단지 법적인 개념이 아니라, 마음을 지키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창작의 숨을 이어가는 약속이다.


예전에 친한 친구가 내 SNS 글을 그대로 복사해 본인 계정에 올린 적이 있었다. 심지어 ‘공감된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자, 그는 ‘내 얘기라서 그래’라며 웃었다. 순간, 마음이 쿡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 글은 내가 잠 못 이루던 밤, 스스로를 토닥이며 써 내려간 문장이었는데, 누군가의 웃음으로 덮이고 나니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저작권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공부하게 되었다. 처음엔 너무 복잡하고 법률 용어도 낯설었지만, 결국 그 모든 조항이 말하고 있는 핵심은 하나였다. "당신의 마음은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창작은 취미가 될 수도, 직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창작은 '존재의 방식'이다. 나는 글을 쓰며 나를 이해하고, 그림을 그리며 세상과 연결되고,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치유받는다. 그런 존재의 흔적을 아무 설명 없이 가져가거나 이름을 지우는 일은, 결국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희미하게 만드는 행위가 된다.


이제는 내가 창작물을 마주할 때마다, 그 뒤에 있을 한 사람을 상상한다. 그가 이 문장을 몇 번이나 고쳤을지, 이 색을 고르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을지, 이 리듬을 만들기까지 어떤 이야기를 품었을지를. 그렇게 바라보면 모든 창작물은 누군가의 삶 그 자체다.


그래서 더 조심하려고 한다. 공유할 때 출처를 밝히고, 인용할 때 정중함을 더하며, 때로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라도 잊지 않으려 한다. 내가 보호받길 바란다면, 타인의 마음도 보호할 수 있어야 하니까.


세상은 빠르게 흘러가고, 손가락 하나로 수많은 콘텐츠가 오가는 시대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느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살 수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지키는 일이, 결국 나의 이야기를 지켜주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마음을 담은 모든 것들이 이름을 잃지 않도록.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저작권은 그런 세상을 위한 시작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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