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수거함

오리의 삶에 대한 고찰

by 김혜진



엄마. 이거 나 위해서 그런 거야?





어젯밤 아이아빠와 이야기 중 어려운 결정을 한 가지 했습니다. 이전부터 두어 번 나눴던 안건인데요. 이제야 최종 결론을 내렸네요.



우선. 거실에 티브이를 놓지 않기로 한 것은 한마음 한뜻으로 이미 오래전 이야기되어 지켜지고 있는데요. 이번 주제는 우리 어른들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시에 동반자이기도 한 '핸드폰'입니다.



게임에 푹 빠져있는 청소년도 아니고, 주야장천 폰을 만지작거리며 상대이야기에 집중을 못하는 사람들도 아님에 틀림없는데, 그럼에도 오늘 우리는 아이가 잠든 늦은 밤에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서두는 예전에 한 걸로 충분하기에 본론부터 들어갔지요.






"우리, 핸드폰을 하지 말까? 어때? 나도 어렵긴 하지만..."


"그러게. 어떻게 할까?"


"내 생각엔. 집에 들어오자마자 어떨까 싶네. 바로 진동으로 아니면 박스에 넣어둘까? 그래! 박스에 넣어두자. 얼마 전 다녀왔다는 전자기기 금지하는 북카페 말했잖아. 핸드폰도 강제 금지라는 거기. 들어가면서 박스에 넣어두고 나갈 때 찾아가는 시스템인데 진짜 집중 잘되고 좋긴 좋더라. 그렇게 해볼래, 우리도?"


".... 그래볼까? 해볼까?"


"그러자! 해보자 우리도 한번."






그리하여 합의하에, 결정된 핸드폰 오프 OFF.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퇴근해 들어오자마자 분리해 보자 하고 결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벌써부터 초조해집니다.



신랑은 어차피 손목에 워치를 차고 있기에, 급한 연락은 받을 수가 있고. 저는 뭐 각종 SNS 둘러보기 안 하면 되는 것뿐. 뉴스가 궁금하면 뉴스를 보면 될 것이고, 날씨가 궁금하면 창밖을 바라보면 되는 것.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생각해 봅니다.



당장에 오늘 아침부터 시작했습니다. 어젯밤 결정 난 시점에서 6시간도 채 안되었건만, 새벽 다섯 시 일찍이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먼저 켰고, 아차차 싶어 핸드폰수거함 박스에 폰을 담았네요. 상자 가운데에 살포시 담고선 뚜껑을 닫았습니다. 닫힘 소리가 요란할 정도로 크게 들려옵니다.



아직 출근 전인 신랑에게 상자를 높이 들어 보여주었고, 어. 안 그래도 봤어, 하며 씩 웃는군요. 다녀올게, 하고 서둘러 현관을 나서는 아이 아빠에게 인사하고 아들방으로 갔습니다. 어젯밤 잠들기 전 약속한 대로 크리스마스 기념하여 사준 책 '작고 아름다운 니체의 철학수업'을 읽어주었네요. 스르르 잠에서 깨어난 아들, 거실 한가운데 있던 박스를 발견했습니다.






"어? 이게 뭐야? 핸드폰? 아아, 핸드폰수거함이네. 요올~"


"맞아. 이제 엄마핸드폰 금지거든. 집에선."


"그 오리처럼 안되게?"


"어 그런 거지. 핸드폰 하고 싶으면 이제 아들허락받고 하려고." 머쓱, 웃는 아이를 보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네요. 아이가 갑자기 귓속말을 합니다. 우리 둘 만 남아 있는 거실인데 말이죠.


"엄마, 아빠 핸드폰 많이 하더라? 아빠도 하라고 해. 아빠, 그 오리처럼 안되게."






아빠가 핸드폰을 많이한다고? 싶긴 했지만, 아이 눈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어 별다른 얘긴 안 했어요. 그리고, 아빠도 퇴근하고 집에 오면 여기에 핸드폰 넣어두기로 했다고 설명해 줬네요. 끄덕끄덕 만족스러운 표정입니다.



모두가 만족하는 우리 집의 새로운 습관이 되어보길 바라며, 핸드폰과 잠시 이별하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그립지만 말입니다. (물론 아이가 잠든 이후 30분간의 도파민 활동은 허락하기로 했네요.)








아참. 아이가 말하는 그 오리!라는 것이 무엇이냐면요. 며칠 전, 귀여운 오리가 등장하는 영상을 하나 보여줬답니다. 오리 한 마리가 길을 걸어가다 길가에 있던 노란 공을 발견하고선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쓰읍- 먹는데요. 하늘을 날 것 같이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지는 거예요. 그런 뒤 다시 걸어가는데 노란 공이 또 있는 거예요. 이번에도 망설였지만 결국 먹고 말았죠. 다시 또 기분이 좋아져 붕 점프를 하네요. 다시 길을 걸어가는 오리 앞에 노란 공 하나가 또 있네요. 망설임 없이 쓰읍 들이마십니다. 조금 낮은 점프를 하죠. 빨리 걷다 못해 뛰어가듯 가는 오리. 그 앞엔 어김없이 노란 공이 있네요. 그 즉시 마셨고, 점프를 하였으나 얼마 안 돼 바로 넘어지고 맙니다. 몸도 느려지고 축축 쳐지고 있고요.



무언가에 중독됨을 표현하는 5분짜리 오리의 삶 : Nuggets 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인데요. 우연히 보고 아들에게도 보여주게 되었어요. 두 번 세 번을 함께 봤네요. 아들에게 부연설명을 해주었고, 핸드폰도 마찬가지임을 알려주었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오리가 오리처럼 안되게? 했던 그 오리랍니다.



아빠도 엄마도, 그 오리처럼 되고 싶지 않고. 앞으로 핸드폰과의 전쟁이 예고된 커가는 아들도 그 오리처럼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핸드폰수거함을 그저 가볍지만은 않은 마음으로 결정했답니다.



과연 앞으로 우리 집은 핸드폰 없이 잘 살 수 있을까요?



글쎄요. 일단, 뭐든, 해보고선 어떠한지 알아봄이 제일 중요하리라 생각 들지 말입니다. 해 보는 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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