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취향을 존중하겠습니다

새 신발 고르기

by 김혜진




엄마, 내 거니까 내가 고를래. 알겠지?





가을에 사준 단화가 맘에 드는지 아니면 적당히 신을 만한 운동화가 없어선지, 겨우내 한 신발만 신고 다니는 아들. 눈 내리는 날도 어김없이 신고 나갑니다. 발이 시릴 법도 한데, 괜찮다고만 하네요.



안 되겠다 싶어서, 다른 운동화를 신겼는데 오늘 아침 자세히 보니 밑창이 많이 달았더군요. 미끄러워서 안 신었던 거구나, 하고 물으니 별말은 없습니다. 속 사정이야 모르겠으나, 일단 안전을 위해서 새 신발을 사야겠다 싶어 아이에게도 말을 해줬어요. 발도 커지고 했으니 사이즈에 맞는 운동화를 하나 사놓을게. 하고요.



현관에서 낡은 운동화를 신다 말고 위를 올려다보며 신발? 내 신발? 묻네요.






"엄마. 내 신발 말이야? 내 거?"


"어. 아들 거. 신발 하나 사야겠다. 엄마가 사놓을게."


"아니 아니. 내가 살게. 내 거니까."


"...? 직접 산다고? 용돈으로?"


"에이, 그러겠어. 내 거니까 내가 고르는 거고. 아들 건데 엄마 카드로 사야지."


"직접 고르겠다는 거구나. 그냥 사둘게, 엄마가."


"아니 아니. 내 거니까 내가 고를게, 어? 알겠지?"






그래, 뭐. 그러렴. 싶어서 일단 알았다 대답하고선 주말에 같이 사러 가자, 했네요. 엄마가 골라서 사다 주면 좋아하고, 편리해할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지 말이에요. 일곱 살인데 그런다고, 싶어 살짝 놀랬습니다.



직접. 스스로. 내가.라는 말이 부쩍 늘어나는 네 살 무렵부터,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직접 부딪혀보게끔 하고 또, 적어도 두세 번까지는 시도를 해본 후에나 도움을 요청하도록 습관을 들이고 있는데요.



어느샌가부터 옷을 고르거나 신발을 고를 때조차, 직접. 스스로. 보고 만져보며 고르기 시작했지 말입니다. 직접 피팅룸에 들어가서 입어보고 싶다고까지, 하고요.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더 이상의 아이 취급은 그만둘 때가 왔나 봅니다.



취향 존중. 우리네 어른들도 호불호가 있는데, 아이들이라고 없겠나 싶습니다. 다양함을 인정하듯, 아들의 취향도 충분히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말고요. 독특할지, 고급스러울지 혹은 이건 아닌데 싶은 특이한 취향이 되었든 간에, 있는 그대로 취향 존중을 해야겠지요.



이번 주말. 아들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될 새 신발. 과연 어떤 운동화가 선택될지 신발 진열장에 놓인 신발들만큼이나 엄마도 긴장되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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