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그대 품 안에를 기억하나요?
이유는 알 수 없다. 울적한 기분이 들 때면 1994년 여름을 하얗게 불태운 <사랑을 그대 품 안에>가 보고 싶은지. 1994년은 나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1994년의 나는 12살이었고,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웬일로 아빠가 이삿짐센터에 꾸준히 근무하고 있었다. 1년째였다. 이사 온 지 1년이 넘어가는 셋집은 쥐의 소굴이었다. 마당에는 주인아저씨가 키우는 세 마리 개의 털들이 뭉쳐 다녔고, 나무마다 크리스마스트리의 솜처럼 털뭉치가 얹혀있었다. 도저히 창문을 열 수 없었다.
옛날 기와집을 고쳐서 세를 놓은 그 집은 천장과 지붕사이에 공간이 있었다. 그 빈 공간을 축구장처럼 쥐가 뛰어다녔다.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쥐가 거기에 살았다. 그리고 그들은 무리 지어 다녔다. 번식기만 되면 밤마다 쥐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무리 쥐덫을 놓고 쥐약을 놓아도 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나중에 알았지만 쥐들의 원천지는 주인아저씨의 집이었다. 몸에 장애가 있던 아저씨는 결혼에 실패한 후 신문 배달을 했는데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하고 낮에는 거의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았다.
우연히 본 아저씨의 방안은 온통 쓰레기였다. 그 속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아저씨가 겨우 보였다. 한마디로 쓰레기 집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내가 청소를 해도 쥐가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쥐들은 죄다 갉아먹는 습성이 있는지 아무리 쥐구멍을 막아도 다음 날이 되면 다른 쥐구멍이 생겼다. 전선을 갉아먹어 전기가 나가기 일쑤였다. 우리 집 밥솥과 냉장고 전선들은 늘 까만 절연테이프로 둘둘 감겨 있었다. 부엌에는 까만 쥐똥이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사시사철 썩은 내가 진동했다. 원인을 찾아보면 찍찍이에 붙은 쥐의 사체에서 나는 냄새였다.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다행인 건 아빠가 이삿짐센터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며칠씩 집을 비우는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빠는 계속 일을 나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더 가난해졌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아빠의 여자 친구 때문이었다. 포장마차를 하던 아빠의 여자 친구는 자녀가 네 명이었다. 첫째 딸은 이미 성인이 되어 독립했고, 둘째, 셋째 딸, 막내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나는 그 아줌마가 처음부터 싫었다. 아빠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전에는 일을 마치면 우리를 데리고 술집으로 향하던 아빠가 이제는 우리를 집에 두고 새벽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포장마차를 하는 여자 친구를 위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그곳에 가서 남편 역할을 해주었다. 새벽이 다 지나고 나서 포장마차의 마무리까지 해준 다음에야 집으로 왔다. 그 사이에 나는 동생을 챙기고 씻기고 둘이서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아빠가 막노동을 할 때보다는 수입이 나은 것 같은데도 왜 나는 늘 가난하다는 생각을 벗어날 수 없었을까. 포장마차를 하던 아줌마는 이제 작은 실비 집을 시작했다. 그 가게를 여는 데 아빠의 도움을 받았겠지. 증거가 없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아빠는 여전히 집에 일찍 오지 않았다. 간혹 일찍 오는 날도 있었다. 여자 친구와 싸웠을 때. 그런 날은 행복했다.
밤마다 쥐들이 천장을 뚫고 떨어지는 상상에 무서웠는데, 아빠가 있는 밤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짧은 행복이었다. 새벽이 되면 그 아줌마는 우리 집을 습격했다. 아줌마는 물을 열어 줄 때까지 잠긴 문을 흔들어 재꼈고, 1시간 내내 그 짓을 해도, 아빠가 열어주지 않으면 뒷문을 열어 안방 창문을 두드렸다. 그 싸움에서 아빠가 이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빠가 우리를 두고 다른 방으로 가서 화해를 하는 동안 사랑이 얼마나 지긋지긋한 감정인지 배웠다.
나의 현실은 시궁창 같았다. 결국 나의 상상은 이루어졌다. 어느 날 밤, 쥐 한 마리가 천장에서 추락한 것이었다. 얼굴을 간지럽히는 무언가를 잠결에 손으로 톡 쳤을 때 느꼈던 그 감촉, 그 짐승이 내던 소리. 나는 밤새도록 어둠 속에 굳은 채 앉아 있었다. 나는 든든한 보호자가 필요했다.
그랬기에 더욱더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세련된 서울말을 쓰고, 자연스러운 제스처가 몸에 배어 있는 그에게. 혜성처럼 나타난 스타라는 표현이 딱 맞는 그 사람. 바로 차인표.
나는 처음으로 덕질을 시작했다. 차인표가 나오는 스포츠 신문을 샀고, 지금으로 말하면 포카라고 할 수 있는 사진카드를 샀으며, 큰 브로마이드도 샀다. 매주 월화 9시 50분만 되면 텔레비전 앞을 지켰다. 한여름에도 멋진 가죽 쟈켓을 입고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차인표. 색소폰을 멋들어지게 부르고, 여주인공 진주가 힘들 때면 짠하고 나타나는 미국 물 가득 찬 강풍호. 두 번째 손가락을 좌우로 사랑스럽게 흔드는 그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랬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나의 시궁창 같은 현실을 잊게 해주는 단 한 사람. 서울은 저런 곳이구나.
나중에 어른이 되면 백화점에 취직해야겠다는 꿈을 꿨다. 나도 여주인공 못지않은 캔디니까,
그 백화점에 강풍호 같은 이사인 차인표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그래야만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당에 강아지털이 굴러다니고, 재래식 화장실에 똥은 이미 가득 차서 넘치기 일보직전이고, 집안이든 집 밖이든 쥐들이 돌아다니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 진주도 불량배인 친오빠에게 돈을 뜯겨도 씩씩하게 웃으면서 살지 않는가. 그러니 나라고 그렇게 못할 건 없었다. 얼른 어른이 되어 차인표 오빠를 만나러 가야지. 그래야 하니 오늘 하루도 참아야지 그는 나의 1994년을 견디게 해 준 스타였다.
나는 어른이 되었지만, 백화점 직원은 되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백화점 직원이 돼도 차인표 같은 이사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울적할 때면 습관처럼 사랑을 그대 품 안에 OST를 듣는다. 그리고 OTT를 열어 드라마를 본다.
3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이지만 여전히 그들은 젊고 아름답다. 나의 첫사랑 강풍호이사인 차인표 오빠도 이제는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다.
그는 주름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멋있다.
강풍호 이사 일 때의 싱그러운 젊음 대신 중후한 매력이 넘치는 그를 보며 생각한다.
아시나요, 그때 당신 덕분에 견딜 수 있었어요.
나의 가난을. 엄마의 부재를. 아빠의 사랑싸움을. 쥐들의 습격을.
멋지게 나이 들어줘서 고마워요.
나도 멋지게 나이 들어 볼게요.
여전히 나에게 강풍호이사인 차인표 오빠에게.
여전히 씩씩한 캔디를 꿈꾸는 나의 마음속 진주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