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너무나 어려운 나의 숙제.
5년만 징징거려 보세요.
네? 5년이 나요?
무거운 숙제를 받았다. 5년이라니. 충분히 징징거렸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아니라고 한다. 여기서 더 이상 어떻게.
어느 순간 상담은 답보상태가 되었다.
징징거리는 걸 배우는 학원이 있다면 배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글쓰기 수업 때마다 충분히 징징거린 글을 냈고,
그것도 모자라 브런치스토리에 그 글을 올렸다.
아무도 보지 않을 테니 올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버거워졌다.
고작 그 정도로 징징거리는 거야.
아무도 하지 않은 말이 나에게서 나와 나에게 되돌아왔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서 더 징징거리라는 말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 달이 흘렀다.
문제는 의외의 장소에서 터졌다. 20년째 하고 있는 사촌 계모임에서였다. 한 살 차이 나는 사촌언니가 총무를 맡은 지 6개월 만에 파업을 선언했다.
누가 들어도 사유가 충분했다. 그런데 나는 화가 났다. 총무를 하지 않겠다는 걸 설득하고 설득해서 처음으로 맡겼는데, 겨우 6개월 만에 그만두겠다니.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준다면, 이 모임에서 탈퇴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리고 떠난 사촌들과의 여행 내내 나는 그 누구와도 살갑게 대화하지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은 나조차도 생경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부터 매일 울었다.
상담 전날에는 입을 틀어막고 안방에 숨어 울었다. 아이들이 잠이 들고 나서는 더더욱 세게 입을 막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손을 떼면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아마 아이들이 없었다면 밤새 소리 내어 울었을 것이다.
퉁퉁 부은 눈으로 상담을 갔다. 그리고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 선생님, 어디서 감히, 내 앞에서 힘들다고, 아프다고, 못하겠다는, 어떻게 그러죠.
저는 그것보다 더 힘들었고, 더 아팠고, 그런데도 나는 다 참고했는데 감히 내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고통은 비교 대상이 아닌 거 알아요. 아는 데도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징징거리는 것도 징징거려 본 사람이 해보는 거예요. 저처럼 해본 적 없는 사람은 할 줄 몰라요.
네에 어느 누구도 저한테 참으라고 한 사람 없어요.
티 내지 말라고 한 사람도 없어요.
다 제가 했어요. 그런데 누굴 원망하겠어요.
그런데도 너무 화가 나요.
언니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질투의 대상이었다. 사촌 중에서 가장 잘 살았다.
언니는 방, 침대, 피아노, 엄마가 있었다.
처음으로 그 집에서 1박 2일을 지낸 적이 있었다. 고모가 차려주는, 그러니 언니의 엄마가 차려주는 식사가 있었다. 반찬통을 그대로 상에 올리는 내 밥상이 아니라, 내가 차린 밥상이 아니라, 예쁜 그릇에 담긴 반찬들이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이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은 이런 거구나. 고모는 언니의 머리를 빗겨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영이 머리가 곱슬이라서 안 빗어주면 다 엉킨다. 고모도 알고 있었다.
나의 마음을. 이미 수 십 년 전 기억인데 갑자기 왜, 그것도 지금. 다시 울음이 터졌다.
선생님은 티슈를 한 움큼 건네주었다.
언니는 엄마가 있었다. 나에게 없는 엄마 말이다.
언니는 인문계에 진학했다. 과외를 받고 학원에 다니고, 나는 상고에 진학했다.
다들 나에게 빨리 취업하라고 했다. 얼른 취업해서 아빠도 돌보고 동생 대학도 보내라고.
나는 어른을 강요받았고, 언니는 당연한 삶을 선물 받았다.
언니에게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엄마가 챙겨주는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기 때문이다. 언니가 제공받는 모든 걸 나는 내가 해야 하는데, 네가 똑똑히 해야 한다. 네가 알아서 해야 한다. 네가 집안의 기둥이다. 심지어 아빠와 동생까지 돌보라는데, 강요받는 나와는 다른 공주님 같았다. 그녀를 미워했다.
그런 그녀가 아팠다. 우울증과 공황장애였다.
그런데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나는 너보다 더 아팠어. 그런데 다 참고 해냈는데 너는 왜 참지 않고 너는 왜 안 해도 되는 거야. 여전히 너는 공주구나. 밤새 짐승 같은 울음을 토해내는 동안 생각했다.
왜 아무도 없었나. 왜 내 곁에는 어른이 없었나.
왜 나는 아무도 없었나.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징징거리는 것도 받아는 주는 사람이 있어야 징징거리죠.
받아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징징거리겠어요.
하늘 씨는 받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잖아요.
선생님 왜 아무도 저를 챙겨주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냥 단지 애였어요.
정말 애였어요. 그런데도 아무도 저를 애로 대하지 않았어요.
늘 어른처럼 행동하길 바랐어요. 나는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어른이었나 봐요.
언니가 미운 게 아니었어요. 아시죠. 부러웠어요. 언니가 미운 게 아니라 고모가 미웠어요.
고모는 때때로 저를 아프게 했어요.
6살 아이가 물병에 입을 대고 먹는다고 너희 엄마는 애를 어떻게 가르쳤길래, 애가 예의도 모른다고 말했어요. 제가 대학을 간다고 했을 때는 대학은 왜 가냐고 했어요.
대학 나와도 취업도 안 된다고. 제가 대학 간다고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요.
아빠가 아플 때 도와준 것만으로 이미 빚쟁이 같은 기분으로 살았어요.
그 이후로 도와달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엄마가 없는 아이는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다. 아니다 부모가 없는 아이는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다.
부모 없는 설움. 그 서러움이 이제야 터졌다.
서럽다고 말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40이 넘어 겨우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정제된 표현으로 상담시간을 보냈지만 이 날만큼은 처음으로 날것을 뱉어내었다.
감히 내 앞에서. 감히 내 앞에서.
평소의 나였다면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을 단어가 활어처럼 살아서 눈앞에서 펄떡였다.
감히라는 표현이라니, 내가 그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맞아요. 하늘 씨는 어렸잖아요. 아이였잖아요.
더 힘들었을 거예요.
아이가 울었다. 나의 아이가 아이처럼, 아이답게 엉엉 울었다.
언젠가 선생님이 일주일도 울어봤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었다. 그때는 사람이 어떻게 일주일 내내 울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에는 늘 넘치기 직전인 물이 찰랑이는 항아리가 있었다. 나는 늘 그게 넘칠까 봐, 넘쳐서 줄줄 흐를까 봐 걱정했다. 드디어 그 항아리가 넘쳤는데, 내 슬픔이 찰랑이던 항아리에서 줄줄 흘러 내 입 밖으로 꺼내졌는데,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항아리가 비워져 가는데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항아리 밑바닥에서 찰랑이는 소리를 듣는다. 그 찰랑이는 항아리가 마구마구 넘쳐서 흘러가기를, 해류를 따라 흘러가기를 대양을 도는 해류를 만나 지구를 돌기를. 그래서 내 항아리가 비워지기를 가벼워지기를.
나의 슬픔이 모여든 바다에서 언젠가는 닻을 내리고, 북극성을 쳐다보며 태풍이 지나가기를 빌어본다.
5년이요? 염치없이 징징거려 볼게요. 해볼게요.
그래볼게요. 그렇게 해볼게요.
나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훔치며 다음 상담 때 만나자는 인사를 건넸다.
아, 나는 알았다. 카타르시스. 그게 이거구나.
카타르시스, 카타르시스, 카타르시스를 중얼거리며 다시 인도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