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톤 행성을 떠나며.
어린 시절 나의 꿈은 드라마작가였다. 그게 아니라면 창작자라든지, 뭐든지 간에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쌀독의 쌀이 떨어지는 무수한 경험을 해본 나는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그래서 꿈을 바꿨다. 월급을 받는 어른이 되는 것. 나는 공무원을 꿈꾸었다.
이 세상에 이런 멋진 직업이 어디 있을까.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절대 월급이 끊길 일이 없는 일명 철밥통 직업. 나의 삼시 세끼와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는 직업이었다.
결국 그 꿈을 이루었지만,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최종합격 소식을 듣고 허탈하기 그지없던 마음을. 겨우 이걸 이루려고 나의 청춘을 받치다니, 그 흔한 연애도 그 흔한 유흥도 즐거움도 없이 독서실과 집만 오갔다. 아니다 거의 집에 처박혀있었다.
뒤늦게 찾아온 우울증인지 알 수 없었으나, 나는 매일매일 죽고 싶었다.
잠이 들면 눈이 뜨지 않길 바랐고, 그게 아니면 지나가는 차에 치이길 바랐다.
차마 자살할 용기는 없었다. 남아있는 동생에게 그것만은 안겨주기 싫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는 안방 침대에 누워, 베란다 빨래 건조대에 묶어놓은 끈을 바라보았다.
저기다 목만 걸면 되는데, 그럼 이 모든 것이 다 끝나는데, 이 고통도 끝나는데, 그럼 남은 동생은 어떻게 살지, 내가 죽으면 동생도 죽을 텐데 그건 견딜 수 없었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낮에는 죽은 사람처럼 잤고, 밤에는 하염없이 베란다에 끈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날은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동그란 구멍에 얼굴을 넣다가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죽고 싶은데 그런데 죽을 수가 없었다. 동생만 남겨두고 차마 죽을 수 없었다.
나의 20대는 온통 죽음이었다. 억울한 마음도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쯤은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내 마음속 동굴에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촛불이 일렁이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버텨보자. 버텨보자. 조금만 더 버텨보자.
그 촛불은 어느 날은 동생의 얼굴이었고, 어느 날은 나를 찾는 친구의 얼굴이었고, 어느 날은 나의 미래였다.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결국 20대 후반에 겨우 그 터널을 벗어났다. 취업을 했고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다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 나는 공무원이 되었다.
모든 게 다 끝난 줄 알았다. 하필 공무원 중에 3D로 불리는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되었다. 온갖 악성민원과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업무량을 이겨냈다. 사수는 이 정도면 울만한데 절대 울지 않는다는 칭찬까지 했다.
나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이 정도로 울고 쓰러질 것 같으면 지금 이 자리에 살아있지도 않을 거라고. 남들에게 독하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나에게만 독한 사람이 되고 있었다. 힘든 티를 내기도 싫었고, 못한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 점오 배 아니 두 배의 일을 해도 웃으면서 해냈다. 그런데도 나는 동기들보다 승진이 늦었다.
처음은 출산과 승진이 겹쳤다. 동기들이 다들 8급이 되었을 때 나는 여전히 9급이었다. 겨우 8급 되었을 때는, 동사무소에서 사회복지직이 절대 하지 않는 주요 행정업무의 하나인 주민자치를 겸했다.
인원이 부족해서였다. 보직을 구청으로 옮겨도 업무과중은 여전했다.
매번 터지기 직전에서야 내 앞에 떨어졌다.
8급 나부랭이 주제에 특정감사 준비를 혼자 했다.
팀장은 자기 안위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일반 직원 때도 일 안 하기로 유명했던 그는 팀장이 되고는 더더욱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겨우겨우 감사가 끝나고 나니, 옆자리 직원이 병가에 들어갔다. 나는 그 직원의 업무까지 맡았다.
그리고 나는 질병종합선물세트를 선물 받았다.
빈혈, 자궁근종, 유산, 그리고 갑상선암이었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서른다섯 살, 내내 몸과 마음을 혹사하고 살았다. 상상보다 가벼운 축에 속했다.
수술 전날까지 야근을 했다. 새벽 1시에 귀가한, 나를 보며 남편은 화를 냈다.
-미쳤나, 내일 수술할 사람이 이렇게까지 일을 하 는 게 말이 되나.
나는 남편의 걱정보다는, 갑작스러운 나의 휴직으로 남은 팀원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미안했다.
오히려 수술을 받으러 가는 길은 가벼웠다.
수술이 끝나면 이제 잘 수 있겠구나.
계속 잘 수 있겠구나. 수술을 받고 두 달 동안 잠만 잤다.
겨울잠 자는 곰처럼. 두 달이 지나서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부지런히 몸을 만들어 암수술 후 반년 만에 둘째를 가졌다. 그리고 만 3년 만에 복직을 했다. 변함없이 나는 열심히 일했다.
동료나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에 나의 인정욕구가 터졌다. 나는 누군가의 짐이 아니라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나는 행복했다. 누군가가 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나를 움직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의 도움이 당연해졌다.
나는 일 하지 않는 자의 구멍을 메꾸는 마개가 되어 있었다. 책임감 있게 일하지 않는 직원을 보면 화가 났다. 너무나 당연하게 본인의 일을 떠넘기는 사람들을 보면 분노가 치솟았다. 7월은 공무원의 정기인사 시즌이라 한 달 정도 어수선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업무를 제대로 인수인계하지 않고 떠난 자들의 몫을 남아 있는 자들이 해결하는 건 부당했다. 내 업무도 아니고, 내가 업무대행자도 아닌데, 전에 업무를 해봤다고 민원인에게 두 번이나 사과한 적도 있었다.
전담당자의 근태불량을 구구절절 설명할 수 없으니,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민원인은 두 번 다 당신이 뭔데 사과를 하느냐고 했다. 첫 번째는 참았고, 두 번째 눈물이 나왔다. 사고 친 놈은 벗어나고,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통화를 들었던 선배가 그랬다.
너의 마음을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사과는 없다고.
나는 왜 모든 걸 내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나.
나는 왜 모든 걸 책임지려고 하나.
나는 왜 슈퍼맨이 되려고 하나.
나는 크립톤 행성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지구에서 태어났는데.
입버릇처럼 내가 해줄게, 내가 도와줄게, 그러나 정작 나는 도와달라는 말을 잘하지 못했다.
간혹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때 면 마음속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살아있을 가치도, 사랑받을 가치도 없어. 이런 것조차 혼자 해결하지 못하니 무능력해.
내 마음은 온통 흙먼지가 날리는 황무지가 되어버렸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렇게 애쓰고 살았을까.
고요한 새벽녘까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때 내 곁에 있는 아이들과 남편이 보였다.
그리고 문득 몇 년 전 수술 전 날 밤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그때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나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렵고 슬펐던 것이다.
늘 일에 치여 가족을 등한시 한 내가 보였다.
나의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해 일에 몰두할 동안 오롯이 나의 몫을 채워준 남편과 아이들이 보였다.
무책임한 부모가 싫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나의 가족에게 무책임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의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가족의 시간을 희생시키고 있었다.
더 이상은, 더 이상은 나와, 가족을 희생시키며 살지 말아야지. 기를 쓰고 인정받기 위해 애쓰지 말아야지. 나는 살아있을 가치도, 사랑받을 가치도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황무지를 비옥한 토지로 만들어 작물을 길러내는 사람이었다.
인정받아 마땅할 나의 노력의 결실을 지금까지 나만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 내 곁에서 들리는 평온한 숨소리와 내가 그 증거였다. 그 새벽 고요히 다짐해 보았다.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나로서 살아가자고.
나는 나로서 된 것이다.
그럼 된 것이다. 그럼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