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by 하늘샘


아파요. 마음이 아파요. 너무 아파요.

한 달의 회피 시간이 끝났다. 징징거림에 대한 글을 쓰고 나서부터 글쓰기가 싫어졌다.

글쓰기 수업도 가기 싫어졌다. 부끄러웠다. 이유는 모르겠다. 매주 가는 상담시간도 빙빙 둘러댔다. 회피였다. 그동안 묶은 감정들을 들춰냈다면, 지금은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을 마주 봐야 했다.


보기 싫다. 보기 싫다. 보기 싫다.





내 마음을 회피하기 딱 좋은 시즌이기도 했다.

7월 정기인사로 사무실은 일주일 넘게 뒤숭숭했다.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업무를 알려주고 배우는 시기, 가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오는 사람들과 익숙해지기. 어쩌다 보니 20명의 인사이동자의 선물까지 챙기게 되었다. 정신없는 시기가 지나니 나는 팀에서 가장 선임이 되어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더더욱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노트북도 열어보지 않았다. 브런치스토리 연재는 한 달째 휴업 중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아무것도 쓰기 싫었다. 매주 만나는 선생님에게도 내 마음을 방어 중이었다. 선생님은 그것조차 알고 있을 것이다. 넉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숙직에, 엄마의 생일, 3년마다 돌아오는 현장평가로 교육도 들어야 했고, 타 구 시설에 다섯 곳이나 방문도 해야 했다. 사고 치고 떠난 직원의 뒷수습도 도와야 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와 메신저도 끊이지 않았다. 화가 났다. 집에 오면 자기 바빴고, 주말에도 자기 바빴다. 한 달 내내 하기 싫은 일만 잔뜩 쌓인 느낌이었다. 숨 쉴 구멍이 필요했다. 그 와중에 오랜만에 만나자는 지인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선생님에게 숨 가쁜 일정을 쏟아냈다.

- 약속은 취소하면 되잖아요.

- 사이가 멀어졌다가 최근에 괜찮아져서 겨우 말한 약속인데 어떻게 취소해요

- 하늘 씨가 좋은 상태에서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고 취소해도 괜 찮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약속은 죽어도 지켜야 한다는 주의였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 엄마, 아빠는 약속을 잘 지켰나요.

- 아니요. 약속을 지킨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과 약속을 꼭 지키려고 노력해요.


아빠는 술에 취하면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했다.

나는 어느 순간 믿지 않았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학원비를 매달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은 어느새 지켜지지 않았다.

- 엄마를 다시 만나고 같이 살고 싶다는 말을 해 본 적

있어요.

- 아니요. 물어본 적 없어요.

- 왜 물어보지 않았어요.

-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물어볼 이유는 없죠.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오 년 만에 연락이 왔을 때 어안이 벙벙하다고 해야 하나. 아홉 살 이후로 매일 빌었던 소원이 이루어졌는데도 믿기지 않았어요. 분명히 내 엄마인데 다른 사람 같았어요. 새엄마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엄마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다시 연락이 끊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방학 때나 겨우 며칠 볼 수 있는 엄마라도, 엄마가 다시 나타나서 좋았어요. 이번에는 말 잘 듣는 딸이 되어 다시는 엄마를 잃고 싶지 않았어요. 착한 딸이 되면 엄마가 다시 같이 살자고 할지도 모르잖아요. 아니 다시 아빠랑 우리한테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엄마 집에 다녀오면 알 수 있었어요. 엄마는 엄마의 삶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남자친구도 있다는 걸요. 묻지 않아도 답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가지고 있었는데, 중1일 때였나. 여름방학에 이모 식구들과 같이 피서를 갔어요. 텐트에서 같이 잤는데 이모랑 엄마가 말하는 걸 들었어요. 이모는 애들 데리고 와야 하지 않냐고 물었는데 엄마는 애들 다 컸는데 같이 살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어요.

저는 중학교 1학년이었고, 동생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어요.


- 그 말을 들었을 때 화나지 않았어요.

- 아니요.

- 슬프지 않았어요.

- 아니요. 무력했어요. 너무 무력했어요. 선생님 화도 힘이 있어야 낼 수 있어요.

만약 제가 그때 엄마에게 화를 냈다면 일 년에 몇 번 보던 엄마도 못 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참았어요. 그것마저도 보지 못한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참았어요.






나는 그토록 엄마가 필요했을까, 일 년에 며칠이라도 엄마를 만나고 싶어 했을까.

나에게 엄마의 사랑은 숨이 깔딱거리며 넘어가기 진적에 나를 살리는 비상약 같았다.

그래도 이 세상에 내가 살아도 된다는 증명을 허락받는 존재 같았다.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는 살 가치가 없다는 걸 매일 마음에 새기며 살다가도

나를 찾는 엄마를 보면서, 생명의 연장을 받듯, 그래도 살아보라는 허락을 받는 것 같았다.


- 너무 슬프네요.

- 네에 다시 생각해 보니 슬프네요. 그렇네요.

어느새 나는 제삼자처럼 나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나도 모르게 AI처럼.


- 슬프네요.

- 선생님 저는요, 아빠가 술에 취해 다 같이 죽자고 주정을 부려도, 우리를 고아원에 갖다 버렸어야 한다고 했을 때도, 차비조차 없을 때도, 쌀독에 쌀이 떨어졌을 때도, 일기장에 매일 똑같은 말을 썼어요.

나는 잡초처럼 강하고 독한 아이이다. 나는 독한 애다. 그러니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 이 정도는 참고 넘길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나는 독한 애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날은 일기장에 이렇게 썼어요.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게 해 주세요. 아무것도 못 느끼는 로봇이 되게 해 주세요. 제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해 주세요. 무감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 모든 감정을 다 느끼면 살아낼 수 없었어요.


선생님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선생님은 종종 내가 AI 같다고 했다. 나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정말 로봇이 되었다.

이베리아 반도에 부는 열풍 같은 엘 레반테 속에서 여전히 살고 있었다. 그 바람이 나를 그 여름으로 돌아가게 했다. 엄마에게 화조차 낼 수 없었던 어린 나. 이러면서도 걱정하는 여전히 어린 나.







- 제가 너무 징징거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선생님, 아파요. 선생님 마음이 아파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면서도,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 아파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아파요. 선생님. 너무 아파요.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뒤통수로 훅하는 열감이 치솟았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엄마에게 얼굴을 파묻고 내내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내뱉었다, 선생님도 티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우리는 그렇게 몇 분을 함께 울었다. 7시 50분이 넘어섰다. 울음을 정리해야 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50분이니까. 그만 울어야 선생님도 마무리할 수 있겠지. 나는 서둘러 얼굴을 훔쳤다. 괜스레 부끄러웠다.


- 이렇게 아픈데도 아이가 징징거리는 것 같아요?

- 아니요. 아니에요.


애써 웃었다. 선생님의 시선을 피했다.

오늘 나는 슬프다가 아니라 아프다고 했다.

둘의 차이가 무엇일까. 내 어린 시절 곳곳에 얼마나 아프고 슬픈 게 숨어있을까.

선생님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하늘 씨가 하루만 아팠을까요. 일주일만 아팠을까요. 사는 내내 아팠을 아이를 위로해 주세요.

오늘 나는 13살의 나를 위로하려 실컷 울었다.

그때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위로가 되었을까.

이 울음소리를 13살에 내가 들었을까. 그랬기를, 미약하더라도 제발 그랬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