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포와 금팔찌

by 하늘샘


한 달에 두 번. 수요일.

6시 55분쯤 일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 상담소를 향한다. 지은 지 오랜 된 건물이라 복도는 길고 조명이 어둡다. 긴 복도를 따라 스무 발자국쯤 걷다 보면 왼편으로 내가 삼년째 다니는 상담소가 보인다.




두 주에 한 번씩 만나는 A선생님과 이제 어느 정도 친밀감이 쌓였다. 그래도 여전히 어렵다.

상담은 언제나 그간의 일상들을 두서없이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직장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나의 감정들, 한 발 앞선 도움으로 받는 칭찬과 고마운 마음을 받는 것에 중독되어 어느 순간 마음의 경계가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더는 나의 마음을 희생하며 무조건 모든 것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상담의 효과라면 효과이다. 내 선의가 무색해지지 않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고, 내 마음을 다치지않는지점까지만 행동하기로 했다.

그 사이에 불편한 마음이 들어도 참기를 택했다.

선생님은 불편한 마음을 감수하는 것도 마음의 힘이 생겼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나에게 축하를 건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마음의 힘이 생기고 있었다.


- 선생님. 저는 요새 제가 개인주의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행동하려고 노력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그렇게 행동하면 화가 나요.

-하늘 씨는 굉장히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에요. 본인만의 명확한 선과 틀이 있어요.

-아, 맞아요. 저는 호불호가 강해요. 하지만 왠지 나쁜 것만 같아서 자꾸 둥글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호불호가 강한 게 나쁜 것인가요?

-음… 순한 사람은 아니죠.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명확했어요. 하지만 동생은 순해서 엄마가 하라는 대로 잘했어요. 저는 그렇지 못했어요.

-그것조차도 엄마가 어린 시절에 하늘 씨에게 심어놓은 감정일 거예요. 호불호가 강한 게 나쁜 건 아니에요. 자기의 명확한 규칙이 있고 그 규칙 안에서 생활하고 일을 해나가는 거잖아요.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어요. 이런 자신의 생각과 마음들을.

-그러게요. 저도 신기해요. 그리고 제가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의 행동이 간혹 받는 이를 부담스럽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생각도 요즘 들어요. 아마 선생님께 말씀드린 적이 없을 텐데. 지인이 업무적 실수로 곤란한 적이 있었어요. 큰돈은 아니지만 배상을 해야 했는데, 도와주고 싶었어요. 몇십만 원 정도였는데 저도 당장 현금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하다가 잘 안 하고 다니던 팔찌를 줬어요. 안 받는다고 했는데도, 제가 제 마음이라고 계속 우겨서 줬어요. 그런데, 제가 왜 그랬을까요. 지금 생각하니 받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팔찌요?

-네에 금팔찌요.

-흥미롭네요. 금팔찌라니. 흔한 방식은 아니네요. 지인이 해결할 수 없는 정도였어요?

-아니에요. 해결할 수 있는데도 저는 위로를 주고 싶었고,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왜 금팔찌였어요? 그걸 팔아서 현금융통을 하라는 옛날 방식 같아요.






선생님의 뒤로 보이는 책장에 눈이 고정되었다.

나의 과거 속 어느 시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돈이 없을 때 저를 데리고 전당포를 간 적이 있어요. 할머니는 차고 있던 팔찌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어요. 할머니의 팔찌는 여러 번 전당포에 맡겨졌어요.저는 그때마다 조용히 뒤에서 할머니를 지켜봤어요. 병든 아빠와 저희 때문에 할머니가 전당포에 팔찌를 맡기는 걸 볼 때마다 마음속에 빚이 쌓여가는 느낌이었어요.

-그 지인이 하늘 씨의 어린 시절과 겹쳐 보였네요.

하늘 씨는 힘든 사람을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절박했던 어린 시절의 하늘 씨를 도와주고 싶었나 보군요. 그 팔찌는 지인에게 준 것이지만, 사실 어린 시절의 하늘 씨에게 준 거예요.



아. 내가 나를 도와주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내 행동에 답을 얻었다.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 행동들이 사실은 어린 시절 어느 한순간에 있었다.




뒷골목 허름한 이 층짜리 건물. 컴컴하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전당포가 있었다.

철제문을 열고 들어가면 매표소처럼 보이는 곳에 주인아저씨가 앉아있었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는 팔찌를 맡기고, 돈과 교환증서 같은 종이를 받았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글을 배우지 못한 할머니는 그 종이를 받아 나에게 건넸다.

금액과 이자를 내야 하는 날짜 등을 할머니에게 읽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중학교 2학년. 15살. 병든 아빠와 어린 남동생과 함께 할머니의 단칸방 옆으로 이사 온 나이였다.

할머니가 하던 돼지국밥집은 시장에 불이 나면서 다 타버렸고, 할머니는 칠십이 넘은 나이에 횟집에서 호객꾼으로 일을 해야만 했다.

일명 ‘나까이’로 불리는 호객꾼.

하루의 일이 끝나면 그날의 일당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어서 할머니는 그 일을 택했다고 했다. 간혹 술에 취할 때면 나까이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눈물을 흘렸다.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울고 싶지 않은 내 마음과 달리, 눈물이 차올랐다.


온통 회색빛이었던 전당포의 풍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회색철창너머에 있던 온갖 물건들, 카메라, 시계, 가방, 도자기, 내 할머니의 금팔찌.


사는 내내 빚을 내어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엄마아빠를 힘들게 만든 빚.

병들고 아픈 아빠의 목숨을 살려 준 아빠의 형제들에게 진 빚. 집 나간 며느리 대신 우리를 키워주는 할머니에게 진 빚. 나만의 수첩에 갚아야 할 빚이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어린 나의 어깨는 절로 움츠러들었다. 다 갚고 죽을 수 있을까. 빨리 죽고 싶은데, 그 빚을 갚기 전까지는 어린 나는 죽을 수조차 없었다. 동생에게 물려고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 저 빚을 다 갚고 죽어야지. 그래야 가는 걸음이 가벼울 테니까.


이제는 다 갚았다고 생각하면 저렇게 불쑥 나타나서 알려 준다. 얼마나 많은 마음의 빚이 내 마음에 남아 있을까. 그 생각에 이르자, 할머니의 굽은 등을 바라보던 어린 소녀가 보였다.

가늠할 수 없는 슬픔과 무력함으로 할머니의 등을 쳐다보고 있는 어린 내가 보였다.



나는 늘 그런 아이에게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강해져야 한다고 다그쳤다.

빚을 갚아야지, 죽더라도 빚을 다 갚아야지.

나약해지지 말라고, 강해지라고.


나는 오늘 그 어린 소녀에게 빚을 갚았다.

다그치기만 했던 강해지기만 하라고 했던 빚을,

빚을 지어 준 것조차 몰랐던 마음의 빚을.

잊어버린 빚을 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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