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나요? 나의 배우들이여

올 한 해 잘 버텨낸 이들에게 바치는 글

by 하늘샘


어린 시절, 한 해의 마무리는 방송사 3사의 연기대상 시상식이었다.

신문을 통해 방송일정을 확인 후 MBC, SBS, KBS 방송사의 연기대상을 보는 것으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그중에서 KBS는 12월 31일 12시 제야의 종을 치는 장면을 보여주고 대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그래서인지 KBS의 연기대상 시상식이 유달리 기억에 남았는지도 모른다.

그 해의 무슨 드라마가 인기가 많았으며, 어느 배우가 상을 타는지, 상을 받는 사람의 수상소감을 듣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상을 받고 우는 배우를 보며 나도 같이 울 곤 했다.

사회자가 마무리 멘트까지 하면 카메라가 무대와, 무대 건너편에 앉아 있는 배우들을 비춘다.

주연급 배우들은 맨 앞자리 좌석에 앉아 있다. 그 뒤에, 단역배우들은 일반좌석에 앉아 있다.

드라마에서 스쳐 지나가는 역으로 많이 본 사람들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던 허름한 옷차림이 아니다.

각자 시상식에 맞게 본인 나름대로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다.

하지만 그들이 상을 받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늘 주연배우나, 조연배우들이 상을 받는 모습을 보며 박수만 쳐주다가 돌아간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저 대머리 배우는 작년에도 중절모를 쓰고 왔었지, 아 저 여성 배우는 작년에도 멋진 밍크숄을 걸치고 왔지, 의문이 생겼다. 그들은 어차피 받을 상도 시상하는 역할도 하지 않는데 왜 매년 시상식에 와서 자리를 채워줬을까. 시상식이 끝나면 쓸쓸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것밖에 할 것이 없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드라마의 주연배우만 기억한다.

아무도 그들을 기억해 주지도 축하해주지도 않는 자리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섞이지 못하고 자리만 채우고 떠난다. 왜 그런지 아직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그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올해도 또 오셨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어느 드라마인지 몰라도 그래도 계속 여기저기 스쳐 지나가는 역할로 잘 보고 있어요. 우리 내년에도 만나요. 비록 상을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올 한 해 고생하셨어요. 건강하세요. 그렇게 뒷자리에 앉은 그들을 응원했다. 동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 그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이제 어디에 있을까.

비록 구석진 뒷자리지만 당당하게 자리에 앉아 배우임을 알렸던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내 기억이 왜곡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은 배우라는 직업에 자긍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인정하는 배우였다. 그래서 한해의 활동한 배우들이 모이는 축제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누가 상을 주지도 호명해주지 않아도 그들은 각각의 이름은 가진 배우였다.

한 해의 마지막, 나는 그들을 생각한다.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빛나던 사람들.

타인의 인정이나 트로피가 없더라도 스스로 자축할 줄 알았던 그들은 멋진 배우였다.


어린 시절 나에게 어른이었다.

2025년 한 해가 또 지나가고 있다.

추억에 남아있던 이름 모를 배우들은 이제 더 이상 드라마에서 볼 수 없다. 하지만 난 기억한다.

여전히 응원한다.



잘 지내시죠? 저도 잘 지내고 있답니다.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한해를 잘 마무리했네요.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우리 서로 응원해요.

내년에도 잘 지내세요.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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