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의 에너지는 어디서 얻나요?

by 하늘샘


환한 보름달 아래 서 있는 내가 좋았다.

달님의 포근한 달빛이 나의 언 발을 녹여주었다.

달님은 그날 눈길을 비춰준 은인이었다.



상담선생님과 친해졌다. 나 혼자만. 아마도 시간의 힘이겠지. 일상의 사소한 불편을, 내 마음의 궁금증을 선생님께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그날은 최근에 다시 읽기 시작한 책에 대해 말했다. 김형경의 <소중한 경험>이라는 책을 다시 읽는데 몇 번을 읽어도 모르고 지나쳤던 문구를 발견했다고.


생의 에너지는 어디서 얻나요?


선생님은 곧잘 물었다.


- 어린 시절 어른이 아무도 깨워주지 않는데도, 지각없이 학교를 갈 수 있었나요?

초등학교 시절 스스로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 30분 넘게 걸어서 학교에 갔다.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다.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 후부터는 동생을 깨워서 세수를 시키고, 밥을 먹인 후 함께 손을 잡고 학교까지 걸어갔다. 그 루틴은 내가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일상이었다. 아빠는 늘 이삿짐센터 일로 지방에 있었다. 집에 있다고 살뜰히 애들을 챙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힘든 아빠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 어린아이가 스스로 일어나서 학교를 제시간에 가는 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집에서 돌봄을 받기 어려운 아이들이 학교를 지각하다가, 결국 자퇴하는 게 꼭 아이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 아빠한테 혼나는 게 무서워서 학교를 제때 간 것 같아요.

-그 이유도 있겠지만, 근원적으로 이 아이한테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예요.






나의 근원적인 힘,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지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책의 한 문구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떤 사람은 결핍이 에너지를 만든다고. 그렇다면 나의 에너지는 결핍에서 태어났구나, 갖고 싶은 것이 많고, 칭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나는 더욱더 예의 바르고 잘 배운 티를 내었다.

그 도구로 책을 선택했다.


- 저는 아마도 책을 통해서 배웠나 봐요. 집 근처 도서관에서 늘 책을 읽었어요. 어린이 예의범절 관련 책도 읽었어요. 친구 집에 가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른을 보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고, 혹여나 엄마 없는 아이라고 비난받고 싶지 않았거든요.

-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그 마음은 어디서 왔나요? 부모님께서 책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 아니요. 본 적이 없어요.


나는 또다시 미궁에 빠졌다. 생의 에너지라, 그 도구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떠오른 건 환한 달빛 아래 서 있던 여섯 살의 나.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이었다. 우리 가족은 한방에서 잤다. 배가 아파서 잠에서 깼다. 배가 주리를 틀 듯이 아팠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단칸방이라서 공용재래식 화장실까지 가야 했다. 미닫이 방문을 열고 나가서, 또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100 발짝쯤 걸어야 화장실이 나왔다. 이 밤에 혼자 가기에는 멀고 무서운 길이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조심조심 이불을 젖히고, 문 밖으로 나왔다. 혼자 화장실에 갔다.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화장실을 환하게 비추던 노란 알전구가 그렇게 밝은 줄 몰랐다. 일을 보고 나니 또 단칸방 우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서움이 몰려왔다. 그렇다고 마냥 화장실에 앉아 있을 수도 없어서, 나는 노란 알전구를 끄고,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열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따뜻한 경상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눈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을 본 순간이었다. 나는 무서움도 잊고 눈이 쌓인 길에 발자국을 내며 걸어갔다.


뽀드득, 뽀드득, 뽀드득.


신이 났다. 얇은 내의 차림에 맨발로 아빠의 커다란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왔는데, 추위도 잊고, 한참이나 눈을 밟고 서 있었다. 눈을 내려주신 하늘을 올려다보자, 밤하늘 가득 환한 보름달이 떠있었다. 달님이 따뜻해서 언 발가락이 다 녹았다.

- 아이는 왜 엄마 아빠를 깨우지 않았을까요?

- 혼날까 봐요. 혼나는 것보다, 혼자 화장실을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겠죠.

- 많이 혼났나요?

- 글쎄요. 기억이 안 나요.

- 그럼 다시 돌아왔을 때도 부모님이 자고 있었나요?

- 네, 아무도 제가 나갔다 들어왔는지 모르고 자고 있었어요.

- 어떻게 그럴 수 있죠?

- 제가 아주 조용하게 움직였거든요. 엄마 아빠가 깨면 혼날까 봐요. 그런데 선생님 제가 어른이 되고 아이를 키우니, 이해가 되지 않아요. 저는 지금도 몇 번씩 밤에 깨요. 아이의 몸부림에도, 아이가 코가 막혀도, 아이가 밤중에 화장실을 가도, 그런데 왜 저희 부모님을 몰랐을까요. 그래서 저는 그때 깨달았나 봐요.

믿을 사람이 없군.


나는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환한 달빛 아래에서 나는 깨달았다. 우리 엄마 아빠는 믿을 수 없어. 내가 의지할 수 없어. 내가 나를 살려야 해. 그 밤 나는 오롯이 혼자였다. 여섯 살의 고독은 때때로 뜨거웠다.







- 어쩌면 저의 생의 에너지는 생존이었나 봐요.



책으로 배우기도 전에 나는 알고 있었다. 나의 부모는 의지할 수 없는 대상이다. 그러니 이번 생은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건방진 어린아이의 생각이었을까. 그래도 그렇게 생각했다.


- 여섯 살 때 글을 읽을 줄 알았어요?

- 아니요. 초등학교 입학하고 배웠죠.

- 아까 책을 통해서 배웠다고 했잖아요. 그럼 여섯 살의 아이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 글쎄요. 본능적으로 알지 않았을까요.

- 아이가 영민하네요.



영민이라니. 나는 어쩔 줄 몰라 몸이 배배 꼬였다, 아이처럼. 이제는 더 이상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았다. 그것조차 부정하는 내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것 같아서. 말로 표현하지 못하니, 몸이 불편했다. 늘 선생님은 어떻게 아이 혼자 학교를 가고 지각도 하지 않고, 스스로 다할 수 있냐고 물어보시고, 어떻게 동생을 돌볼 생각을 했냐고. 어떻게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갈 생각을 했냐고 하신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그냥. 그냥,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고, 살아야 한다면 조금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냥 했어요. 선생님은 과거의 나에게서 시기심을 느낀다고도 하셨다. 그냥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엄마가 아무리 깨워도 못 일어나서 지각을 많이 했다는 선생님은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냥, 해줄 사람이 없으니 그냥 했죠. 선생님은 웃었다.


나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던 시간,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었던 시간에 나의 생에 에너지의 싹을 틔웠다. 지금 내가 어떤 공포를 견딘다 하더라도, 커다란 아빠의 슬리퍼를 질질 끌고 아주 먼 길을 가야 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눈이 내릴 것이며, 환한 달빛이 나를 비춰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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