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역할

by 하늘샘


A는 불행한 시즌이었다. 장담하건대, 내가 아는 A는 그런 불행함을 견뎌 마땅한 사람이 아니었다.

A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나에게 의지하라고 여러 번 말했다. 그녀가 머리를 기울일 때마다, 기꺼이 어깨를 내밀었다. 퇴근 후 매일 카톡을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떠난 해외여행에서도 A가 힘든 기미를 보이면 그것도 성실히 카톡에 위로를 실어 보냈다. 나는 성실하게 주 5일제로 A와 소통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주말까지 카톡을 주고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마침내 나는 지쳐버렸다. 그녀에게 빌려준 어깨가 회복될 시간이 없었다.


어느 날 A와 나는 회사 메신저로 서로 다독이고 있었다. 나는 심리 상담을 받고 있는데도, 기복이 여전해 힘들다고 했다. A가 말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이제 벗어나요. 내장까지 다 털어본 사이였다.

우리는 오랫동안 의지한 친구사이였다. 그리고 나는 상처받았다. 나는 이틀 동안 회색 젤리로 처럼 우울하게 찰랑거렸다. 서러움, 외로움, 억울함. 배신감.

그때 나는 보통의 사람이 가진 걸 다 가진 상태였다. 그러나 충만함을 느낄 수 없었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행복도 충만감도 모두 내 것이었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그래서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이제야 나 자신을 직면하기 시작했는데,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그만 징징거려, 나나 더 챙겨줘. 왜곡일 수도 있었다. 아니야. 그때 내 감정은.





나는 한동안 A를 피했다. 관계의 경계선이 필요했다. A에게는 나 외에 다른 안식처가 필요했다. A가 그것에 상처받았을까. 만약 A가 자신을 조금 더 신경 써달라고 말했다면 그래도 내가 상처받았을까. A는 A도 모르게 나의 여린 살을 꼬집었다. 주말마다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는 나에게 A는 집착 같다고 했다.


평일에 함께하는 시간이 적기에 나는 주말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A는 왜 나에게는 주말약속을 권유하지 않냐고. 서운하다고 했다.

나는 주말에 격주로 글쓰기 수업에 참석했다. 나머지는 아이들과 함께했다. 내가 누리지 못한 것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둘째가 태어난 후에는 나는 첫째를, 남편은 둘째를 챙기기로 했다. 그래서 주말에 A를 만날 수 없었다. 그것조차 A는 서운했을까.


내가 A에게 연락하는 빈도는 줄어들었고, 마침내 A와의 만남도 잡지 않았다.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는 A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처음부터 내게 의지하라고 말해놓고, 나는 상대방의 손을 놓았다. A에 대한 죄의식은 한 해를 꼬박 물고 늘어졌다.

- 저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사과하고 노력하는데, 마음이 움직이질 않아요. 더 이상 A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아요. 저도 누군가에게 말실수를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제가 너무 매몰차게 대하는 것 같아서 A에게 미안해요.

- 죄책감을 느끼네요.

- 네. 죄책감이 느껴져요. 제가 기대라고 했는데, 손을 놓고 도망쳤잖아요.

- 이런 경험이 이미 여러 번 있었죠. 자신의 대인관계 패턴인 거 알고 있나요? 하늘 씨는 상대방이 힘들면 도와주려고 해요. 상대방과 동일시되어서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상대방은 어떻게 될까요?

- 글쎄요.

- 상대방은 점점 의존하게 되죠. 그럼 하늘 씨는 그걸 다 받아주고요. 모든 걸 다 받아주는 이상화된 엄마처럼요.






내가 지쳐 떨어진 인연들. 어느 순간 경계를 넘는 요구를 나는 당연하게 들었다. 들어주지 않으면, 서운해했다. 나는 수생식물이었다. 뿌리를 지탱할 곳이 없는.


친구에게 내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달려갔다. 공무원 수험기간에도 힘들다는 친구와 한 시간씩 통화했다. 친구라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결혼식 축가를 약속했다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보름 전에 취소했다. 결혼식에 꼭 축가가 없어도 되지 않냐는 말을 붙이며. 남편은 급하게 축가를 부를 아르바이트생을 구했고, 그 친구는 선곡이 이상하다며 비웃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남기고 인연을 끊었다. 기 깔 나게 잘 풀리지 않는, 너와 내가 계속 친구관계를 유지하면 서로가 발전이 없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결혼생활의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던 친구 B를 위해 3년쯤 상담사 역할을 자처했을 때는 그나마 휴직 기간이라 괜찮았다. 공무원 복직과 동시에 체력이 바닥나, 상담사 노릇이나 상담사 역할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B에겐 내가 예전같이 않아졌다. 서운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들어줄 거처럼 해놓고 내가 배신한 셈이었다.


- 저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이제는 망설이게 돼요. 내가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는 건가. 내가 이렇게 해도 될까. 그 기준을 정하기 어려워요. 어디까지 경계선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 하늘 씨는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어린 시절 하늘 씨와 동일시해요. 그런데 상대방은 어린 시절 하늘 씨가 아니잖아요. 성인이에요. 제가 늘 하늘 씨에게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할 때 뭘 제일 먼저 염두하라고 했죠?

- …….


선생님의 얼굴이 굳어졌다.

- 자신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라고 했잖아요. 만약에 하늘 씨 딸이 감기에 걸려서 열이 나는데도, 친구가 힘들다고 나오라고 했다고 나간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 안 된다고 해야죠. 쉬어야 한다고.

- 딸한테는 그렇게 말하면서 왜 자신한테 그렇게 하지 않아요. 저, 하늘 씨한테 여러 번 말했어요. 자신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라고. 그게 제일 우선이라고, 그런데 그걸 기억 못 해요.


상담 선생님이 화내는 게 분명히 느껴졌다.

- 제가 제 건강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 않나 봐요. 여러 번 들었는데도 생각이 안 났어요. 아까 선생님이 진짜 화내시는 게 느껴졌어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셨어요.

- 한번 암에 걸렸던 사람이 건강을 챙겨야죠.

- 그러게요. 그런데 저는 왜 저 자신을 먼저 챙기기도 어렵고, 경계를 가지기도 힘들어요.

-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아까 말한 예처럼 엄마가 아이에게 안 된다고, 아플 때는 네 몸을 먼저 챙기는 거라고 말해줄 사람이 어린 시절 하늘 씨에게는 없었으니까요.

- …….

- 돌봄을 받아본 적이 없었잖아요. 그래서 스스로가 만든 이상화된 엄마가 되려고 한 거죠.




울컥 눈물이 터졌다. 돌봄이라는 단어가 나를 후벼 팠다. 나는 아홉 살 이후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홉 살 엄마가 되어, 남동생과 아빠를 돌보았다. 엄마처럼 힘들다고 자식을 버리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나가떨어졌고, 엄마와 나를 동일시했다. 그 많은 죄책감이라니.


-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돼요. 하늘 씨가 다시 관계를 맺기 싫은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다시 상처받기 싫은 마음이잖아요. 그 마음을 존중해 줘요. 반대로 다른 사람도 하늘 씨에게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어요. 뭐든지 상대적인 거잖아요.


상담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마음이 아팠다. 평소처럼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샤워를 하다가도 울컥 울음이 터졌다. 이제 내가 왜 그렇게 마음이 힘든 사람을 돌보고 싶었는지 알았다. 내 시간, 내 체력을 다 긁어모아, 남의 둥지를 만들어줬는지.


내가 받고 싶었던 돌봄, 내가 하고 싶었던 의존이었다. 내가 나를 돌볼 줄 몰랐다. 나는 이상적인 엄마가 되려 했다. 그것은 허구였다. 그 자리는 허구의 엄마가 아니라, 살아있는 내가 채워야 마땅했다. 이제 나는 나를 돌봐야 했다. 결국 나는 그 끝에서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상처투성이거나 말거나, 이상적이지 않거나 말거나, 나라서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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