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엄마가 함께 집에 산 기간은 고작 9년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 다면 긴 9년 동안 나는 줄곧 싸움의 목격자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언양으로 이사 가면서 자리 잡은 어느 단칸방에서의 싸움이었다. 나는 여섯 살, 남동생은 네 살.
무슨 이유로 싸움이 시작되었는지 몰랐다.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소란은 계속되었다. 부모님은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물건도 부서졌다.
급기야 아빠가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우는 동생을 데리고 수납장에 기대놓은 밥상 뒤로 숨었다. 어린 동생은 엉엉 울며 엄마를 찾았다. 눈을 감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폭력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동생의 눈을 손으로 가렸다.
여섯 살짜리 누이는 네 살짜리 동생의 눈과 귀를 가려주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그 뒤로도 많은 싸움이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건 밥상 뒤에서 벌벌 떨던 그 모습이었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 큰 소리로 화를 내는 민원을 상대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저마다의 이유는 있었다. 힘든 삶에 당장 도움을 받고 싶으나, 정부가 만들어놓은 기준에 적합하지 않아, 분노가 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고성과 삿대질을 받을 때면 나는 온몸이 굳은 채 꼼짝할 수 없었다. 심장이 빠르게 쿵쾅거리고, 손발이 떨리고, 목소리도 떨렸다. 그 순간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신체 반응을 억눌렀다. 떨면서 말하는 모습을 보이기 창피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초보 공무원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똑같은 상황에 노출되어도 아무런 신체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동료나 후배를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이상한 건가. 그럼에도 나는 애써 외면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나에게 주문을 외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기는커녕 증상은 더 심해졌다. 특히 중년의 남자가 소리를 지르면 온몸이 공포로 얼어붙었다. 무서웠다.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원인도 모르고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최근에 심리 상담을 받은 지 3년째가 되어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트라우마였다.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나는 유독 사십 대나 오십 대 남자의 고함에 더 격렬한 신체 반응이 일어났다. 아빠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밥상 뒤에 숨어 벌벌 떨던 여섯 살 아이로 돌아갔다. 최근에도 업무상의 이견차이로 통화를 하던 중 상대방의 일방적인 큰소리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손발에 식은땀이 솟구쳤다. 목소리도 떨렸다.
그는 건장한 50대의 남성이었다. 나는 그 모든 신체 반응을 억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끝까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상대방의 일방적인 통화 종료로 그 상황은 끝났다.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고, 다음날은 아예 연차를 냈다. 나는 그 상황을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꿈을 꿨다.
나는 상담선생님께 꿈 이야기까지 모조리 말했다.
- 고함을 치는 사람을 보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엄마 아빠가 부부싸움을 할 때 숨었던 밥상이 떠올라요. 단칸방에 숨을 곳이라고는 그곳밖에 없었거든요. 흔히 어린 시절 엄마아빠의 부부싸움을 목격한 아이의 심리상태를 전쟁 상황에 노출된 것과 비슷한 스트레스 지수를 받는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전쟁통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동생의 손을 잡고 숨을 곳이라고는 수납장에 세워둔 밥상 뒤였어요.
- 그때 어땠어요?
- 무서웠어요. 너무 무서워서 눈을 꼭 감고 귀를 막았는데, 그러다 어린 동생이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걸 볼까 봐 귀에서 손을 떼서 동생의 눈과 귀를 막고 꼭 안아줬어요. 보지 말라고요.
- 트라우마가 되었네요.
나는 그 순간에도 동생을 생각했다. 나보다 어린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나는 그 모든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동생은 안전하게 보호하고 싶었다.
- 이제는 그 순간에서 분리해 보세요. 누군가 고함을 지르면 멈칫할 수 있어도, 이제는 더 이상 여섯 살 아이가 아니잖아요.
- 가능할까요?
- 처음에는 힘들 거예요. 하지만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예요.
- 몸도 얼어붙지만,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요.
- 꿈에서 계속 자기를 변호하는 꿈을 꿨다고 했잖아요. 하늘 씨는 자기변호능력이 떨어져요. 어린 시절에 부당하고 억울한 상황에서 스스로 변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그 능력이 부족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해봐요. 연습해 봐요. 글을 써서 외워 보기도 하고.
- 선생님처럼 차분하게 말하고 싶어요.
- 나도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에요. 방금 든 생각인데, 어린 시절에 오빠가 말도 안 되는 걸로 우겨서 싸우다 보니 오빠를 논리적으로 이기려고 노력했거든요. 다음에는 이 말을 꼭 해야지. 그다음에는 이 말도 꼭 해야지. 그러다 보니 자기변호능력이 생긴 거 같아요.
선생님과 나는 아이처럼 웃었다. 오빠의 말싸움 덕분에 자기변호능력이 늘었다는 선생님의 고백 덕분에 헬륨가스를 넣은 풍선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 부부싸움을 할 때도 나지막하게 조곤조곤 말해요.
- 선생님 저는 큰소리로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싫으니까요. 부부싸움도 카톡으로 싸워요.
우리는 다시 웃음이 터졌다.
그 트라우마가 남긴 상처에도 좋은 것은 있었다.
나는 큰소리로 아이들 앞에서 남편과 싸우지 않는다. 나는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 아이들 앞에서 술주정을 하지 않는다. 밤마다 술에 취해 들어오는 아빠가 무서워 불안에 떠는 게 싫었다. 운이 나쁜 날에는 아빠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한겨울 비를 맞으며, 엄마와 동생과 벌벌 떨며 도망간 적도 있었다. 그때도 엄마는 우리를 따뜻하게 안거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냉담한 표정으로 앞만 보고 걸어갔다. 나는 그런 엄마가 우리를 두고 도망갈까 봐 동생과 아무 말 없이 따라 걸었다.
아빠는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술만 취하면 다른 사람으로 변했을까. 왜 그렇게 우리를 집에서
쫓아냈을까.
덕분에 나와 동생은 술을 마셔도 절대 주정을 부리지 않게 되었다. 술에 취하면 픽 쓰러져 잘 뿐이다.
나의 이상형은 술 마시고 주정하지 않는 남자였다. 그러다 보니 나보다 더 술을 못 마시는 남자와 결혼했다. 우리 아이들은 늘 웃으며 잠이 든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잘 자라고, 좋은 꿈을 꾸라고 말해준다. 아이들도 우리에게 말한다.
엄마 아빠 사랑해, 잘 자, 좋은 꿈 꿔. 편안하게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를 들을 때면 눈물이 난다.
우리 아이들은 절대 한겨울 비를 맞으며 어둠 속을 걷지 않겠구나. 우리 아이들은 절대 불안에 떨며 아빠나 엄마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제는 더 이상 여섯 살짜리 아이가 아니에요.
분리해 봐요.
인정하기로 했다. 더 이상은 그 트라우마를 외면하지 말아야지.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고,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고, 그러니 스스로 탓하지 말아야지.
또다시 그런 상황을 겪더라도, 그래서 또 그 밥상 뒤에 숨은 아이가 생각나더라도, 그 여섯 살로 돌아가지 말아야지. 계속 시도해야지. 실패해도 또 시도해야지.
그 밤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한 발짝 나아갔다가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결코 내가 다 나았다고, 결코 내가 다 이겨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천천히 치유해 나갈 것이다. 실패할 날도 무수히 많을 것이고, 내가 싫어서 미칠 것 같은 날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나아질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