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결정해야 했다.
행정학이라는 전공을 따라 공무원이 될지, 아니면 복수전공으로 선택한 사회복지학에 맞게 사회복지사로 취업을 할지.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2005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정적인 직업은 공무원이었다. 그 당시 공무원의 열풍은 상상이상이었다. 취업의 문은 좁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좁았다. 매년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치솟았다. 제일 부러운 소식은 졸업하기 전에 공무원에 합격한 동기의 소식이었다. 나는 미래의 안정을 위해 이십 대의 몇 년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대학교 4학년 겨울방학에 서울 노량진으로 들어섰다. 따뜻한 남쪽에서만 살았던 나에게 서울의 겨울은 매섭기만 했다. 이제는 더 이상 학생도 아니었다.
나는 노량진의 공시생이었다.
서울 노량진 한 평반 고시원에서 석 달을 살았다.
새벽 여섯 시에 기상해서 식권을 끊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공무원 학원에서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고시원에서 저녁을 먹고, 밤 열한 시까지 공부했다. 도돌이표 두 번이 끝나도 이백 번쯤 연주가 남아있는 생활이었다.
고시원 벽은 방음도 한파도 막아주지 못했다. 옆방의 소음이 얇은 합판을 타고 넘어왔다.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고시원 책상에 붙어 공부하면 시멘트벽이 뿜는 냉기에 무릎이 시렸고, 내 몸 하나로 꽉 차던 침대에 누우면 이불 밖으로 내놓은 얼굴이 시렸다. 서러웠다. 아빠도 죽고, 스무 살짜리 남동생만 부산에 남겨놓고 온 서울이었다.
마음은 조급한 데 갈 길은 멀었다. 대학 때도 받지 못한 엄마의 도움을 졸업하고 받는 것도 불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지쳐갔다. 낯선 환경도 금전적인 어려움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다. 함께 노량진에 입성한 친구들도 서서히 지쳐갔다. 학원 강사는 농담처럼 근처 사육신공원에 귀신이 나오니, 밤늦게 얼씬도 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귀신 따위는 믿지 않았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누군가가 공원에 목을 매었다는 풍문이 더 무서웠다.
내 마음은 간장처럼 졸아들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노량진에서 내가 집으로 돌아오자, 동생은 군대에 갔다. 셋이 살던 집에 혼자 남았다. 집 근처 독서실에 등록하고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열 시까지 책상에 앉아 공부만 했다.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아빠가 죽고 애도의 시간을 가지는 거조차 사치였다. 친구들은 당연히 내가 휴학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학기 중 장례를 치르고, 겨울방학을 견디고 3학년 신학기를 제 속도에 맞았다. 여전히 수업도 열심히 들었고, 여전히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다. 한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슬픔으로 가득 찬 어항에 갇혀 뻐끔거리는 금붕어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미뤄둔 슬픔은 배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무기력해져 나만의 동굴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 동굴에서 겨우 나오는 날에는 다시 독서실로 갔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일어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이었지만, 나는 나만의 전쟁터로 돌아왔다.
아주 추운 겨울 어느 날, 밤 열 시, 집으로 가려 독서실에서 나왔다. 독서실은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었다. 그날따라 매서운 겨울바람에 목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아파트 단지에는 평소보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컴컴한 겨울밤이 무서워 잰걸음으로 걸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긴 숨을 토해내며 밤하늘을 쳐다보다, 문득 어느 집 거실에 눈이 고정되었다. 불 꺼진 거실에 홀로 반짝이던 크리스마스트리였다. 지나치게 반짝이던 전구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시기, 질투, 상실감. 외로움, 비참함, 아직도 나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도 저런 집에 살고 싶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는 집, 예쁜 트리를 꾸밀 수 있는 그런 집,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그런 집에 살고 싶었다.
지금도 그 트리가 반짝반짝 치솟아 오른다. 처음으로 트리를 사서 알록달록한 전구를 달고, 오너먼트로 트리를 꾸미던 날, 나는 그 집을 생각했다. 차가운 겨울밤을 데우던 꼬마전구들.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은 여전히 행복할까. 그들은 알까. 그들이 꾸민 크리스마스트리가 누군가에게는 상실과 희망을 주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바람이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무탈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실을, 그리하여 그 무탈한 하루에 마음 깊이 감사함을 토해낸다는 사실을.
내가 너무 불행했을 때는 사소한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 행복해진다고 말하는 사람을 비웃었다. 불행을 느껴보지 못한 자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감히 말할 수 있다. 출근하고 마시는 한 잔의 커피와, 맛있는 점심과, 동료와 나누는 실없는 농담과, 되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과, 가족들과 하루를 마무리하는 인사를 하며 잠들 수 있는 편안한 잠자리가 있다는 것에, 20년 동안 받지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일상이라는 선물로 받고 있다. 나는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차가운 겨울밤 혼자 외롭게 남의 집 트리를 쳐다보던 20대를 나는 웃으며 보내줄 수 있다.
나의 과거는 지독히 불행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불행을 떨치는 방법을 안다. 나는 이 일상을 야금야금 조금씩 길게 누릴 것이다. 그 길 양쪽에는 알록달록한 꼬마전구가 빛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