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받으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감정의 정체가 명료화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이 감정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나에게는 수학문제의 정답을 찾는 거처럼 감정의 이름을 찾는 게 즐거웠다.
그날의 감정은 아주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고, 쓸모를 다한 부표처럼 파도에 밀려다녔다.
얼마 전에야 나는 깨달았다. 그것의 이름은 모멸감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된다. 학년 단체로 야외수영장으로 소풍을 갔었다.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데 어느 순간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나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나와 같이 노는 친구의 엄마가 친구를 쳐다보는가 보다 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그래, 저 애다. 저 애 엄마가….
수군거리는 소리. 나를 훑어보는 시선들. 기어코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 니 이리 와 봐라.
- 저요?
- 어. 니 이리 와 봐라.
나는 쭈뼛거리며, 풀장을 나와 엄마들이 모인 야외 테이블로 갔다. 엄마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중에 안면이 있는 친구엄마가 입을 열었다.
- 네가 하늘이 맞제?
- 네.
- 나는 OO이 엄마다. 니랑 같은 반 친구.
- 안녕하세요.
- 너거 엄마 OOO이 맞제? 너거 엄마도 안다.
- 네.
- 이제 가봐라. 가서 애들이랑 놀아라.
- 네.
나는 꾸벅 목례를 하고 뒤돌아섰다. 꼭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뒤돌아서는 내 뒤로 그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 쟤가 그 집 딸이다. 아까 말한 엄마 집 나갔다는 그 집 딸내미.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엄마 없는 아이라는 것을. 심지어 담임 선생님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모를 리 없었다. 이 정도로 좁은 시골동네에서 비밀이 있을 수 없다. 나는 휘청이는 뒷모습조차 그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울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은 잊었다. 웅크린 모멸감은 상담을 받으러 가는 길, 어느 거리에서 불현듯 나를 치고 지나갔다.
- 오늘 상담을 받으러 오는 길에 이 일이 생각나는 거예요. 그리고 알게 되었어요. 그때 그 감정은 모멸감이었어요.
- 너무 폭력적이고 무식하네요. 그건 어른들의 행동이라고 볼 수 없어요.
- 맞아요.
그들은 어른이 아니었다. 그들은 말과 눈빛으로 나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엄마 없는 아이. 엄마 없는 아이. 엄마 없는 아이.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열 살짜리의 비밀을 까발리고 수군거렸다. 나는 그날 이후 절대 엄마 없는 아이로 보이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끗하고 단정한 옷차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더럽고 냄새나는 아이는 모두가 싫어할 테니까.
따뜻한 날에는 빨간 고무 대야에 동생을 앉혀 놓고 씻겼다. 겨울에는 남동생을 데리고 목욕탕에 데려가 때를 벗겼다. 옷을 입힐 때도 속옷이 삐져나오지 않게 늘 단단히 여며주었다. 나는 동생의 어린 엄마였다. 내 동생만은 저런 소리를 듣지 않게 하고 싶었다.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 아이처럼 보이게 해 줘야지. 그래서 나처럼 그런 멸시는 당하지 않게 해 줘야지.
-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나중에 제가 엄마가 없다는 걸 알고 깜짝 놀라셨다고 해요. 늘 단정하게 옷을 입고 다녀서 전혀 몰랐다고.
- 아이가 참 영민하네요.
상담선생님은 저번에도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그 단어에 몸이 꽈배기처럼 배배 꼬였다.
-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한 거예요?
- 엄마 없는 아이라고 손가락질받기 싫어서요. 제가 받는 건 그렇다 쳐도, 어린 동생은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안 씻고 냄새나면 친구들이 싫어하잖아요.
나는 동생을 보호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다
보호하지는 못했다.
언젠가 동생에게 물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도시락 싸준 적이 있나?"
"누나가 내 도시락 매일 싸줬잖아. 이때까지 누나 마음 아플까 봐 말을 안 했는데, 도시락 반찬 소시지 안 싸 온다고 친구가 뭐라 해서 싸웠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내가 싸줄 수 있는 도시락 반찬은 겨우 달걀 프라이나, 김치나 무말랭이나 김이 전부였다.
"미안하다. 소시지 반찬 못 싸줘서 미안하다."
끝내 나는 울음이 터졌다. 전화기 너머 동생의 목소리에도 물기가 느껴졌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는 차마 입 밖으로 더 꺼내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 그건 하늘 씨가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에요.
상담 중에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선생님은 말했다.
- 알고 있어요. 제가 미안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걸요. 그래도 미안했어요. 그래도 마음이 아팠어요. 동생이 느꼈을 슬픔이 느껴져서. 엄마가 우리한테 미안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알아요. 그래도 동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요.
- 잘 키웠어요. 정말 어린 동생을 잘 키웠어요.
착하고 착한 내 동생은 여전히 나에게는 아픈 손가락이다. 사회나 가정에서 단단하게 자신의 몫을 해나가지만 나에게는 늘 누나야, 누나야 부르며 달려오던 아이다.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담배 많이 피우지 말고, 장거리 운전할 때 졸지 말고, 중간중간 쉬었다가 운전하고. 집에 일찍 들어가라. "
여전히 내 눈에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동생에게 당부한다. 출장 다닐 일이 많아 밤 운전을 할 때도 걱정되고, 영업업무로 접대할 일이 많아 술을 많이 마실까 봐 걱정되고, 타국살이에 스트레스를 받아 담배를 많이 피울까 봐 걱정이 된다.
"알았다. 잔소리 좀 고만해라."
투박하게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잔소리 좀 고만하라고 말하는 동생은 되려 나를 걱정한다.
'아프지 마라, 건강 잘 챙겨라. 아무리 내가 결혼을 하고 와이프가 있고, 애들이 있어도. 내 가족은 누나밖에 없다. 그러니까 아프지 마라.'
안다. 마흔이 넘은 동생은 여전히 겁이 날 것이다. 내가 없어질 까봐. 나는 그 녀석의 어린엄마였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일부러 매정하게 말한다.
"내가 왜 네 가족이고. 네 가족은 올케랑 애들이다. 그러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니들끼리 잘 살면 된다. 니나 아프면 참지 말고 병원 가고 알았나, 담배나 끊어라."
모든 것을 다 막아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덜 아프게 하려 최선을 다했다고.
나 또한 네가 있어서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고맙다. 제발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아. 그리고 이제 그만 불안해해 네 옆에는 든든한 너의 가족이 있어.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남동생에게만 무뚝뚝한 누나는 오늘도 잔소리만 퍼붓는다. 잔소리에 담긴 내 마음은 늘 염려와 걱정범벅이다. 동생만은 제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혼자 많이 울지 않기를. 혼자 많이 마음 아파하지 않기를. 세상 모든 멸시에서 용케 피해 가기를 앞으로의 삶도 무탈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