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낡은 꿈을 응원합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앙드레 말로-
공무원 수험기간, 책상에 붙여놓은 포스트잇 명언이 많았다.
노력하자, 나는 할 수 있다. 고통은 잠시지만, 포기는 영원하다.
앙드레 말로의 명언도 그 여러 문구 중 하나였다. 공무원 생활에 적응하며 그것들은 내게서
희미해져 갔다. 그런데 십사 년 만에 대학원 면접을 앞둔 어느 날 앙드레 말로는 느닷없이 되돌아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시험에 몇 년을 투자했지만 매번 불합격이었다. 28살. 새 분야에 도전하기는 이른 나이. 취업하기 에는 너무 늦은 나이. 그때는 28살이 더 이상 젊지 않다고 오해했다.
고등학교에 단기 근무하는 상담인턴교사직에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했다. 8개월 계약직이지만 방학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무급이었다. 20대 후반에 아무 경력도 없는 나는 무급마저 고마웠다.
말이 상담인턴교사지 나는 상담에 관해서 백지나 다름없었다. 사수는 매주 토요일 A대학교에서 하는 상담학회 특강을 들으면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2년 가까이 일하면서 매주 특강을 들었다.
주말에도 쉬지 못하니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매주 달라지는 상담 대가들의 강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매료시켰다.
내 마음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길이 없던 나에게 주말 워크숍이 문 하나를 열어주었다.
심리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세상에 이런 학문이 있었구나. 마침내 나는 심리학을 구체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졌다. 대학원에 가고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기가 막연했다. 석사를 따면 상담사를 직업으로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정도였다. 하지만 나에게 대학원은 너무나 먼 얘기였다. 학교에서 받는 최저시급으로는 대학원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마음속에 이루지 못할 꿈 하나를 남겨두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나간 소개팅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결혼은 꿈도 꿀 수 없던 내 처지를 그는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였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다. 그는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나의 꿈도 응원해 주었다. 학비는 걱정하지 말라며, 가고 싶다면 가라고 말해주던 고마운 사람.
그 고마운 사람에게조차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결혼과 동시에 다시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의 신혼생활은 나의 수험생활과 함께였다.
남편은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싸주었다.
매일 아침 7시에 그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도서관에 갔다. 그가 나를 데리러 오는 저녁 10시까지 스톱워치를 두고 공부했다. 꼬박 9개월, 그는 수험생아내를 뒷바라지했다. 이런 보살핌은 부모에게도 받아본 적 없었다.
나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지방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암에 걸려 휴직도 해보았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나자 대학원 진학은 꿈으로만 남아있었다. 하필 선망했던 대학원이 집 근처라 매해 입시요강만 다운로드하여 볼 뿐이었다.
심리 상담을 받은 지 3년 차를 넘어서자, 묻어뒀던 꿈이 눈앞으로 솟아올랐다. 용기가 생겼다.
보나 마나 입학시험에 떨어질 것 같았고 떨어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원서접수를 망설이다 마지막 날에야 제출하고, 화상면접을 보는 날까지 전전긍긍했다.
그러다 어느 퇴근길에 앙드레 말로와 조우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다 잊었다고, 이루지 못할 꿈이라고 여겼지만 꿈은 여전히 한 칸을 채우고 있었다.
앙드로 말로와의 세 번째 조우는 의외의 곳에서였다. 심리학과 대학원 입학시험은 학부성적 50%, 면접이 50%였다. 면접위원이 영어로 물어보았다.
“Please tell us, in English, why you applied to this department.”
영어로 대답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 과에 지원한 동기. 동기는 …. 이 질문 예상은 했지만, 영어로 답하라니. 머리가 하얬지만 어쨌든 대답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마이, 드림!
내뱉는 순간 깨달았다. 망했다.
마이 드림이라니, 마이 드림이라니, 내가 대학원 시험을 본다는 것을 아는 이들에게 웃음거리를 제공했다. 상담선생님에게도 떨어질 것 같다고 얘기했다.
선생님은 사실 내가 떨어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공부를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교수님인데, 하늘 씨 성격에 분명히 애쓸 것이고 그럼 몸이 힘들 거라고.
그 이야기를 들으니 떨어져도 덜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 경험 삼아 한번 해본 거야. 거기에 의의를 두자. 다음에 다시 도전해 보는 거지. 나의 행복회로는 아주 잘 작동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분주히 일을 하다가 문득 그날이 발표일 인 게 떠올랐다. 불합격이라도 내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수험번호를 넣고 마우스를 클릭하자,
나는 구청 6층 동편 사무실에서 공공기물처럼 얼어붙었다. 합격.
내가 잘못 보았나, 모니터에 얼굴을 바짝 대었다. 합격이 맞았다. 두 글자 앞에 ‘불’은 붙어있지 않았다. 나는 합격했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과였는데, 여러 번 도전한 끝에 붙은 사람의 수기도 읽었는데, 합격의 소식을 가장 담담하게 받아들인 이는 남편이었다. 합격할 줄 알았다고, 대학원에 원서를 넣었다고 이야기를 한 순간부터 학비는 어떻게 마련할지 의논해 보자고 하던 사람이었다. 시어머니가 가장 걱정이 되었다. 직장 다니는 며느리를 대신해 살림해 주시고 애들 봐주시느라 힘들 텐데, 그런 며느리가 대학원도 간다고 하면 싫어하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공부하면 좋은 거다. 젊을 때 많이 배워야지.
어머니. 나의 두 번째 어머니. 친정엄마도 대학원 학비를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상담선생님에게도 합격소식을 전하자, 붙을 줄 알았어요, 하고 선생님은 당부했다.
- 하늘 씨 성격을 알기에 말하지만, 절대로 무리하지 말아요. 건강이 제일 중요해요.
선생님의 당부를 지킬 자신은 없었지만.
- 결국은 원하는 걸 해내네요. 시간이 걸릴 뿐이지.
그랬나. 공무원이 되고 싶었을 때도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결국은 합격하였다.
대학원도 시간이 걸렸을 뿐.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끝에 결국은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게 되었지.
내가 끈기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 단 한 번도 나는 포기한 적이 없었다.
그런 나를 늘 나약하다고, 게으르다고 채찍질만 했다니, 세상에 이렇게 지독한 가스라이팅도 없을 것이다. 마음이 점점 나아지니, 내 마음이 제대로 보였다.
상담을 시작할 때도 그랬다. 내가 정말 나아질 수 있을까. 그러나 결국에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자랐고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처럼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가고 있다. 걱정인형처럼 흔들리면서도, 반 발짝씩. 반 발짝씩.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힘들면 잠시 앉아 쉬어가도 된다. 천천히 나아가면 된다. 나는 나를 다독이며, 주문을 걸어본다.
내가 싫어지는 날이 또 오기는 하겠지, 그래도 나는 내가 참 좋다. 지금 내 꿈과 가장 닮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