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소마 창녕

중도포기의 자유

by 하늘샘


아파야 청춘이라는 이십 대를 한참 지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슬퍼하던 때도 한참 지나, 불혹도 넘어선 지 한참이 되었다.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를 넘어서고, 지천명, 하늘의 뜻을 알 때를 겨우 몇 년 앞두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세상 모든 일에 미혹되고 있다. 하늘의 뜻은커녕 내 마음도 파악하지 못한다.


호기롭게 도전해서 호기롭게 붙었다.

그렇다고 자신감이 넘쳐흐르지는 않았다.

대학원도 오리엔테이션을 한다는 게, 엠티도 간다는 게 놀라워서 앓아누울 판이었다. 낯선 환경에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그나마 얼굴 갈아 끼우기 기술을 사회생활에서 배워 티가 나지 않을 뿐 내 마음은 졸아들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선배 중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석사과정의 고통을 호소했다. 교수님도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엄포를 놓았다. 동기 열댓 명과 2차로 커피숍에 갔을 때 우리 얼굴은 모두 흙빛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표정이 어두운 사람은 나였다. 대학원 온 걸 후회했다. 후회의 정점은 엠티였다. 차마 1박 2일을 할 자신이 없어, 당일치기로 마음먹었지만, 그조차 시간내기가 벅찼다. 일도 해야 하고, 글쓰기 숙제도 해야 하고, 육아도 해야 하고, 12시간을 통째로 들여야 한다니, 일주일 전부터 숨이 막혔다. 당일아침은 눈을 뜨자마자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심장협심증의 증상인가, 아니면 심장판막의 문제인가.






안 친한 동기의 차에 얹혀 함안으로 향하면서,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쉴 새 없이 떠들어대었다.

동기는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이었지만, 내가 금정산 암자에서 점을 본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급격히 쾌활해졌다. 다행히 그녀도 나처럼 샤머니즘 파였고, 1년에 한 번은 꼭 친구와 점을 보러 간다고 했다. 부산에서 함안까지 120여 분간 우리는 철학관과 신점과 타로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각자의 점집 리스트도 공유했다.


엠티 첫 번째 일정은 산중턱에 있는 산장식당에서 교수님 2명과 선배 10명, 갓 입학한 예비 1 학년 8명, 다 합쳐서 20명이 먹는 점심이었다. 산 중턱에 있는 산장식당이었다. 20명 모두 초면이거나, 초면 비슷했다. 오리백숙으로 유명한 맛집이라는데, 아무리 씹어도 조류의 맛이 나지 않았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오리탕 한 그릇을 비우는 동안 나는 메서드연기를 습득했다. 두 번째 일정은 단체사진. 손가락 브이를 하지 않으면 웃지 못하는 병에 걸린 나는 꾸준히 손가락 두 개를 치켜든 채 여러 컷에 담겼다. 다시 차를 타고 대형 카페로 갔다. 세 번째 일정이었다. 20명을 여러 조로 나뉘어 커피와 빵을 어색하게 먹었다. 같은 조에 배정된 한 기수 선배에게 오리엔테이션에서 들었던 엄포에 건강관리를 잘하라는 말도 덧붙여 들었다. 그 선배는 최근에 간수치가 열 배로 상승해 병원에서 입원을 권고받았다고 했다.


나는 급격히 기력이 쇠하는 느낌을 받았다. 꾸역꾸역 먹은 오리고기와 빵을 소화시키려 근처 향교로 갔다.

네 번째 일정이었다. 학구열 때문에 인생을 망친 심리대학원 원우들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지방기초교육기관인 창녕 향교는 굳게 닫혀있었다. 20명은 하릴없이 향교 근처 저수지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엠티의 네 번째 일정임에도 누구 하나 친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 모든 것은 꽉 닫힌 결말을 향하는 복선처럼 느껴졌다. 오늘따라 날씨는 왜 이렇게 을씨년스럽고, 바람은 또 왜 이토록 세차게 뺨을 때리는지. 맛을 상실한 오리탕, 사약 같은 커피, 물론 사약도 이보다 맛있겠지, 브이로 점철된 단체사진, 대형카페란 무릇 자본가의 탈세의 근원지인데 나 또한 거기에 일조했다는 무력감, 선배의 간 수치, 문 닫은 향교….

아마도 2년 후에 나는 졸업장을 안는 대신 팔에 링거 수액줄을 주렁주렁 달고 병실에서 홀로 죽어갈 것이다. 간호사들은 그런 나를 멀리서 지켜보며 수군거리겠지. 어리석게도 대학원을 가려고 했다는군.






나는 급격히 체력이 방전되었다. 6년 차 씬지록신 복용자는 오후 5시 이후를 버틸 힘이 없었다. 이런 내가 과연 대학원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이나 체력과 상관없이 다섯 번째 일정은 진행되었다. 점심도 아직 소화가 되지 않았는데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유명한 향토음식점에 도착한 20명은 예약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죄로 대기실에서 영원할 것만 같은 시간을 견뎌야 했다. 선배들은 지쳐서 모두 말을 잃었고, 대학원 물정 모르는 1학년들은 과체중이 오히려 장수한다는 의학계 최신 이야기를 하며, 이제는 조금 친해진 동기들과 무해한 수다에 빠져있을 때, 어느 순간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잔잔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 자네는 왜 이렇게 머리를 볶았나?


오리엔테이션 때 공부를 땐실하게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던 교수님이었다. 그는 내가 아니라, 나의 정수리에게 물은 것이었다. 정수리의 주인은 너무나 정직했다.


- 아!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제 머리를 볶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머리를 볶으면 조금 더 젊어 보일까 싶어서 볶았습니다.


몇 달 전 서면 히피해피에서 완성한 나의 히피 펌은 교수님 눈에 마뜩잖은 듯했다. 대학원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겠다고, 진정 그러고자 했다면 히피펌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디서든 눈에 띄는 사람이 되어, 교수님과 한 테이블에서 저녁까지 먹게 되었다. 대화가 뚝뚝 분절되었고,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사치였다. 이 테이블 만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여섯 번째 일정이 남아있었다.






엠티의 꽃, 레크리에이션. 레크리, 에이션이라는 단어조차 20년 만에 듣는 것 같았다. 선배들이, 숙소에서 30분 쉬고 대강당에 모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잔잔한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선배들의 축하공연을 보며 나의 분노는 사그라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면 그래야 했다. 화사와 박정민의 청룡영화제 시상식의 굿굿바이 무대가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석사생의 저주는 끝났으나, 직장인의 삶에 찌든 이가 박정민이었고 초등학생 이상 자녀가 둘인 것으로 추측되는 선배가 화사였다. 화사선배는 화사의 시상식 댄스를 정말로 똑같이 추며, 구두대신 쓰레빠 퍼포먼스를 했다.



나를 그냥 짓밟고 가

괜찮아 돌아보지 마

내가 아파봤자 너만 하겠니



뒤를 이어 95년에 학부생활을 해보지도 않았을 것 같은 선배 2명이 당대의 히트곡 ‘슬퍼지려 하기 전에’에 맞춰 춤을 추었다. 몹시 부자연스럽게 교수님들의 인사 말씀이 이어졌다. 방금 전 공연을 마친 선배는 쌕쌕거리는 숨을 여태껏 다스리자 못하고 애써 호흡을 고르며 축사를 전했다.

사회를 맡은 화사선배가 가볍게 댄스타임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라고 해서 좀 흔들다 들어오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첫 번째로 호명된 선배의 정체불명의 춤에 긴장이 되었다. 애들이 보고 싶었다, 아니지 엄마 꼴을 못 봐서 다행이다 내 차례가 됐을 때는….


몸으로 말하기 퀴즈를 거쳐 인물이름 맞히기, 노래 제목 맞히기, 그러다 드라마 제목 맞히기. 대사를 듣고 드라마 제목을 맞히는 게임… 나는 Wavve 멤버십 52개월 차 OTT 전문사용자며, 전원일기 전회차를 N번 보았고 80년대를 휩쓴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대사쯤은 기본으로 외우는 폐급이었다. 이번 문제는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정답을 맞히는 게 룰이었다.


첫 번째 문제 “나는…”

“하늘샘, 도깨비”

두 번째 문제 “ 너네 주.”

“하늘샘. 더글로리”

세 번째 문제 “암세(포).”

“하늘샘, 오로라공주”


나는 10문제 중 8문제를 맞히는 기염을 토했다.

못 맞힌 2문제 중 하나는 “지랄하고 자빠졌네”로 시작했고, 나는 <낭만닥터 김사부> 임을 확신했으나 안타깝게도 정답은 <뿌리 깊은 나무>였다. 20문제 30문제도 파죽지세로 격파할 수 있었는데 고작 10문제라니 하지만 상금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 호수처럼 고요하게 대학원 생활을 하고 싶었던 나는, 19명 모두에게 내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






밤 11시가 넘어 레크리에이션이 끝났고 선배와 교수님들에게 폴더인사를 드린 후 나는 남해고속도로를 탔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1시 반이었다. 파김치가 된 몸으로 겨우 씻고, 곤하게 잠든 아이들 곁에 눕자 후회와 부끄러움이 쓰나미가 되어 나를 덮쳤다. 그렇게 미친 듯이 드라마 제목을 맞추지 말걸 적어도 5개만 맞출 걸, 그다음 후회는 댄스타임에 테크노춤은 추지 말걸 아니지 그전에 히피펌은 하지 말걸, 아니, 아니, 아니지.


대학원에 가지 말걸.


괜한 짓을 하였나, 괜한 짓을 하였나.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눈을 뜨니 오전 1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삼일절 대체휴무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사실만이 위로가 되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낮잠을 자고 저녁을 먹고 다시 잠을 잤다. 첫 수업이 시작되는 목요일까지 나는 매일 밤 후회의 쓰나미에 시달렸다.

수요일 오후, 나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 나 대학원 괜히 갔나.


남편은 ISTJ였다.

- 등록금 환불시기 지났다.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 지금 등록금이 중요하나.

- ₩2,340,000


중요했다.


- 대학원 간 이유는 뭐야?

- 공부하고 싶어서, 근데 자꾸 빡세다고 하잖아.

ISTJ는 경제적이고 실리적이다.

- 한 학기 다녀보고 못하겠으면 관두면 되지. 경험했다 치고.



혀뿌리에 걸려서 삼켜도 삼켜도 삼켜지지 않던 덩어리가 십이지장쯤으로 툭 떨어졌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 못하겠으면 때려치우면 되지, 남편이 중도이탈의 자유를 권하잖아.

만약 내가 대학원을 중도이탈하면 남편 탓이다.

나는 급격히 안색이 밝아졌다. 물론 오래가지 못했다. 첫 수업 후 지인들에게 똑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 제가 대학원을 중간에 때려치우더라도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현재 천만을 넘어 천사백을 목전에 둔 장항준 감독은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 개명, 성형, 귀화, 요트선상파티 등등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가뿐히 공약을 파기했다. 어떻게 다 지키고 삽니까. 그런 사람이 전 세계 한 명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정도? 보급형 거장 반열에 오른 장항준 감독도 저랬는데 내가 뭐라고, 하물며 대학원 중도포기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것도 아닌데.

- 뭐 중도포기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너무 힘들면 중도포기하겠습니다. 그러겠습니다.


오전 9시 00분. 내 지인들은 선언과도 같은 내 포기공약을 메시지로 받았다.

아직도 오락가락하면서 세상일에 미혹되고 불혹의 중간이자, 지천명을 향해가는 내 마음이 나를 대학원에 보냈다. 좀 쪽팔려도, 중도포기는 이때다, 싶을 때 과감히 실행하리라, 그래도 혹시나 졸업하게 된다면 2년 전의 지인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돌릴 것이다.


2년 전 선언한 바와 같이 저는 한 번도 좌절하지 않고 석사를 땄습니다. 온갖 고초와 압박에도 저는 포기는 김장할 때나 쓰는 어쩌고 저쩌고 기타 등등 분명 심리대학원과정에서는 상황조작에 의한 가스라이팅 단원이 있을 테니까.


그림- chat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