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

by 하늘샘


대학원 엠티 이후 매일을 징징거렸다.

지인들에게 이미 중도포기 가능성을 알렸다.

매일 아침마다 주문처럼 반복했다.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

상담시간에도 연신 징징거렸다.


- 발표수업 준비를 생각 만해도 너무 부담스러워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 그러게. 이제 조금 편안하게 살만해졌는데 대학원을

갔어요?

- 이런 줄 몰랐어요. 이런 건 줄 몰랐어요.

- 그럼 왜 지금 대학원을 가려고 마음을 먹었어요?

상담을 계속 받고 나니 용기가 생겼어요. 이제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 때가 됐다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 이제는 가도 될 것 같다. 이제는 도전해서 떨어져도

크게 타격받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의 침묵이 길어졌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 그때라는 말이? 하늘 씨가 늘 느끼는 핵심 감정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 나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감정이었는데,

그때라는 게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격이 맞으니

대학원을 가도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내 안에는 나도 모르는 격이 있었다. 자격. 이 세상에 맞는 사람이 되려면,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늘 그 자격에 미달되는 사람이었다.

그 격을 갖추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대학을 갔고, 공무원이 되었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이제 대학원까지 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자격요건을 완성한 건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자격미달이었다.

- 동기들도 다 비슷할 거예요. 하늘 씨처럼 처음이라서

다들 어려울 거예요.

- 그런데도 저 빼고 다들 여유로워 보이고, 저만 여기서

제일 전전긍긍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 네.

-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그 감정이 강하게

올라오는 것 같아요.

- 그 감정은 언제부터 느꼈어요?


언양시외버스터미널이 가장 붐비는 달은 설과 추석이 있는 달이었다. 우리는 명절마다 그 붐비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렸다. 이미 몇 대의 버스를 보냈는데도 버스를 탈 수 없었다. 겨우 버스에 올라탔지만 버스 안은 이미 만석이었다. 누군가의 배려로 겨우 한자리에 동생과 앉을 수 있었다. 2시간 남짓 서서 가고 있는 아빠의 얼굴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나는 그런 아빠를 쳐다보며, 괜스레 미안해졌다.

당시 부산시외버스터미널은 명륜동에 위치한 세원백화점 밑에 있었다. 어린 시절 창밖을 구경하며 늘 얼마만큼 더 가야 부산에 도착하는지 가늠했다. 그중에서도 부산 시외버스터미널에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있었다. ‘황태자의 첫사랑’

그 간판이 보이면 이제 머지않아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웨이터가 서빙을 할 것만 같은 고급레스토랑처럼 보였던 황태자의 첫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당은 내가 어른이 되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렇게 부산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명륜동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양정역에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야 큰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5시간 이상의 긴 여정을 끝내야 큰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빠의 손을 동생과 하나씩 나눠 잡고 복잡한 인파에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아빠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 글쎄요. 아빠랑 명절에 친척 집에 가잖아요. 엄마

없이 셋이서만, 친척어른들이 용돈을 주면 받고

싶은데 또 받기 싫은 거예요. 우리 아빠는 조카들에게

용돈을 줄 형편이 안 되는데, 내가 받아도 될까,

그런데 또 너무 받고 싶은 거예요. 염치없이

- 어떤 느낌이었어요?

- 구걸하는 느낌, 적선받는 느낌, 여기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




기억은 정말 두서없이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초라하고 염치없이 느껴졌던 것일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평생 나를 족쇄처럼 따라다니는 감정이다.

그래서 어딜 가든 기를 쓰고 이 장소에 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람 이는 걸 증명하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해서 노력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너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


환영받지 못한 존재. 오랫동안 내 마음에 각인된 표상이었다. 다시 2주 만에 만난 선생님에게 전했다.

- 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그렇게 기를 쓰고 적응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 하늘 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억이 하나 났어요.

예전에 부모님과 시골 친척집에 가면 저는 늘 특별한

대접을 받았어요. 부모님은 늘 양손 가득 친척 선물을

챙겨가셨죠. 단지 부산이라는 대도시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또래사촌들은 저를 공주처럼

생각했어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에요. 그래서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어요.

비슷한 경험인데도 느끼는 게 다르죠.

- 하늘 씨와 나는 뭐가 달랐을까요?

- … 저는 엄마가 없었죠.

- 맞아요. 애가 부끄러우면 누구 뒤에 숨어요?

- 엄마요.

-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엄마 뒤에 숨어있어도 되는데,

하늘 씨는 그런 존재가 없었던 거죠.


선생님이 부러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받는 존재였다.







다대포를 생각하면 비릿한 생선냄새와 돼지국밥을 만들기 위해 우려내던 육수냄새가 떠오른다. 할머니의 가게는 시장입구 초입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는 남동생이 태어난 후 종종 나를 할머니에게 맡겼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가게 다락방에서 잠을 잤다. 새벽부터 손님이 끊이지 않았기에 내가 눈을 뜨면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루 종일 할 일없이 다락방에 있는 창밖으로 분주히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것도 지겨워지면 가게로 내려가 손님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들은 어린 나를 귀여워했다. 단골손님들은 종종 나에게 과자를 사주었다. 그것도 지겨워질 때면 시장을 돌아다니거나, 항구 근처에 나가 통통배들을 구경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어른들 가운데 나만 혼자 아이였다.

그들은 그런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 제가 2살 때 남동생이 태어났어요. 그 이후로 엄마는

저를 할머니 집에 종종 맡겼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돼지국밥 장사를 했는데 식당 다락방에서 살았어요.

늘 혼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하는 구경 하거나,

다락방에 있는 창문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어요.

- 늘 혼자였네요.

- 네. 엄마가 집을 나가긴 전부터 전 늘 혼자였어요.

다섯 살인지 여섯 살인지 엄마가 아빠와 싸우고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간 적이 있었어요. 혼자서

다리미를 꺼내서 옷을 다렸어요. 아빠가 와이셔츠

공장을 해서 늘 다리미질을 하던 모습이

익숙했거든요. 그런데 옷은 완벽하게 다렸는데 그만

다리미를 장판에 그냥 둬서 태워먹었어요. 엄마한테

혼날까 봐 태워먹은 부분만 거즈손수건으로 덮어놓은

기억이 나요.

- 그때도 집안일을 하고 있네요. 혼자서 이렇게 잘 자란

아이가 너무 대견하지 않아요.

- 아직도 그 아이가 창피해요? 이렇게 장한 아이를

칭찬해주고 싶지 않아요? 위인전에 나오는 아이 같지

않아요?

- 아니요. 위인전에 나오고 싶지 않아요. 그냥 평범한

집에 태어나서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왜

저를 설명하려면 이렇게 구질구질한 기억을 꺼내야만

할까요.

- 구질구질해요?

- 너무 대단한 아이인데, 아직도 그 아이가 안 보여요?


대답할 수 없었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내가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도돌이표 마냥 다시 돌아왔다. 여전히 나는 내가 창피하고 부끄럽다. 진전 없는 치료를 받는 기분으로 2주 뒤에 다시 만날 약속을 하며 상담실을 나섰다. 담담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라디오에서는 봄을 알리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신호대기를 하며 올려다본 까만 밤하늘의 별빛과 어우러져 벚꽃들이 흩날렸다. 봄이 왔구나. 조만간 벚나무가 만개하겠지. 벚꽃은 금방 지니까. 올해도 아이들을 데리고 벚꽃을 보러 가야겠다. 연달아 있는 아이들의 생일도 챙겨야지. 따뜻한 봄날에 태어난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올해도 예쁜 봄날을 남겨줘야지 그래야지. 최근에 보지 못한 엄마도 만나야지. 주말에 엄마를 모시고 풍경 좋은 카페라도 가볼까. 어디가 좋을까. 어디가 좋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나는 울기 시작했다.






나를 좀 사랑해 주지 나를 좀 칭찬해 주지 나를 좀 안아주지 나를 좀 사랑해 주지 그랬으면 이렇게 평생 목마른 채 살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평생 전전긍긍하며 살지 않았을 텐데 나를 좀 사랑해 주지 나를 좀 사랑해 주지 나를 좀 사랑해 주지 그랬으면 이렇게 평생 슬프지 않았을 텐데 나를 좀 사랑해 주지 나를 좀 바라봐주지 나를 좀 안아주지 나를 좀… 나를 좀 제발 사랑해 주지 나를 좀 제발 사랑해 주지 그래주지.



울음마다 마음의 소리가 섞여있었다. 나를 좀 사랑해 주지, 나를 좀 바라봐주지, 나를 좀 안아주지. 내 마음에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조차 이런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았다. 나의 부모에게 요구라는 걸 할 수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았다. 나는 그들에게 그런 존재였다.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는 존재, 아무것도 바라면 안 되는 존재,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되는 존재였다. 그들이 미웠다. 젊은 부모였던 그들이 미웠다. 이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빠에게 말할 수도 없고, 여전히 나에게 가깝고도 먼 존재인 엄마에게 말할 수 없었다.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에. 그래서 나는 여전히 혼자다.



상담선생님은 늘 말한다. 이 아이를 제대로 본다면 절대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그럼에도 그 여정까지 나는 여전히 아플 것이고 흔들릴 것이다. 잠시 주저앉더라도 다시 걸어가야지. 그 방법밖에는 길이 없기에 나는 또 울음을 그치고 걸어가야겠다.

그 밤 나는 짧은 편지 하나를 나에게 적었다.


사랑하는 하늘아, 사랑하는 하늘아, 사랑하는 하늘아

너의 모든 것이 비록 이상적이지 않고 상처투성이라도 나는 너를 사랑해. 이리 와 내가 안아줄게. 바라봐줄게. 안아줄게. 칭찬해 줄게. 다독여줄게. 괜찮을 거라고 말해줄게.

이리 오렴. 사랑하는 나의 작은 아이야.

그림-chat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