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기준은 상대적이다. 부 보다는 자유를 추구하자.
"돈이 많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행복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기를 추구합니다. 그런데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나 뇌과학자의 경우 좀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생물학적 존재로서 그저 생존을 추구할 뿐이고 행복이 생존에 도움이 될 뿐 우리의 삶 목적 자체가 행복이라 할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누구든 행복하고 싶지 불행하고 싶어하는 이는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모두가 행복을 추구한다'라고 말해도 그 말이 틀린 말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과연 행복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이 질문에 대해 적어도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는 다들 돈 먼저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행복하려면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아야 부자일까요? 10억? 100억? 누구는 10억도 많다고 이야기하지만 누군가는 100억도 부자가 되기에는 모자라다고 이야기합니다. 인터넷상에서 도대체 얼마의 돈을 갖고 있어야 부자인지 찾아보면 절대로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주변에 물어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각자 상상하는 부자의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돈은 물건과 서비스를 사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일을 하지 않아도 본인에게 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소비하기에 평생 부족하지 않다면 그 사람은 돈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얼마나 돈이 많아야 부자인지'에 대한 문제의 답이 각자 다른 이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 A가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이 부자가 되는 기준은 크게 다섯 가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1) A가 지금 몇 세인지
2) A가 몇 세에 사망할 것인지
3) A가 만족하는 소비수준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인지
4) A가 재테크를 통해 올릴 수 있는 수익률은 얼마인지
5) A가 살고 있는 나라의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얼마나 될 것인지
두 명의 A를 가정해 봅시다. 첫 번째 A, A1은 현재 65세로서 지방에서 원룸 빌라 한 칸에서도 충분히 만족하며, 평소에 반찬 2~3개의 밥상으로 충분히 만족할만한 식사가 가능합니다. 한 달에 1~2번의 치킨, 피자, 짜장면 탕수육 정도 수준의 외식과 1년에 2~3번 계절에 따른 국내여행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요. 그는 현재 건강하기 때문에 100세까지 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는 예금과 채권의 차이를 명확히 알고 있으며 시장경제 체제를 갖춘 국가의 주가지수는 꾸준히 상승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만큼의 지식을 갖추었습니다. 보통 자금의 90%는 중단기의 만기를 갖춘 회사채형 펀드로 운용하고 나머지 10%는 국내외 주식형 펀드 여럿에 골고루 분산투자 하다가 금융위기나 각종 위기설로 주식시장이 폭락하면 전재산의 20%까지 주식비중을 늘리고 주식시장이 어느 정도 회복하면 다시 주식의 비중을 10%로 낮추는 유연하고 현명한 재테크로 연평균 4.5%의 금융자산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A1이 사는 나라의 물가상승률은 연 2.5%라고 합니다.
위의 가정에 따라 65세의 A1은 100세 사망으로 앞으로 35년을 더 살 것으로 예상되고 2025년 기준으로 한 달에 150만 원, 한 해 1800만 원의 금액으로 만족할 만한 소비를 할 수 있으며 이 필요금액은 해마다 평균 2.5%씩 복리로(혹은 제곱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A1은 전재산을 연 4.5%의 수익으로 운용할 수 있습니다.
자, 이 기준에 따른다면 A1이 부자가 되는 기준은 넉넉 잡아 5억 5천만 원입니다.
간단한 엑셀표를 만들어 계산해 보면 A1이 앞으로 살아갈 35년 동안 자금이 마르지 않으려면 금융자산 4억 5천만 원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억 5천만 원을 4.5%의 수익으로 운용해 필요한 생활비를 꺼내어 쓰고, 남은 금액을 다시 굴리는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4억 5천만 원의 자금이 35년 뒤에 대부분의 바닥나죠. 여기에 병원이나 마트 등 최소한의 인프라를 갖춘 도시의 원룸 빌라는 5천만 원에도 살 수 있습니다. 다만 35년 동안 이 집에 대한 유지보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여유자금을 추가로 넉넉하게 5천만 원을 잡는다면 4억 5천만 원에 1억을 더해 5억 5천만 원만 있어도 충분히 부자이지요.
다만 현실적으로 A1이 국민연금 가입자였고, 그간의 가입금액에 따라 2025년 매월 50만 원의 국민연금을 받는다면, 국민연금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해마다 올려 받기 때문에 A1의 필요 생활비는 연 1200만 원으로 줄어듭니다. 그러면 생활을 위해 필요한 금융자산은 3억 원으로 줄어듭니다. 그러면 아까 넉넉잡은 1억을 더해 4억이면 A1은 충분히 부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 A2를 상정해 봅니다.
1) A2가 지금 몇 세인지? - 25세
2) A2가 몇 세에 사망할 것인지 - 100세
3) A2가 만족하는 소비 수준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인지 - 월 250만 원 + 3억 원 아파트
4) A2가 재테크를 통해 올릴 수 있는 수익률은 얼마인지 - 2.5%
5) A2가 살고 있는 나라의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얼마나 될 것인지 - 2.5%
A2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25세로 매우 젊고 1인가구임에도 1년에 1번의 해외여행은 꼭 필요하다 느끼며 외식도 잦아 월 최소 250만 원은 써야 충분하다 느낍니다. 그리고 정기예금으로만 금융자산을 운용해 재테크 수익률은 2.5%이며, 혼자 살더라도 수도권 투룸 아파트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내 집 장만으로는 최소 3억 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나머지는 A1과 동일합니다.
이 상황에서 A2가 부자가 되려면 최소 25억 원이 필요합니다. 일단 25세에서 100세까지 생존하며 75년간 생존해야 하는데 2.5%의 수익률과 2025년 기준 3천만 원의 연필요 생활비, 2.5%의 물가상승을 감당하려면 최소 22억 원이 넘게 필요합니다. 여기에 집값 3억 원을 더하면 기타 여유비를 전혀 더하지 않아도 25억이 되지요. 아까의 A1이 국민연금의 도움 없이도 5억 5천만 원이면 충분히 부자가 되는 것과 매우 다른 상황입니다.
이렇게 부자의 기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부자의 상대적 기준 4개>
1) 나이가 많을수록 부자
2) 만족할만한 소비 수준의 눈높이가 낮을수록 부자
3) 재테크를 통해 올릴 수 있는 수익률이 높을수록 부자
4) 자기가 속한 나라의 물가상승률이 낮을수록 부자
이렇게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부자의 기준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부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부자의 기준을 논의한 목적, 행복을 다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다만 행복으로의 화제 전환을 하기 전에 부자가 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뭘까 질문해 봅니다. 바로 위 <부자의 상대적 기준 4개>를 보면 나이와 물가 상승률은 본인이 통제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더해 재테크를 통해 올릴 수 있는 수익률은 본인의 타고난 지적 호기심, 운, 노력의 강도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올리기 쉽지 않습니다. 결국 이론적으로 부자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소비 수준의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지요. 만족에 필요한 소비 수준이 낮다면 동일한 임금으로 더 많은 저축을 하고, 또 부의 자유를 위해 필요한 자산의 수준도 낮아지기에 부의 자유를 더 빨리 이룰 수 있어 부자가 되는 방법 중 가장 강력하다고도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만족할 만한 소비 수준을 낮춘다는 것. 말은 쉽지만 어찌 보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모두의 자수성가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최소 10년 이상 나름 연구하면서 알게 된 점은 노력을 통해 본인의 자금운용 수익률을 높인 사람은 많지는 않아도 다소 있다고는 말할 수는 있지만, 본인의 노력으로 소비의 눈높이를 낮추는 사람은 정말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시중에는 많은 절약팁이 돌아다닙니다. 나쁘지 않은 방법들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따라 합니다. 그런데 이를 지속하여 자산 축적에 성공한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결국 지쳐서 그 이전의 소비 수준으로 돌아가거나 보복소비로 더 많은 소비를 하기도 하지요. '어차피 한 번 살다 가는 인생.'이라는 문구를 외치면서 말입니다.
이 문제를 생각할 때 참고해 볼만한 책이 있습니다.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발전경제학의 거장 아마티아 센의 저서 「자유로서의 발전」입니다. 1990년대에 쓰여 아직 고전이라 널리 인정되지는 않지만 충분히 경제학의 고전 중의 고전 「국부론」만큼이나 고전의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국가가 발전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경제학은 물론 저자의 범사회과학/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살펴보는 책입니다. 부의 자유와 행복을 이야기하는데 왜 국가발전을 논하냐고 할 수 있지만 국가가 발전하는 것과 개인이 부에서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는 것은 서로 통하는 것이 많습니다. 국가의 발전 정도와 개인의 행복이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인간의 행복을 다루는 문제와 국가의 발전을 다루는 문제는 서로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우리는 행복하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한 편 국가가 발전되었다고 말하려면 어느 정도 국가가 부유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아마티아 센 역시 국가가 발전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국가가 부유해졌다는 의미도 갖고 있음을 곳곳에서 암시합니다. 다만 국가가 부유해졌다고 그것이 곧 국가의 발전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자유로서의 발전 Development as Freedom」이지요. 아마티아 센에 따르면 국가의 발전이란 국가 구성원의 자유가 확장되는 것을 뜻하고, 국가의 부란 그를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일까요? 아마티아 센은 "역량"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단어가 좀 어려운데 쉽게 말해 누릴 수 있는 영역이 좁으면 역량이 적은 것이고 넓으면 역량이 많은 것입니다. 당장 맹장염에 걸렸는데 집 근처 병원에서 간단하게 수술을 받아 치료할 수 있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의 역량이 더 적고, 산책할 시간이 많은 사람이 산책할 시간조차 없는 사람보다 가진 역량이 더 많다는 예를 들어볼 수 있겠군요.
이것은 우리 개인의 행복과 돈의 연관성에 대해 좋은 단서를 제공합니다. 돈이 많으면 운동하고 싶을 때 집 근처에서 바로 개인 훈련을 트레이너를 고용해 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우리의 역량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최근 많은 뇌과학 관련 교양서적에 따르면 행복을 위해 운동은 매우 좋은 도구라는 이야기들이 많기에 돈이 많으면 행복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은 분명해 보이기도 하네요. 하지만 반대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매일의 야근으로 운동할 시간도 없이 업무 스트레스로 정신과 신체의 건강을 갉아먹고 있다면 오히려 적당히 일하고 적게 버는 사람보다 돈이 많을지언정 행복은 덜하겠고, 반면 저렴한 운동화를 신고 집 주변을 30분 내외로 천천히 뛰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집에서 푸시업 같은 맨몸운동을 꾸준히 하며 몸관리하는 것이 습관화된 사람은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역량을 높일 수 있겠습니다.
이 외에도 돈을 별로 혹은 전혀 들이지 않고도 우리의 역량을 확장할 방법들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요리를 할 수 있어 저렴하게 영양 있는 식단을 만들 수 있다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텀블러에 따뜻한 물과 녹차티백을 담아 함께 주변 공원을 산책하는 것만으로 좋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혼자서라도 집 근처 공원과 산을 간간히 트레킹하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감성을 가질 수 있다면,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공부하고 돌아보며 지금 나의 삶을 감사하는 동시에 언젠가는 역량을 키워 그들을 돕겠다는 꿈을 키울 수 있다면, 당근 마켓으로 중고 전자피아노라도 사서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연습해 보며 몰입할 수 있다면, 명상과 사색을 할 수 있다면, 집 근처 도서관에 짬을 내어 독서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역량을 확장해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행복에 다가가고, 그리고 그 행복으로 검소한 삶을 지속가능하게 해 부의 자유에도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자수성가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해서 자수성가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아마티아 센이 국가의 발전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 발견한 '역량'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유라는 단어의 깊이, 그리고 삶이라는 것의 다채로움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쓰일 글들도 이런 관점에서 쓰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돈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것을 통해 부의 자유에도 다가갈 수 있을지, 그리고 더 나아가 역설적이게도 '어떻게 하면 결과물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