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캐릭터를 그리면서 알게된점

질서로 연결된 끊임없는 무질서함

by 캐티아이




무질서함 속의 질서

— 좋은 디자인은 어떻게 혼돈을 길들이는가


처음 캐릭터 시안을 펼쳐놓을 때, 작업실은 항상 난장판이다.

스케치북 위에 스케치가 겹치고, 색샘플 옆에 클라이언트 메모가 붙고, 화면엔 레이어가 수십 개씩 쌓인다. 누가 봐도 ‘이게 뭔가’ 싶은 광경.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오래 일하다 보니 알게 됐다.

무질서함은 창작의 실패가 아니라, 창작의 재료라는 것을.


카오스를 두려워하는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인을 처음 배울 때 우리는 ‘정돈’을 배운다. 그리드, 여백, 정렬. 질서를 만드는 법. 그래서 많은 디자이너들이 초반부터 정돈된 결과물을 만들려 한다. 스케치 단계에서부터 완성된 것처럼 보이길 원한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건 종종 가장 좋은 것들을 걸러내 버린다.

어수선한 시안 더미 속에 버려진 선 하나가, 사실은 가장 생동감 있는 선인 경우가 많다. 깔끔하게 정돈된 것들은 대체로 이미 ‘안전하게 선택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먼저 알고 있었다

자연을 보면 답이 있다.

나뭇잎의 잎맥은 불규칙하게 뻗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수분을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경로다. 새떼는 제각각 날아가는 것 같지만, 충돌 없이 군집을 유지한다. 파도는 예측할 수 없지만, 파도가 만들어낸 해안선은 수천 년의 미학을 품는다.

혼돈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가장 정교한 질서를 숨기고 있다.

디자인도 다르지 않다. 손으로 거칠게 그린 선이 디지털로 다듬은 선보다 살아있어 보이는 이유, 약간의 비대칭이 완벽한 대칭보다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의 눈은 ‘계산된 완벽함’보다 ‘숨겨진 질서’를 더 아름답다고 느끼도록 훈련되어 있다.


공공기관 캐릭터가 자꾸 실패하는 이유

나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캐릭터를 꽤 오래 만들어왔다. 그러면서 반복적으로 목격하는 실패 패턴이 하나 있다.

처음부터 너무 정돈된 회의실에서 캐릭터를 만드는 것.

지역의 상징물, 색깔, 슬로건, 위원회의 의견, 시민 설문 결과. 이 모든 것들이 정리되어 깔끔한 기획서가 된다. 그리고 그 기획서 위에서 캐릭터가 설계된다. 규칙적으로, 논리적으로, 안전하게.

결과물은 대체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캐릭터가 된다.

지역 주민들이 진짜 좋아하는 캐릭터들을 되짚어보면, 그것들은 대부분 어딘가 조금 엉뚱하고, 다소 과장되어 있고, 처음 봤을 때 ‘이게 맞나?’ 싶은 요소를 하나쯤 가지고 있다. 그 작은 불균형이 캐릭터를 살아있게 만든다. 그것이 기억되게 만든다.


혼돈을 다루는 법

그렇다고 그냥 마구잡이로 만들라는 말이 아니다.

무질서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무질서함에 압도되는 것은 다르다.

내가 지켜온 방식은 이렇다.

첫째, 초반에는 판단하지 않는다. 스케치를 할 때 ‘이건 아닌데’라는 검열을 최대한 늦춘다. 이상한 것도 일단 그린다. 어색한 것도 옆에 둔다. 이 단계에서 버리면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혼돈 속에서 반복을 찾는다. 어수선한 스케치들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다 보면 내가 의식하지 않았지만 자꾸 그린 형태, 자꾸 선택한 비율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방향이다.

셋째, 마지막에 편집한다. 정돈은 시작에 하는 것이 아니라 끝에 한다. 넘치도록 만들고, 그 다음에 가장 핵심적인 것만 남긴다.


결국 디자인은 번역이다

클라이언트가 가져오는 것은 항상 혼돈이다.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 느껴지길 바라는 감정, 연상되길 원하는 이미지들. 그것들은 대개 뒤섞여 있고, 때로는 서로 충돌한다.

그 혼돈을 그대로 시각화하는 것이 디자인이 아니다.

그 혼돈 속에서 진짜 원하는 것을 꺼내, 보는 사람이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이 디자인이다.

무질서한 재료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일.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 일의 본질이다.


작업실은 오늘도 난장판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꽤 좋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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