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 아이의 엄마입니다.
세 딸아이를 키우며 첫 아이를 키울 때 가장 불안했습니다.
불안을 감추려고 유난스럽게 희생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아이가 열여덟 살이 된 이제는 압니다.
편안하고 다정한 '나'라는 엄마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엄마라는 것을요.
무릎 부모학교는 유난스러움으로 육아를 시작한 엄마가 '나'를 찾은 이야기입니다.
유난 떨지 않아도 됩니다.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간과 사랑이 아이와 부모를 성장시키니까요.
유난스러운 엄마
첫아이를 임신하고 뱃속에 있는 열 달 동안 태교에 좋다는 것들은 모두 했어요.
“스승의 십 년 가르침이 어머니가 임신하여 열 달 기르는 것만 못하고, 어머니가 열 달 기른 것이 아버지가 하루 낳는 것만 같지 못하다.” 사주당 이 씨의 말을 신봉하던 시절이었어요.
클래식 듣기, 독서와 아이에게 줄 일기 쓰기, 매일 태담 들려주기, 산책, 건강한 음식 먹기, 기체조, 예비 엄마교실 참여하기, 바느질하기, 마음 다스림 명상.... 반야심경 쓰기까지 저는 하루를 아이로 가득 채웠습니다.
사주당 이 씨의 <태교신기>를 읽고 오늘날에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최대한 지켰지요.
아이를 낳을 때도 프레드릭 르봐이예의 <폭력 없는 탄생>을 읽고 의료적 조치 없이 아이를 낳겠다는 신념 하나로 겁도 없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황금똥을 누는 아이>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를 육아 바이블로 자연주의, 아이 중심 육아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그 시절 아이가 밤에 잘 때를 하루 1번 빼고는 천 기저귀를 쓴다고 이야기하면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퇴근 한 남편은 아이의 기저귀를 빠느라 다크 서클이 짙어져 갔습니다.
맞아요. 저는 유난스러운 엄마였습니다.
그나마 무난한(?) 엄마
아이가 7살 처음 발레를 시작하며 전공을 포기했던 14세 초여름까지...
7년 동안 아이는 유난스러운 엄마를 그나마 무난한(?) 엄마로 성장시켰습니다.
아이는 발레를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 하나로 시간과 노력을 발레에 모두 쏟았어요.
노력과 열정은 어떤 친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지만 결과는 친구들보다 부족했습니다.
발레를 더 늦게 시작한, 덜 연습한 친구들이 더 좋은 결과를 낼 때 아이는 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해 줬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갈수록
내가 아이에게 모든 것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게 되었습니다.
예술 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며 다른 아이와 우리 아이를, 어제의 우리 아이와 오늘의 우리 아이를
비교하며 보냈던 하루하루는 큰 아이를 키운 17년 동안 가장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저렇게 원하는데 안 되면 어떻게 하나?'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안 나아지지?'
마음이 조급해졌어요.
입학시험을 보러 학교에 들어간 아이를 기다리며
함께 기다리는 부모들, 입시를 치르고 나오는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입시를 준비한 기간 동안의 나의 고통과 아픔이 부모님들의 그것과 오버랩되었어요.
내 아이의 좌절과 끈기가 다른 아이들의 그것과 같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제야 그 아이들이 내 아이의 경쟁자가 아니라 한 집의 딸, 아들로 보였습니다.
예중 입시 결과가 발표된 날 불합격임을 확인하고
아이를 안고 함께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냥 '나'라는 엄마
입시에 실패한 후에도 아이의 발레에 대한 사랑은 끝나지 않았어요.
겨울 방학 내내 연습 또 연습이었어요.
아이가 연습하는 그 기간 동안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른데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게 해도 되는가?'
저는 아이의 열정을 존중하지만 아이의 재능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객관적으로 볼 때 저희 아이는 운동신경이 없는 아이예요.
조용히 앉아서 책을 보고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는 연구자의 성향이 강한 아이랍니다.
좋아하는 발레를 하면 주연이 아니라도 작은 역할만 하며 살아도 행복할 거라는 아이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진로에 대해 함께 고민했습니다.
아이는 발레를 선택했고 저는 그 선택을 존중하며 기다렸어요.
아이의 고민은 그 후에도 이어졌는지 5개월 정도 지난 후 아이는 발레를 그만두겠다고 하더군요.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되 결정의 시간을 열어놓고 긴 기간 기다려준 나를 셀프 칭찬한 것이 무색하게
아이는 이제는 꿈이 없다며 방황하며 몇 개월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시기를 보냈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시기...
그동안 아이에게 그런 시기는 없었기에 저도 아이도 서로를 무던히 할퀴며 지냈어요.
그 기간 동안 아이가 아닌 제가 보였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아이의 모든 것에 집중해서 아이의 일에 일희일비하는 엄마가 아니라
그냥 '나'라는 엄마로 아이 옆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14년 만에 '나'라는 엄마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