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일기 쓰기, 마음에 머문 기록이 되기까지
16박 17일 가족여행을 계획하며 아이들에게 건 조건은 단 하나,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적절한 주고받음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갈 때 여행 준비와 경비는 부모가 대부분 부담하지만,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리고 기억 속에 새기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면 좋겠어요. 그래서 여행은 가되, 그 기간 동안 매일 일기 쓰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엄마는 이 시간을 오래 기억하기 위한 우리만의 방식으로 '일기 쓰기'를 제안했고, 아이들은 여행이 간절했기에 그 약속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매일이 특별해서 충분히 음미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저녁이면 너무 늦지 않게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막내가 노트를 꺼내 들었습니다.
"엄마, 오늘은 이거 쓰면 되겠어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날의 바다와 바람을 붙잡듯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가는 2학년 막내가 기특했습니다. 기록은 강요될 때 남는 것이 아니라, 남기고 싶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아이를 보며 배웠습니다.
여행이 끝난 후 글쓰기 습관이 자리를 잡자, 큰아이는 감추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더 깊이 적고 싶어 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는 일기장을 한 권 더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건 누구도 보면 안 되는, 제 일기장이에요."
아이의 책상 위에는 두 권의 노트가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가족과 나누고 싶은 특별한 날의 기록, 또 하나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비밀 노트. 어느 날은 둘 중 하나만 펼쳐지고, 어느 날은 둘 주인을 기다리며 지나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써야 할 때면 망설이기보다 먼저 연필과 종이를 꺼냅니다. 글은 마음을 표현하는 여러가지 방법 중 하나일 뿐, 잘 쓰지 않아도 괜찮고 길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행의 시간은 끝났고 우리 집의 일기는 더 이상 숙제게 되었습니다. 쓰고 싶은 날 꺼내는 것, 자신을 만나기 위해 펼치는 것, 함께한 날을 잊지 않기 위한 것.
그날의 바다와 바람은, 지금도 아이들의 노트 속에 살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