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게 하는 일기에서, 쓰고 싶은 기록으로
아이들과 특별한 활동을 할 때면 꼭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일기 쓰기’입니다.
큰 아이 1학년 첫 일기 쓰기 숙제가 있던 날, 아이는 빈 일기장을 펼친 채 몇 시간을 딴짓을 하다가 멍하니 앉기를 반복했습니다. 아이에게 이유를 묻자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대화를 하며 아이의 하루를 따라갔습니다. 말로 먼저 써본다는 생각으로 한 말들을 정리한 후에 손으로 쓰도록 했습니다. 생각이나 느낌도 단순히 재미있었다. 즐거웠다가 아닌 어떤 점이 그랬는지 묻고 답한 것을 쓰게 했어요. 아이는 그 뒤로도 여러 번 함께 써가며 자신이 한 일과 느낌을 표현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아이의 글쓰기에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실 큰 아이가 7살 때, 그림일기로 일기 쓰기를 시작했었습니다. 쓰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있었던 일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정리해 보게 하고, 쓸 내용을 불러주며 적게 했습니다. 맞춤법을 모조리 고쳐주기도 했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몇 줄의 칸을 채우고 난 후 그림까지 그려야 하는 상황에 힘들어했습니다. 일기를 꼭 써야 한다는 엄마의 생각 속에서 아이는 꽤나 부담을 느꼈나 봅니다. 어느 순간부터 일기가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써야 하는 것’이 되어버린 듯 보였습니다. 거기서 멈췄습니다. 아이가 준비될 때까지 잠시 멈췄습니다. 학교에 입학해서 일기 쓰기 과제가 나오는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글씨가 남겨진 아이의 일기장을 덮으며 이제 다시 일기 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글쓰기를 잘할 수 있게 알려줘야 한다는 부모로서의 의무감을 동시에 가졌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일기를 쓰기를 강제하고 검사하는 것이 어린이의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오래전부터 일기 검사의 문제를 이야기해 왔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에는 마음이 머물기 어렵습니다. 그 글이 평가의 대상이 된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일기 쓰기의 가치를 믿는 부모입니다.
한 반의 담임을 맡게 된 이후 반 아이들에게 일기를 쓰게 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주제 글쓰기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매주 정해진 주제에 자신의 생각을 쓰도록 합니다. 그 글에 글쓰기에 더 나은 방향에 대한 조언을 적어줍니다. 생각을 확장하고 글 쓰는 방법, 맞춤법 교정 등에 적절한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가정에서까지 일기 쓰기를 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일기 쓰기는 평소에 아이의 글쓰기를 살펴볼 좋은 기회입니다. 하루를 돌아보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문장으로 정리하는 힘을 기르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그래서 일기 쓰기 과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왔을 때도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권했습니다. 매일은 아니어도, 자주 써보라고 말입니다. 다만, 방법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매일 쓰기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평소에는 쓰고 싶은 날에만 쓰기로 했습니다. 대신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는 날, 가족이 함께 체험을 하는 날에는 꼭 쓰기로 했습니다. 한 달에 두세 번, 깊이 있게 생각으로 정리하고 글로 기억하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