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스타운 첫날, 예약은 사라지고 이야기는 남았다
우리 가족의 여행은 베트남 호찌민에서 시작해서 호주 시드니를 거쳐 뉴질랜드의 남섬 퀸스타운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아빠가 베트남 호찌민과 호주 시드니 여행을 준비하고 엄마가 뉴질랜드의 남섬 여행을 준비했기에 엄밀히 말하면 엄마의 여행기는 뉴질랜드에서 시작됩니다.
시드니에서 오후 2시 40분 비행기를 탔습니다. 목적지는 뉴질랜드의 남섬, 퀸스타운.
뉴질랜드와 시드니의 시차는 2시간, 뉴질랜드가 더 늦습니다. 3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퀸스타운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35분이었습니다. 호주는 시드니에만 머물렀고, 운전하기에 복잡하다는 글을 읽어 택시를 이용해서 이동했지만 뉴질랜드는 이동 거리가 길기 때문에 미리 렌터카를 예약해 두었습니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공항에서 렌터카 찾기였습니다. 예약했던 차보다 더 좋은 픽업트럭으로 차를 업그레이드받아 여행 기간 동안 세 아이와 함께 넉넉하고 편안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행 중에 얻게 되는 소소한 행운의 순간이 참 행복합니다.
생각보다 금방 주위가 어둑해졌기에 빠르게 숙소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 밀포드 사운드에 가기로 했기에 잠만 잘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했었습니다. 그런데 숙소에 도착하니... 세상에 이런 일이? 숙소 예약 내역이 없다고 합니다. 카운터 직원의 영어를 제대로 알아들은 것이 맞는지 몇 번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가격이 가장 저렴했던 트립 닷컴으로 예약을 한 후 트래블 월렛으로 결제 카드 등록을 했었는데, 숙소 체크인 이틀 전에 결제하는 상품이었던 것이에요. 체크카드인 트레블 월렛에 잔액이 부족하여 결제가 안 되었고 숙소 예약이 자동 취소된 것입니다. 메일도 왔었고 팝업도 떴었는데 호주에서 핸드폰 확인할 틈이 없어서 확인도 못 했던 것입니다. 일주일 전 도착한 친절한 메일을 이제야 확인하고 파워 P인 엄마는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다른 숙소로 가기에는 시간이 늦어서 주위가 너무 어두웠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방을 결제했습니다. 직원은 유감을 표하며 원래 가격에 15% 할인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이 전에 예약한 가격보다는 꽤 비쌌습니다. 결국 여행 사이트에서 예약하는 것보다 더 비싼 가격에 덜 좋은 방에서 머물러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공돈을 날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잠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하루가 나쁘게 기억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상하지 못한 일로 당황해서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도 했지만 결국 한 침대에 누워 하루를 아쉬움을 이야기로 정리한 시간은 계획대로 된 여행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장면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흘러가는 여행보다 약간의 어긋나는 순간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더 의지하고 그 시간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렌터카를 업그레이드받았던 그 순간의 기쁨과 숙소에서의 당황스러움은 서로를 지워버리는 일이 아니라,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귀한 가르침을 준 시간이었습니다. 선명하게 기억한 하루를 만들어 준 에피소드 앞에서 우리는 그날을 ‘조금 비싸게 배운 하루’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행복과 불행이 적절히 섞여 있는 인생에서 때때로 맑은 날을 기억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살아볼 만한 곳 아닐까요? 그날 밤, 우리는 그렇게 또 하나의 이야기를 얻고 잠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