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만 하면 된다는 말이 남긴 것
중간만 가면 된다는 말
학창 시절, 성적 때문에 혼나본 적은 없습니다. 성적이 좋아서가 아니라 부모님께서 저에게 성적 부담을 크게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잘 본 날 크게 칭찬하지 않으셨고 그렇다고 시험을 못 본 날 크게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어디서도 중간만 하면 된다."는 것이 부모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 부모님 덕분에 성적표를 숨긴 적도, 잘 못 나온 성적 때문에 가슴 조리는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기대가 낮다는 것도 마냥 좋은 일은 아닙니다. 기대하지 않는 부모님이 무심하게 느껴지고 부모님의 우선순위에 자식은 없는 것 같은 서운함이 항상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배려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을 ‘기대 없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이가 내게 왔을 때 내 아이는 특별한 아이로 키우겠다고 결심한 것은 부모님의 무심함에 대한 서운함 때문이었을 거예요. 무한한 사랑과 관심으로 누구보다 잘 키우겠다는 욕심을 가졌었지요. 다른 아이보다 조금 빨리 걷기를 시작한 것도, 또래보다 말을 먼저 시작한 것 등 책에 나온 발달 단계보다 빠른 아이의 도약이 내 성적표인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의 첫걸음이 또래보다 빨랐다는 사실 하나로, 나는 이미 앞서가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경험하듯 우리 아이는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가득한 시절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무언가를 조금만 잘해도 우리 아이는 1등으로 잘 클 것이라고 자만하던 시절입니다. 엄마의 즐거운 상상은 아이가 조금만 자라도 금방 깨집니다. 세상에는 1등보다 1등이 아닌 아이가 더 많으므로 아이가 자라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무수히 경험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겸손해집니다. 부모가 되어 얻게 된 가장 값진 것이 겸손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중간은 풍요하다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중간과 꼴찌의 좋은 점을 읽다가 무릎을 탁 쳤습니다.
'1등'이 치러야 하는 긴장감, '모범'이 요구하는 타율성에 비해 '중간은 풍요하고', '꼴찌는 편안하며', '쪼다는 즐겁다'는 역설도 그것을 단순한 자기 합리화나 패배주의의 변이라 단정해 버릴 수 없는 상당한 양의 진실을 그 속에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아이가 그렇지는 않지만, '1등'하는 '모범'적인 아이들의 긴장감과 타율성은 교실에서 자주 보게 되는 장면입니다. 잘하는 것은 많지만 조금의 실패도 용납하지 못하고 스스로 괴롭히는 아이, 본인의 기준과 다른 친구들을 견디지 못하고 규율을 정하는 아이, 실패할 것 같은 과제는 시작도 하지 않는 아이, 어른이 기준을 주지 않으면 시작하지 못하는 아이...
오히려 성적이 중간 정도인 아이들은 성공을 할 때도 실패를 할 때도 있으니 어려워 보이는 과제에도 우선 도전해 봅니다. 성공하면 기뻐하지만 실패에도 크게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지난번보다 성장한 경험을 쌓으며 친구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하며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갑니다. 결국 자신의 교실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아이들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교실 생활을 풍요롭게 합니다. 마음 편한 꼴찌도 있습니다. 본인의 마음이 편하고 즐거우니 다른 친구들의 삶도 즐겁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1등이 아니어도 괜찮아
1등이어도, 1등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저는 1등을 좇다가 놓쳐버리기에 아까운 것들에 더 마음이 쓰이는 엄마입니다. 1등 만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한다면, 그때는 1등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에 누릴 수 있는 천진난만함, 호기심, 개방적인 성향을 버려야 하는 1등이라면, 차라리 그 1등을 포기해도 괜찮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도록, 경쟁을 강요하지 않으려 노력해 왔습니다. 다른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의 속도로 자라는 성장을 바라보려 했습니다.
1등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성장하며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진짜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부모님은 이미 알고 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간쯤에서 흔들리며 자라는 시간이, 결국은 가장 단단한 성장을 만든다는 것을 저는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