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없는 고요한 출산 방식을 꿈꾸다

세 아이 모두 다른 출산법 2편

by 초바샘

2012년 2월의 어느 날 밤 11시경,

저는 아기를 만났습니다.
첫아이를 낳은 지 4년 만에 찾아온 둘째였습니다.


첫아이의 태교와 출산에 온 마음을 쏟았던 초보 엄마는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임용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험 준비를 하며 둘째를 갖게 되어 만삭의 몸으로 매일 10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공부했습니다. 힘든 날엔 짜증도 내고 울기도 했지요. 그래서 남편에게 “이 아이는 나중에 공부를 아주 싫어하거나, 아주 좋아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야.” 하고 웃으며 말하곤 했습니다.


첫째 아이를 만나게 되며 “태교를 잘하면 순한 아이가 태어난다.”는 말을 믿고 책을 읽고, 문화센터를 다니고, 클래식을 들으며, 산책하며 대화하고, 반야심경까지 필사하던 열 달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첫째는 눕히면 깨어 울고, 낮잠은 제 배 위에서만 잤습니다. 그때의 저는 내 아이가 순둥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태교는 다 거짓말이라고 결론 내렸고, 그래서 둘째 때는 크게 태교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사실 태교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지요.


지금 중학생이 된 둘째는 오래 앉아 있는 건 잘하지만, 짜증도 내고 ‘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힘들어하곤 합니다. 가끔 저는 생각합니다. 태교는 역시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첫째를 키울 때는 첫째가 순한지도 몰랐습니다. 비교 대상이 없으니 모든 행동이 예민하게 느껴졌던 것이지요. 그런데 둘째를 낳아보니, 첫째가 얼마나 순한 아이였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출산을 앞두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고, 뱃속의 아기와 많이 이야기해 주세요.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요.
태교는 정말 중요합니다.


첫째는 조산원에서 의료적 개입 없이 자연주의 출산을 했지만, 둘째 때는 조산원을 다시 선택하기가 망설여졌습니다. ‘비상 상황이 생기면 조산원에서 잘 대처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분당에 인권 분만을 하는 병원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출산이 가능하다는 말에 그 병원에서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습니다.


인권 분만은 산모와 아이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출산 방식입니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아이의 시력을 보호하고, 억지로 울리지 않으며, 탯줄도 바로 자르지 않습니다. 출생 직후에는 모자동실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애착을 돕습니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래서 셋째를 낳을 때는 다시 출산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지요.


출산 예정일 일주일 전 병원 정기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양수가 터졌습니다. 병원에서는 감염 위험 때문에 씻지 말라고 했고, 저는 간단히 세수만 한 뒤 병원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자궁은 이미 많이 열려 있었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면 알려 달라는 안내를 받으며 변하게 진통할 수 있는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남편과 TV를 켜니, 우연히 ‘순풍 산부인과’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둘 다 웃으며 보느라 진통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많이 아프다 싶은 때 간호사 선생님께 알렸더니 곧바로 분만실로 이동해야 한다고 합니다.


분만실은 조산원과 전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인권 분만을 기대했지만 병원은 병원이었습니다. 침대 같은 곳에 누워 의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시자마자 출산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과정은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전체 진통을 100이라고 한다면, 첫째는 10시간 동안 나누어 아팠고 둘째는 3시간 동안 몰아치는 통증이었습니다. 분만실의 모습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분만실로 들어갔을 때의 차갑고 싸늘한 온도만은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녹초가 된 제 가슴 위로 울지 않는 아기가 안겼고, 남편과 저는 새로운 가족을 조용히 맞이했습니다. 남편이 탯줄을 자른 후, 아이는 스스로 젖을 찾아 물었습니다. 그 순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큰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정말 잘 견뎠다.”
저 자신에게도, 아기에게도 조용히 말했습니다.

지금 사춘기인 둘째와 부딪힐 때면 가끔 이 순간을 떠올립니다. 그럼 마음이 조금은 부드러워집니다.


출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은 또 다른 세계였습니다.
인권 분만 병원에서의 출산은 일반 병원보다 분명 더 편안했을 테지만, 제가 상상했던 만큼 여유롭거나 고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의료진은 친절했지만, 병원의 바쁘고 빠른 공기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선물처럼 셋째가 찾아왔고, 저는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저는 왜 다른 방식을 선택했을까요?

다음 편에서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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