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 모두 다른 출산법 1편
2008년 5월의 어느 날, 아침 7시.
아기를 만났습니다.
첫아이가 태어난 것입니다.
태교에 진심이었던 시절, 보건소의 임신·출산 강좌에서 자연주의 출산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낳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초보 엄마는,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의료 행위 중 불필요한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모, 관장, 무통주사, 회음부 절개 등 출산 과정에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절차 없이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습니다.
큰아이를 낳은 이후, 아이와 엄마에게 더 좋은 출산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세 아이 모두 다른 방식으로 출산했지만, 무통주사는 한 번도 맞지 않았습니다. 진통이 무섭지 않아서도, 아프지 않아서도 아니고, 첫 세상을 맞이할 아이를 위해 필요한 만큼의 고통을 느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집같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아이를 낳고 싶어서 조산원을 알아보다가,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임신 중기 때 고민 끝에 출산 방법을 결정하고는 아이를 위해 좋은 선택이라며 흔들림이 없었지만, 출산 날짜가 다가올수록 무섭기도 했습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불안함이었습니다.
출산이 위험한 일이라는데,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조산원에서 잘 대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컸습니다. 근처 산부인과와 연계되어 있고, 비상 상황 시에는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된다는 말에도 크게 안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자연주의 출산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괜찮을 거야’ 하며 넘어갔습니다.
출산 전날 아침, 가진통이 시작되어 조산사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니,
“첫아이는 빨리 나오지 않으니 걱정 말고 많이 걷고, 잘 먹으면서 진통이 규칙적으로 올 때 다시 연락 주세요.” 라고 하셨습니다. 조산원에서 출산 준비를 모두 마쳐 놓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평소 건강해야 자연주의 출산을 할 수 있다고 하셔서 운동, 음식, 수면 등을 지키며 지냈는데, 이제 아이가 나올 때가 되었으니 운동은 많이, 음식은 먹고 싶은 건 뭐든지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이 휴가를 내고 함께 주변 공원을 걸으며, 먹고 싶은 음식도 먹고, 아이를 기다리며 편지도 썼습니다. 진통의 세기는 생리 전 배가 살살 아픈 정도에서 시작해, 점점 찌릿찌릿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아픔은 그저 불편한 정도라, 평소에 먹고 싶었지만 아이를 생각해 참았던 밀가루 음식과 삼겹살을 먹었습니다.
진통이 규칙적으로 반복된 것은 저녁이었습니다. 그때는 진통 앱이 없던 시절이라,
제가 “진통이야!” 하면 남편이 종이에 진통이 오는 시간을 빼곡하게 적었습니다. 11시쯤 되니 진통이 규칙적으로 와서 조산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조산원은 아이를 낳은 뒤 산모의 상태가 좋으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짐은 많지 않았습니다. 금방 나올 줄 알았던 제 생각과 달리, 조산원에서 내진을 해보니 아직 2cm 정도밖에 열리지 않았다는 소리에 좌절했습니다.
‘이 정도의 진통은 진통이 아니었나?’
앞으로의 진통이 장난이 아닐 것을 예감했습니다.
조산원의 분만실은 집의 방처럼 생겼습니다. 그 방에서 밤새 진통을 하며 기체조로 배웠던 동작들을 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진통이 올 때마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게 되었고, 그 탓에 출산 후 몇 년간 팔목이 아파 고생했습니다. 출산 교실에서 배운 호흡도 당연히 잘 되지 않았습니다. 진통이 덜 느껴지는 자세를 찾으려 애쓰며, 진통이 없을 때는 빅볼을 이용해 뻣뻣해진 몸을 부드럽게 풀었습니다.
진통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힘들었는데, 옆에서 꾸벅꾸벅 졸던 남편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중간중간 조산사 선생님이 상태를 보러 오셨다가 가시기를 몇 번, 죽을 만큼 아프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을 때 출산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이 앉아 저를 안고, 그 앞에 제가 앉아 아이를 낳을 준비를 했습니다.
어떻게 힘을 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래쪽에 묵직한 것이 걸린 느낌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조산사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힘을 주었습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첫아이가 태어났습니다.
2008년 5월의 어느 날, 아침 7시경이었습니다.
울지 않던 아기가 내 가슴에 안겼고, 남편과 저는 아이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남편이 탯줄을 자른 후, 아이는 울다가 스스로 젖을 찾아 물었습니다. 배운 적도 없는데 젖을 빠는 모습이 경이롭고 기특했습니다. 그 순간, 아이를 낳은 세상의 모든 엄마들과 온 힘을 다해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위대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정말 망각의 동물인지, 그때의 고통은 이제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출산·육아 서적을 보며 마음이 끌리는 구절만 기억해 두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중 하나는 “아기를 낳을 때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열 달 동안의 태교를 아이가 다 잊을 정도로 놀란다”는 말이었습니다. 믿지 않으면 그만이었지만 그땐 정말이라고 믿고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평소에 제가 엄살이 심하다고 생각했던 남편은,
“엄마란 정말 대단한 존재구나.”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아기를 잘 낳는 것만 생각했던 임신 기간이 지나 아이를 낳자마자 알게 되었습니다.
출산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것을. 끊임없는 육아가 출산보다 몇 배, 몇천 배는 더 힘들다는 것을 아무도 초보 엄마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자연주의 출산은 집같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임신 기간 동안 엄마와 아이가 건강해야 위험하지 않게 출산할 수 있다고 하신 조산사 선생님의 말씀처럼, 건강하게 지내야 한다는 부담이 약간의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임신 중에는 하루 한 시간 이상 걷기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두 번 기체조를 했습니다. 커피와 밀가루, 너무 기름지거나 단 음식은 제한했고, 잠도 잘 자야 했습니다. 출산에 대해 공부하고, 그 상황을 머릿속으로 여러 번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첫아이를 낳으며 ‘둘째도 조산원에서 낳아야지’ 막연히 생각했는데,
4년 후 둘째가 생겼을 때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둘째는 어떻게 낳았을까요?
왜 초바샘은 다른 방법을 선택했을 까요?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