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생각으로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을까?

괜찮아, 그럴 수 있지.

by 백목이

나는 이 말을 자주 쓴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모든 관계에서 나는 이 말을 바탕에 깔고 간다.

이 말은 곧, ‘실수할 수도 있지’, ‘다 다를 수 있지’ 이해와 배려를 담은 말이다.

상대를 무한히 배려하는 태도, 그게 나였다.


그런데 문득, 이 말이 참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습관적으로, 어느 정도의 신뢰를 깔고 사람을 대한다.

신뢰는 실망을 동반한다

기대한 만큼 결과가 따라오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니까.


사실 여기까진 괜찮다.

실망하고 그 사람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으면 되니까.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질 못한다.

나는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내가 신뢰하는 만큼 자라나길 바라며 기다린다.

그리고 조금의 설득을 얹고 또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신뢰라는 이름으로 내 감정과 에너지를 갈아 넣고 있다.


처음에는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그 말, 그 상황.

시간이 지나면 의문이 밀려온다.

‘내가 왜 그때 그걸 이해했지?’,‘진짜 괜찮았던 걸까?’,‘저런 행동을 하는데, 이유는 뭘까?’


그때부터 나는 판다.

납득이 될 때까지 파고든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왜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

왜 나는 그걸 넘겼을까?


쓸데없는 생각 같기도 하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바꿀 수도 없는데.

그런데도 그걸 멈추지 못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걸 이해하기 전까지 놓지 못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더더욱. 그래서 고등학교 때 입시에서도 수학만 주구장창 팠다.

대부분 수학은 공식을 쓴다. 하지만 난 그 공식을 뜯어보려는 성향이 있었다. 결국 암기보단 이해가 날 더 편하게 만들어줬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지적 집착이 강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스스로도 가끔 의아하다.

갈등의 순간에는 “괜찮아, 그럴 수 있지”라며 넘기면서,

결국에는 그 말에 담긴 감정을 다시 끄집어내고 파헤치고 있으니까.


나는 과거를 곱씹는 사람이다.

처음엔 미련과 후회로 시작되지만, 결국은 내가 어떤 감정을 겪었는지 되짚어 보려는 시도다.

이해하려는 노력. 납득하려는 반복.

이게 아마 내가 26년 동안 살아오며 만들어진 방식이다. 어쩌면‘괜찮아,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은

세상과의 충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내 나름의 방어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말은, 남을 향해 던졌지만, 나 자신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다.

언젠가는 나도 진심으로 그 말을 내게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괜찮아, 그럴 수 있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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