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이 질문을 받고 떠오르는 색이 없었다.
‘나는 초록색을 좋아하니까 초록색인가? 아니지 지금은 감정이 복잡하니까 보라색? 아니면 내가 지금 텅 빈 느낌이 자주 드니까 흰색인가?’
그러다 결국 나는 회색이라고 느꼈다.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누가 나에게 말을 걸어도 잘 와닿지 않고, 내가 스스로를 표현하려 해도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뭔가 쓰긴 쓰는데, 희미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회색은 애매하다. 채워져 있는 것도, 비어 있는 것도 아닌 상태. 어떤 회색은 흰색에, 또 어떤 회색은 검정색에 가깝다. 지금 나는 검정색에 가까운 회색 같다. 감정이 가득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나조차도 헷갈리는, 그런 흐릿한 상태. 그래서 나는 희미하지만 무언가 써지긴 하는 내 자신을 회색이라고 느낀다.
요즘 생각을 할 시간이 꽤 많다.
내 복잡한 마음이 어디서 비롯된 건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생각을 거듭하고 그걸 글로 쓰고 또 생각하다, 결국엔 결론에 도달하기는커녕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길로 새 버리는 경우가 많아진다. 물론 해결된 생각들도 많다. 하지만 해결하지 못한 생각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때마다 글로 쓴 내 생각들을 차분히 다시 보게 된다. 결국엔 해결은 못한다. 다만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뿐.
그런데 지금도 나는 이 색이 정말 회색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감정을 표현해도 흐릿하고, 마음을 털어놔도 진짜 내 속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렵다. 어쩌면 이조차 회색이라는 상징을 더 굳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회색은 명확하지 않은 색이니까. 흐릿한 감정, 엉켜 있는 생각들, 나조차 쉽게 규정하지 못하는 이 상태. 내가 회색이 아니면, 도대체 무슨 색일 수 있을까.
회색은 무엇을 칠하려 해도 그 색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면 나도 그렇다. 감정을 표현해도 흐릿하고, 마음을 털어놔도 진짜 내 속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난 희미하지만 무언가 써지긴 하는 내 자신을 회색이라고 느낀다. 언젠가는 내 회색이 흰색에 가깝게 변해서 누가 나에게 기록을 남기고, 색을 칠하면 그 기록과 색이 뚜렷하게 드러날 수 있으면 좋겠다. 본질은 회색이지만, 어떤 색과 만나도 내가 남을 수 있게.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