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섯 프리스쿨(D3)

나는 가끔 마틴 루터 킹을 의심한다

by Esther Active 현역

Color의 시작이다. 난 Color에 PTSD에 가까운 예민증이 있다. 흑인 백인 혼혈, 백인 황인종 혼혈, 백인, 흑인, 황인종 우리 교실에는 적게는 서너 개의 Color가 많게는 약 24가지 Color가 필요하다. 피부색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족 그리고 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으니 서서히 자신의 피부에 대해 인식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핑크색을 집어든 동양인 아이가 있는가 하면 브라운 칼라로 자신의 얼굴을 칠한 백인 아이도 있다. 언니 오빠가 있는 막내는 어깨너머 배운 미술 실력을 맘껏 발휘한다. 얼굴, 팔다리, 몸통, 심지어 헤어 스타일도 표현하려 노력한다. 오늘의 이 Art and Crafts수업의 결과물은 아이의 발달 상황을 체크하는 봄가을 Conference를 통해 학부모에게 Progree Report 형식으로 전달된다. 다리 한 개가 머리에 달려있고 귀가 몸통에 붙어 있던 괴물 그림은 학년말이 되면 점차 사람 모습을 갖추게 된다. Color도 자기 주인을 찾아간다.


자신을 인식한다는 건 슬프고도 아름답다.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를 찾아가는 아름 다운 여정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는 슬픈 과정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려서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지만 나를 인식하고, 나의 환경을 인식하고, 나의 조건을 인식하는 순간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기때문이다. 우린 색깔로 구분되고 학벌로, 직업 군으로, zip code로 구분된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묘하게 특정 인종이 가는 쇼핑 장소가 따로 있고, 가는 식당이 따로 있고, 택하는 직업군이 따로 있고, 학교 과정이 따로 있다. 가령 Beauty Supply Shop, 닭튀김, 생선 튀김 전문 식당,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직업, 간호조무사 과정 등은 흑인이 비율이 80% 이상되는 듯하다. 감옥에서 근무하는 이곳 한국 간호사분 말에 의하면 범죄자들의 대부분도 흑인이란다. Local 뉴스에 매일 나오는 이들은 저학력에 저임금에 건강에 좋지 않은 패스트푸드와 튀긴 음식을 먹다 마약과 범죄에 빠져 결국 감옥행이 된다. 그래서 난 가끔 마틴 루터 킹을 의심한다.


마틴 루터 킹은 Color에 의해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기회와 대우,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운 위대한 리더다. 하지만 그 위대한 리더십이 어찌 해석되고 인용되고 이용되는지를 보다면 아마 그도 마음이 불편할 때가 많을 것이다. 처음 이민 와 흑인 상대 가게에서 캐셔 알바를 할 때였다. 한국인 주인은 위조지폐를 구분하는 특수펜과 렌즈를 주며 $50,$100은 손님 앞에서 바로 위조지폐 유무를 구분하도록 내게 시켰는데 손님을 범죄자로 보는 이 행위는 정말 못할 짓이었다. 하지만 더 못할 짓은 끝도 없이 물건을 훔쳐가면서도 눈으로 직접본 훔친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확인할 게 있으니 가방 좀 보여달라 하면 너무나 당당히 자신이 흑인이라 차별받고 의심받는다며 고래고래 소리치고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가 대동단결하여 하나가 되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때 내가 서있었던 곳과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은 스펙트럼의 양끝만큼 다르다. 내 앞에 있는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면서 다른 이들 눈에 이 아이들은 출발점이 다르다고 여겨질지 몰라도 지금 내 눈엔 모두 같은 Starting Line에 서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D1에서 모아진 정보를 보니 내 교실의 마틴 루터 킹 후예들은 직업군이 정말 다르고 Zip Code가 다르다.


다른 색의 피부와 문화를 가진 아이들에게 자의식을 일깨워 줄 때면 늘 조심스럽다. 나 또한 한 인간으로서 유색 인종으로서 이민자로서 한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할 때가 있고 한계 뛰어넘어 도전해야 할 때가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주변이 하는 말로 나를 규정짓고 한계를 정하고 comfort zone에서 comfort food만 먹으며 어린아이처럼 살아가는 건 이 세상에 온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나를 둘러싼 세상을 깨고 나와야 한다. 날마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특정 직업군과 zip code가 말해주는 겉모습의 삶이 아니라 그 너머의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주도적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자의식 교육의 목적이다. 아이들은 하루 수십 번 옷을 갈아입는다. 오 분 전에 치과 의사 가운을 입고 썩은 이를 뽑다가 요리사 옷으로 갈아입고선 아침상 차려 놨다고 나를 부른 후 먹으러 갈라하면 이미 소방관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Call이 와서 불 끄러 가야 한다면서. 아침 먹고 있을 테니 잘 다녀오라 하면 가다가 강아지를 차로 치었다며 응급수술하게 수의자 가운과 청진지, 주사기를 빨리 내놓으란다. 때론 위대한 리더들조차 나를 한정 짓는 족쇄가 될 수 있다. 그 감옥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무기징역의 죄수처럼. 난 아이들이 자유롭게 삶의 옷을 갈아입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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