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묻힌 파주 동화공원묘지를 가려면 홀트아동복지회를 지나야 한다. 해마다 지나게 되지만 별 관심도 의미도 두지 안았었다. 그러다 홀트 아동복지회 이름을 전혀 뜻밖에 사람에게서 듣게 되었다. 지난 목요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내 파트너 선생님을 대신해 이번주 나랑 같이 일하게 될 sub 선생님 아들의 여자 친구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입양된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여자 친구의 언니도 홀트룰 통해 먼저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었는데 두 자매와 그들의 미국인 남자친구들이 이 주간의 모국 방문길에 올라 백장이 넘는 사진을 엄마에게 보냈는데 전부 먹는 사진들이라며 한식이 그리 맛있다는데 사실이냐고 묻는다. 왜 안 맛있겠는가? 뿌리가 한국인데 그리고 그들은 사랑에 빠졌는데....
사실 한국에선 입양아들을 만날 일이 없었다. 한국에서 입양하면 당연히 해외로 가는 outbound만있었지 inbound가 없었으니 당연히 만날 일이 없었던 거다. 그리고 outbound 입양의 중심에 미국이 있고 이제 미국에서 사는 난 그들을 만날일이 생겼다. 내가 미국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 입양아는 개인이 아니라 70명에 가까운 한국문화 체험 summer camp의 입양아들이었다. 당시 마땅한 장소가 없어 교회 건물을 빌리고 숙소는 부모들이 알아서 근처 호텔에 투숙하며 진행한 5일짜리 체험 summer camp였는데 난 거기서 3일 동안 한국 음식을 가르쳤다. 나를 포함한 모든 한국인 summer camp master는 5일 동안 무보수 vounteer로 참여했다. 직접 송편과 절편을 만들고, 약식을 만들고, 김밥을 만들어 미국 부모님께 대접했다. 검은 머리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는 금발 머리의 미국양부모님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러저러한 기형, 장애를 가져 입양이 어려웠던 아이를 2명씩 입양해서 본인이 수술비, 치료비 다 대어 가면서 키우는 미국인 양부모님들이 꽤 많았었다는 점이다. 누구는 버렸는데 누구는 거두어 기르는가?그게 충격이었다.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다른 어미 새가 자기 새끼를 부화시키고 먹이고 키우도록 하는 얌체새로 잘 알려져 있다. 입양아 한국문화체험 summer camp를 한 후 한동안 난 뻐꾸기 어미된 마음이 들어 그 summer camp volunteer를 하지 못했었다.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 참 맘이 불편했다. 미국인 부모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장애인 아이들 한국에서 입양해 먹이고 키우고 또 그 문화를 잊지 않게 하려고 태권도도 가리키고 여름휴가 반납하고 일주일씩 이런 입양아 summer camp를 돈 들여오는데 과연 우리는 무얼 하고 있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런 해외입양이 전쟁후 못살던 5-60십년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홀트는 지금도 아이를 해외로 입양보내고 있고 한국은 세계 3위의 입양아 수출국이다.
한류를 타고 수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찾을 때 분명 거기에 입양인들도 있다. 이미 성인이 되어 뿌리를 찾아온 그들. 어미 뻐꾸기는 한국에 그대로 있겠지만 그를 먹이고 입혀 키운 다른 둥지의 어미새는 그 새끼가 자기의 뿌리를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길 이곳에서 바라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둥지를 떠난 우리 나라의 해외입양아 뿌리는 누가 넓고 깊게 내려주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