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화가 난 건 그 모녀의 온 클라우드 몬스터 러닝슈즈였다. 그리고 그 모녀의 완벽한 화장 그리고 환한 안색이었다. 나만 쓰레기 인가? 왜 나는 그들이 신은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것 같은 깨끗한 고급 러닝슈즈에 눈이 갔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나 보다. 그들의 완벽한 뽀얀 화장과 불은 입술색과 더불어 그들이 "가진 이"라는 증거를 찾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이에 비해 광채 나는 그들의 낯빛도 내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왜 이곳에 와서 무료 피검사를 받고 진료를 받는가? 이들은 돈 주고 피검사도 받고 진료도 받을 만큼 부유해 보이며 아니 어쩜 이런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만큼의 영향력도 있어 보인다. 그게 내 심기를 건드렸다.
나는 오랫동안 저소득층 무보험자를 위한 무료 진료소에서 발렌티어로 일하고 있다. 토요일 오전에 이뤄지는 피검사와 그다음 토요일에 이뤄지는 진료를 도와주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토요일 아침을 헌신하는 일이라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는 봉사활동이다. 돈이 없어 보험에 가입을 못해 제때 피검사도 못 받아 병을 키우는 걸 막기 위해 뜻있는 의사 수십 명이 모여 일 년에 한 번 종합병원도 운영하고 대여섯 명의 의사들이 매월 무료로 진료를 봐주는 곳에서 봉사해오고 있다. 어제 난 우크라이나에서 온 난민 모녀의 피검사를 도와주며 절대 변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나고야 말았다. 그것은 가진 자, 그게 권력이든 돈이든 인맥이든 가진 자들은 언제나 가진 자들끼리 논다는 것이다. 가진 자들은 가진 자들을 알아보고 도와준다. 그건 절대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이런 무료 진료소조차도 가진 자들이 이용한다는 점이다. 정보를 가진 자들, 인맥을 가진 자들, 힘을 가진 자들 말이다. 없는 자들은 돈이 없어 보험도 없고, 정보도 없어 이런 무료 진료소가 있는 줄도 모르며, 인맥이 없어 이런 무료 진료소가 있다는 사실 자체도 알려줄 사람이 없다.
사실 전쟁이란 상황에서 다른 나라로 전쟁을 피해 올 수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그것도 이웃 나라가 아닌 미국이란 나라에. 그런데 전쟁을 피해온 우크라이나 모녀의 차림은 내가 생각하는 전쟁 난민의 옷차림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일하는 프리스쿨에 온 유대인 전쟁 난민도 똑같다. 물론 사립학교인 우리 학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측면에서 이 전쟁 난민 애들을 무료로 받아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프리스쿨을 어찌 알았을까? 난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환한 낯빛, 깔끔한 옷차림, 고급진 몸짓, 손짓, 눈짓이 맘에 걸린다. 그들이 뒤로하고 온 "없는 이"들의 주검들이 목구멍에 탁 걸리기 때문이다. 권력이 없는 사람들, 지위가 없는 사람들, 정보가 없는 사람, 돈이 없는 사람들, 인맥이 없는 사람들, "없는 이"들은 이 모든 것들이 깡그리 없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으로 전쟁을 맞는다. 소설가 한강이 "전쟁으로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노벨상 받았다고 축하 잔치라니 안될 일"이라고 했다던가?. 나도 그리 생각한다.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온 클라우드 몬스터 러닝슈즈라니 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