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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귀신

별 다섯 프리스쿨(D39)

by Esther Active 현역

심판의 날 당신은 어느 나라 말로 심판받고 싶으신가요? 모국어가 한국말이라면 한국어로 받게 될까요? 이중언어가 가능하다면 영어등 다른 나라 말로 심판받는 옵션이 주어질까요? 흔히 어떤 분야에 비논리적으로 뛰어난 인싸이트를 가진 사람을 귀신이라고 하지요? 인간의 경지가 아니라 신의 경지에 이르렀는데 왜 신이라 부르지 않고 귀신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는 꽤 궁금합니다. 기독교에선 사람이 죽고 나면 살아생전 품었던 생각과 행실에 대해서 그리고 믿음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최후 심판을 받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전 그때 하나님의 판결 내용이 나의 최후 진술이 영어일지 한국어일지 궁금합니다. 영과 영이 대화를 하게 되는 특성상 특정 언어에 대한 프레임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가끔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가장 편하게 쓰는 모국어가 최후 진술에 사용되지 않을까 가정해 봅니다.

저는 남들이 안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사실 이 말도 안 되는 질문은 미국에서 제왕절개를 통해 아이를 낳았을 때 경험했던 일종의 트라우마 때문입니다. 이민 온 지 팔 개월이 안되었 때 종합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아이를 낳고 도저히 병원에 있을 수 없어 퇴원 후 스티치가 터진다든지 하혈을 한다든지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다든지 하는 것에 대해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는다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3박 4일 입원기간을 2박 3일 만에 끝내고 퇴원을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든 의료진, 모든 병원 스테프가 영어를 쓰며 한국인이라고는 그 큰 산부인과 병동에 나 혼자 뿐이라는 게 갑자기 공포 수준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일종의 충격사태에 빠졌던 겁니다. 그리고 갑자기든 생각이 내가 죽어 미국땅에 묻히게 되면 내 옆에 묻힐 사람은 철수 영희가 아니고 John과 Jane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그리 부담스러웠습니다.

저는 미국에 살고 있고 미국 어린아이들을 가르치지만 영어 귀신이 아닙니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 부족 때문일까요? 동네 입구마다 온갖 귀신이 등장하는 핼러윈이 되면 저는 또다시 "죽어 심판대에 가면 최후 변론은 한국어로! "를 혼자 조용히 외칩니다. 생각하면 정말 논리적이지도 않고 성경적이지도 않고 유치하고 우습기까지 한데 난 이게 그렇게 신경 쓰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와 감정, 무의식 때문에 전 늘 귀향을 준비합니다. 우리 동네를 가득 메운 미국 귀신을 피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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