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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

by Esther Active 현역

우리 집에는 검은색 커버와 하얀 종이 그리고 커버를 제외한 면에는 붉은색이 칠해져 있는 세로인쇄 성경이 있다. 언제부터 우리 집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면서 한국에서 가져왔다. 세로인쇄 성경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외할아버지나 엄마가 읽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1956년 대한성서공회에서 출판되었다는 기록을 미루어 볼 때 한 69년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이야 흔하디 흔한 책이 되어 거들떠도 안 보는 책이 되어버렸지만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셨던 일제 강점기 때는 한글이아닌 한자로 된 성경은 귀해서 일부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내용을 읽고 전달해 주는 방식으로 성경공부가 이뤄졌다는데 책도 귀하고 종이도 귀하니 말씀을 외우는 것밖에는 말씀을 가까이할 길이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성경이지만 읽지 않은 채 방치된 성경을 보니 예전 "차마고도 학교 가는 길"이라는 원난성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 목숨 걸고 가는 배움의 길이 생각난다.

배움이 무엇이길래 부모와 아이들이 목숨을 걸고 학교를 가는 걸까? 원난성 거기에는 단 하난의 열망이 있었다. 지금보다 나은 능력을 갖추어서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이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 아이들과 부모는 먹을 것 입을 것 공부할 것 등 많지도 않은 짐을 싸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외줄 집라인을 타고 험한 외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다른다. 강에 다리가 놔져 있는 것도 아니고 산에 낙상 방지용 밧줄하나 매달린 것 없는 그 험한 길을 코흘리개 어린아이도 부모도 지나야 다다른다. 실제로 외길에서 미끄러져 목숨을 잃기도 하고 차가운 얼음물을 건너야 하니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도 이겨내야 한다. 학교에 다다랐다고 고생 끝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은 학기가 마칠 때까지 거기서 먹고 자며 부모와 떨어져 지낸다. 그 외로움의 고통을 무슨 말로 다할까만 아이들도 어른들도 목숨 건 배움이니 감내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난 만일 평등 교육이 폐지되고 종교의 자유를 빼앗기면 무슨 일이 생길까 공상했던 일이 기억난다.

오늘 아침 큐티 말씀에 "너는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라고 말씀하시고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여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다" 라며 신앙인이 성경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신다. 만일 어느 날 갑자기 종교의 자유가 없어지고 성경이 불태워지는 날이 온다면 어찌 될까? 만일 어느 날 갑자기 평등 교육이 사라지고 돈과 권력을 쥔 단 1%만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난 확신할 수 있다. 삶을 송두리째 거는 위대한 도전들이 일어날 거라고. 목숨을 걸고 말씀을 배우고 익히고 목숨을 걸고 글을 읽고 배우려는 도전이 일어날 거라고. 허나 현실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 허용되었지만 하지 않고 거부한다. 남 이야기 하는 듯 하지만 나 자신의 이야기이고 많은 신앙인이라고 스스로를 일컫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세상적 성공과 번성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지금 실리적 도움이 안 되는 바르게 함을 가르치는 책이라니 의를 교육하는 책이라니 세상과 맞지 않다. 그래서 성경은 한편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다만 신앙인은 영원한 평화와 영원한 생명을 열망하기에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어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해 배움의 길을 걸어야 한다. 원난성 차마고도와 같은 좁은 외길이 될 것이고 고난의 길이 앞에 기다리고 있겠지만 목숨 건 배움의 길을 택해야 한다. 다시는 회복 못할 것 같은 낭떠러지 박해의 길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지만 감내하고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성경을 집어 들자!. 다시 읽자!. 머리와 마음에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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