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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는 세상

by Esther Active 현역

젊은 날 친정아버지는 상식을 벋어 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 시절 고등학생이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운다든지 다른 학생을 괴롭힌다던지 여학생이 화장을 하고 어른이 다닐 법한 장소에 출현을 한다던지 동네 어른에게 인사를 안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상식을 벋어 난 행동들이었다. 그 시절은 그래도 낭만의 세대였다. 그런 나무람을 하는 어른이 있으면 듣기 싫으니 자리를 일찌감치 피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그중 일부 순진한 학생들은 어른이 말하니 피하지도 못하고 그 꾸지람을 온몸으로 받아내고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해야 그 자리를 벋어날 수 있었다. 통행금지 시간에 다닌다고 경찰에 잡히고 머리가 길다고 경찰에 잡히고 짧은 치마를 입었다고 경찰에 잡히고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여자들이 초 미니 스커트를 입고 벌건 대낮에 명동을 거닐면 말세라고 했었다. 지금이야 자기돈 주고 자기 멋 부리는데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그 시절은 그랬다. 폭력과 억압과 개인의 자유를 무시한 군사 정권의 행퍠라고 그러겠지만 그 시절은 그게 기준이었다. 단정한 짧은 머리와 무릎을 가리는 치마와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하고 어른이 돼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그런 기준 말이다. 그 기준을 벋어나면 말세의 증상이 되었다.

오늘 아침 큐티 말씀을 읽으니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라는 구절이 나온다. 말세라는 기준이 이것이라면 정말 말세다. 유튜브니 인스타그램이니 온갖 사회관계망이 자기가 얼마나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러 다니며 인생을 멋지게 사는지 자랑을 해 데니 이를 추앙하는 사람도 많지만 온갖 비방 댓글로 추락시키려는 사람도 많다. 부러워한다는 것은 그저 가볍게 누구는 좋겠네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오랜 기간 동안 반복과 누적이 되다 보면 소외감, 무력감, 폐배감 등으로 고통받게 된다. 그런데 이 고통의 시작점을 잘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에서 시작되며 또한 돈을 사랑하는 물욕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모든 사람이 몸짱이 되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고 다이어트를 하고 그 몸을 드러내기 위해 웃옷을 벗어던지고 최소한으로만 몸을 가리는 프로필 사진이 보편화된 것은 이런 자기애가 극대화된 시점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코로나를 겪으며 억지로 갇혀있던 욕망이 한꺼번에 분출되어 전 세계를 여행하고 음식을 맞보고 쇼핑을 하면서 그 내용을 유튜브 등에 올리기 시작했고 그중에서 다른 유튜브와 차별화를 갖기 위해 혹은 대리 만족을 하고 싶어 하는 구독자들을 위해 너도 나도 세상에서 제일 비싼 호텔, 제일 비싼 차, 제일 비싼 크루즈, 제일 비싼 비행기 좌석과 루트 등등 돈 Flex 하는 유튜브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니 그런 수준에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 정도는 맞혀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부모가 그런 능력이 안 되니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지금의 자신이 부모의 어떤 노력으로 여기 왔는지도 모르는 교만에 빠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부모를 원망까지 하는 세대가 되어버렸다. 내 기준에는 지금이 말세다.

나는 내가 지나고 있는 이 세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가진 한계로 인생 전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이룰 수 없는 염원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고, 무엇이 세상을 말세로 몰아가는지 세상의 시간을 위에서 아래로 딱 잘라 어느 한순간을 말한다면 어쩌면 더 쉽게 옳고 그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겠지만 세상은 과거와 현재 나와 너 사랑과 애증 원망과 측은지심등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 얽히고 섞어 어느 것 하나도 따로 딱 떼어놓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성경 속에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라고. 말세가 언제 올지 나도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인간인 나도 죽기 전에 마음이 급해져 Flex 해본다고 최고 좋은 여행지로 최고 좋은 좌석의 비행기표를 끊어 최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최고 좋은 음식을 오더해 먹으며 마지막 자만과 쾌락을 즐길지. 다만 한 가지 말세가 정말 내일이라도 당장 내 앞에 다가와 심판대에 앉게 된다면 적어도 이 세대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며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오히려 이 세대가 방황하지 않고 아파해하지 않기를 소망하며 삶의 작은 구석이라도 밝게 빛나게 바꾸려 했다는 기록이 남아 지기를 원한다. 말세가 온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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