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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집

그릇 많은 집

by Esther Active 현역

예전 한국에서 명절 때가 되면 큰 형님이 사시는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에 일가친척이 모여 차례나 제사를 드리곤 했었다. 큰 형님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은퇴하셨는데 선생님이라는 직분에 걸맞게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가 기계적 지식의 전달이 아닌 삶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인품이 넉넉한 스승이셨다. 그런 형님은 24시간 간병인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큰 시숙을 20년 가까이 돌보고 계신다. 필사한 성경이 몇 권이며 외운 말씀이 수백 구절은 되는 그 말할 수 없는 인내의 시간을 그분이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바라볼 수 없어 매년 한국을 방문하면서도 3-4년에 한 번 뵈러 갈까 말까 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올해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며 한국의 집을 정리하게 되니 언제 다시 한국에 오게 될까 하는 심정으로 큰 형님을 만나 뵈었다. " 그래 큰 집이 이랬었지" 큰 형님은 밖에서 간단히 뭘 사 먹어도 되는데 굳이 아이들을 위해 큰 집에 큰 집 밥상을 차려주셨다. 지금도 그분을 생각하면 그 세월을 어찌 견디고 사셨을까 싶은 생각에 눈물이 난다.

오늘 매일 아침 하는 성경 큐티에는 큰 집에 관한 말씀이 나온다. " 큰 집에는 금 그릇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라고 쓰여있다. 큰 형님 집에는 손님이 많았기 때문에 그릇이 많았다. 귀한 그릇도 있고 막 쓰는 그릇도 있고 제사 때만 꺼내는 옻칠한 그릇도 있는데 큰 형님은 아이들과 방문한 지난여름 형님이 꽤 아끼셨을 법한 귀한 그릇들에 밥을 담고 반찬을 담아내어 주셨다. 그분은 그런 분이다. 가장 아끼는 것을 내어 주시는 분이다. 반면 내가 아는 어느 분은 그분 남편의 우 격 다짐과 같은 초대로 집을 방문했다가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었는데 밖에 나가 마무리로 차나 커피 마시자는 제안에 울며 겨자 먹기로 내놓은 찻잔 세트에 놀라 입이 떠-억 벌어질 정도였다. 사실 그 와이프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남편으로 우 격 다짐으로 꺼내어진 찻잔 세트였다. 여자들은 사가져 온 과일이랑 얻어먹은 차가 미안해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려 찬장문을 여는 순간 아무도 말을 잊지 못했다. 명품 그릇들로 흘러넘치도록 꽉 쟁겨진 수납공간.... 그러나 그 집에는 남편의 우격다짐격 초대로 이어진 머그잔 커피 몇 번의 기억 밖에는 남지 않았다. 쓰임 받지 못하는 수백 점의 명품 그릇들이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인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사실 그 여자분이 무슨 선한 일에 쓰려고 그릇을 준비시켜놓고 우리에게 내어주지 못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평상시 성품을 보면 그 여자분에게 초대받은 분은 아마 없거나 아주 극한 소수의 사람이라 여겨진다. 정상 회담급의 VVVIP만 초대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큰 집의 큰 형님을 보면서 그분의 삶을 보면서 나라는 그릇의 크기와 종류에 대해 상상해 본다. 사실 나는 놋그릇을 좋아한다. 담고 싶은 점이 있어 그렇다. 놋그릇은 금색을 띄었지만 금이 아니며 예전에는 이 집 저 집에서 보통 그릇으로 쓰일 만큼 흔했지만 관리가 쉽지 않아 현재 보통의 가정에서는 쓰지 않는 그릇이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런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오히려 아예 음식을 업으로 하는 한정식집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식 음식이 고급져 보이게 하기 위해 많이 쓰이고 있다. 나는 그런 놋그릇이 되면 어떨까 싶다. 금이 아니되 금처럼 빛나고 귀한 재료로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귀하게 남을 대할 때 사용하고 관리가 쉽진 않지만 관리 방법을 일단 터득하기만 하면 깨질 염려 없이 평생을 쓸 수 있는 그런 그릇 말이다. 하긴 무슨 그릇이 되면 어떠랴 하는 생각도 든다. 함께한 이들과 기쁨과 행복, 위로와 격려, 희망과 꿈이 함께 하는 그런 자리에 쓰이는 곳이라면 질그릇인들 나무 그릇인들 어떠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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