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하실 그리스도
Show and tell 시간이었다. 보통은 아이들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인형 또는 책 등을 가져와 같은 반 아이들 앞에서 언제 어디서 누가 왜 주었는지 혹은 샀는지 이야기해 주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묻기도 하고 함께 만져보거나 놀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그날 A는 작은 두 손을 고이 접어 그 속에 작은 남자 인형을 show and tell로 들고 왔다. 그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J-e-su-s" 수줍고 작고 어눌한 말투에 잘못 알아들었는가 하고 다시 묻는다 그리고 같은 답이 되돌아온다. "J-e-su-s" 함께 일하는 선생님도 나도 그 밝음이 우리가 흔히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할 때 쓰는 그 Jesus!인 줄 알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다. 내가 뭘 잘못 알아들었나? 어? 예수님이 너의 show and tell이야?라는 질문에 고개만 끄덕인다. 왜 예수님이 너에게 스페셜해? 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 J-e-su-s d-ied on the c--ross for us" 유태인 학교에 크리스천 학생이라?. 물론 나도 몇몇 학생도 크리스천이다. 그런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 아이는 아니 어른도 이제까지 없었다. 적어도 내가 근무하는 기간 중에는 말이다.
오늘 아침 말씀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를 말씀하시면서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하신다. 만 4살 짜리도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말씀을 전하기 위해 힘쓴다. 어떤이는 아이가 자기 생각이 형성되기도 전에 아이들을 세뇌시킨다며 강요된 종교라고 하지만 신실한 신자 입장에선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또 들어야 형여라도 믿음에서 떠나더라도 다시 돌아올 시간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친정어머니를 그렇게 잃었다. 믿음에서 떠났던 어머니를 다시 돌아오게 하기엔 시간이 짧았다. 내가 늦게 믿은 탓도 있고 내가 때를 얻을 때까지 너무 많이 지체한 탓도 있었다. 사실 나는 말씀을 전파하지 못한다. 언행일치가 안 되는 나를 누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구원받았다는 감격으로 매일을 열심히 감사하며 살고 싶다" 할까 싶으니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어떤 지인은 내게 "내가 예수를 믿었으니 이 정도야, 나 예수 안 믿었으면 이것도 못돼"라고 되받아치고 예수님을 전파하라고 한다. 억지 주장 같지만 그나마 설득력 있는 것은 우리가 human being이지 human doing이 아니기에 우리의 행위만 보면 정말 실망스럽지 짝이 없다.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는데 도대체 마음이 행위까지 이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예수는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 우리의 행위와는 별개로 우리의 마음의 정중앙을 보신단다. 이유는 우리가 신이 아닌 human being이기 때문이다. 언행이 일치되는 완벽은 처음부터 신의 영역이다.
언제부터인가 내게 신앙은 잘 죽기 위한 길라잡이가 되었다. 마지막 순간에 가서 Jesus Christ! 하며 영겁의 지옥불에 떨어질까 두려워 지푸라지 잡듯이 잡는 그런 종교 말고 서서히 시나브로 쌓여가는 신앙이고 싶었다. 비 온 뒤 말랑해진 흙이 씨앗을 품고 싹을 틔우고 줄기를 내고 가지를 내고 나이테를 여러 개 두르고 열매를 맺은 오랜 시간의 과정이고 싶었다. 오랜 생각과 고민 끝에 나의 행위를 되짚어 다듬고 또 다듬어 그리고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최소한 무엇을 알고 있었고 무엇을 실천하려 애썼고 무엇을 실패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신앙이고 싶었다. 하려고 노력했으나 연약한 인간의 옷을 입고 사느라 이것밖에 되지 못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온갖 수치와 모멸을 견뎌주신걸 내가 안다고 떨리는 그 아이처럼 "Jesus died on the cross for my sins!"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