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근거 제시 없이 국민을 중대 선거사범으로 몰았다
**어느 매체에 기고한 글입니다. 해당 매체가 보도했기에, 저 역시 제 소셜미디어에 올립니다. 글 작성 시점은 6월 9일 낮 12시입니다.
중앙선관위가 ‘객관적 근거조차 국민에게 제시하지 않은 채’ 한 국민을 중대 선거사범으로 몰았다. 대부분 언론은 제대로 된 검증도 않고 중앙선관위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썼다. 내가 중앙선관위와 언론을 고발하는 이유이다.
사건 개요부터 살피자.
지난 5월 30일,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 관외투표를 하려던 유권자에게 지급된 회송용 봉투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기표된 투표용지가 나왔다. 유권자(이하 ‘A’)는 현장에 있던 선거 관계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중앙선관위는 사건 발생 직후 ‘A의 자작극으로 의심된다’며 수사 의뢰할 것이라고 언론에 알렸다. 이 기사를 작성하는 6월 9일 낮 12시 현재, 사건 발생 만 10일이 지나도록 중앙선관위나 해당 지역 선관위는 ‘A의 자작극으로 의심하는 근거’를 국민에게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다음은 사건 발생 당일, 성복동 사전투표소에서 ‘선거 참관인’ 자격으로 현장을 지켰던 송은숙 씨의 증언.
“5월 30일 오전 7시 4분쯤이었다. 투표소에는 선거 관리인과 참관인을 포함해, 선거 관계자가 10여 명 이상 있었다. 이른 아침이어서 투표소가 한산했다. 투표하는 이들을 선거 관계자들이 세심하게 살필 수 있었다는 뜻이다. A는 부모님과 함께 관외투표를 하러 들어섰다. 가림막이 설치된 기표소에 들어서기 전, A는 회송용 봉투를 벌려보았고, 기표된 투표용지를 발견했다. A가 자작극을 벌일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이 사건은 5월 30일 오전, 경기일보가 특종 보도했다. 대부분 언론은 ‘중앙선관위는 사건 직후 해당 선거인(=A)이 타인으로부터 기표한 투표지를 전달받아 빈 회송용 봉투에 넣어 투표소에서 혼란을 부추길 목적으로 일으킨 자작극으로 의심하고, 수사 의뢰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필자는 중앙선관위가 어떤 근거로 A를 ‘자작극 추정자’로 지목했는지 궁금했다. 현행범이 아닌 이상, 경찰조차 사건 발생 직후에 특정인을 용의자로 지목하는 일은 드물다. 형법 126조에 따르면, 공소제기 전에 특정인의 피의 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범죄 행위(피의사실공표죄)이다. 자신만만한 중앙선관위를 보면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확보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5월 30일 오후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사건에 대한 상세한 해명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없었다.
5월 30일 오후 2시 40분쯤 중앙선관위에 연락했다. 담당 부서인 공보과 이수연 주무관에게 “A를 ‘자작극 추정자’로 본 근거는커녕 사건 해명조차 왜 않는가.”를 물었다.
이 주무관은 “중앙선관위가 A가 의심된다고 언론에 안내한 것은 맞지만 공식 입장문을 내지는 않았다. 추후 공식적으로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근거조차 밝히지 않은 채 A를 ’자작극 추정자‘로 지목한 것은 잘못 아니냐, 빨리 근거를 국민에게 밝혀야 요즘 기승을 부리는 부정선거론이 불식된다.”고 말했다. 이 주무관은 “추후 밝힐 것”이라는 말만 되뇌었다.
필자는 5월 31일 오후 10시쯤 국민신문고를 통해 중앙선관위에 ‘해당 사건 경과를 국민에게 즉각 설명하라’는 민원을 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중앙선관위가 이 사건에 대해 공식 해명하지 않으니까, 선관위가 자신들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에 대해 시간벌기에만 급급하다는 인상마저 국민에게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선관위는 6월 1일 오후, 국민신문고 민원 처리 알림을 통해 “민원 답변을 6월 13일 자정 전까지 주겠다”고 알렸다. 부정선거 의혹은 물론, 국민을 근거 없이 중대 선거사범으로 몰았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선관위는 천하태평이었다. 중앙선관위가 ‘부정선거론 유발자’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6월 5일 오전 9시 10분쯤, 사건 관할인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선관위에 연락해 A를 자작극 추정자로 지목한 근거를 물었다.
수지구선관위 송기환 지도계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사전선거제도가 도입된 이후 이런 일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선관위 직원과 공모하지 않는 이상 원천적으로 발생 불가능하다. A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과 동행했다는 등의 정황도 나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집단 자작극’이라는 말도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A를 자작극 추정자로 표현한 것은 중앙선관위이다. 경기도선관위에서 경기남부경찰청에 이 사건 수사를 공식 의뢰했으며, 언론 대응 등도 총괄하기로 했다. 취재는 그곳에서 하시라.”
선관위가 공모하지 않았으니, A를 자작극 추정자로 볼 수밖에 없다는 투였다. 그는 통화 내내 확신에 차 있었다.
6월 5일 오전 9시 30분, 경기도선관위에 연락했다. 담당자는 김남기 공보계장이었다. 김 계장에게 ① A를 자작극 추정자로 본 이유 ② 수사의뢰서에 A를 자작극 추정자로 적시했는지를 물었다. 김 계장은 “정확히 알아본 뒤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김 계장은 “수사 중인 사항이어서 경기도선관위에서는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 사건 수사를 경기도 용인 서부경찰서로 이첩시켰다. 사건은 수사3팀이 담당하고 있다. 6월 5일 오전, 용인 서부경찰서 수사3팀에 전화했다. 관계자는 “언론 대응은 수사과장이 하고 있다”며 김선삼 수사과장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6월 5일 오후 1시 27분, 김 수사과장에게 전화했다. 김 수사과장은 “명함을 휴대전화로 보내주면 답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필자의 소속을 알린 뒤 ① 경기도선관위가 제출한 수사의뢰서에 A의 자작극 가능성이 명시됐는지 ② 이를 뒷받침하는 관련 증거나 정황을 제출했는지 ③ A를 용인 서부경찰서에서 조사했는지 물었다. ③을 물은 이유는 A가 ‘참고인’ 신분인지 ‘용의자급’ 신분인지 궁금해서였다. 중앙선관위가 언론을 통해 A를 ‘자작극 추정자’로 만천하에 자신만만하게 알렸으니, 수사의뢰서에도 A를 ‘용의자급으로 적시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김 수사과장은 ‘용인 서부경찰서 출입 기자로 (귀하가) 확인되지 않은 분이어서 우리가 답할 수 없다. 경기도경찰청에서 확인하라’고 바로 답했다.
이 사건을 지속 추적 중인 경기일보 취재팀 송상호 기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용인 서부경찰서 출입 기자이다. 송 기자에게 ‘필자가 김 수사과장에게 물은 것’을 전한 뒤, 취재 결과를 필자에게 알려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송 기자는 6월 5일 오후 3시쯤 취재 결과를 필자에게 전화로 알려주었다. “용인 서부경찰서뿐 아니라 경기도선관위 등도 모두 취재했다. 수사 중인 사항이라 답할 수 없다고 했다.”
이상이 ‘성복동 기표용지 사건’ 취재기이다.
신이 아닌 이상, 이 사건의 실체는 그 누구도 아직은 명확히 모른다. ‘자작극 추정자’로 몰린 A가 언론에 “억울하다”며 적극 해명하지 않는 이유를 필자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필자는 A를 직접 취재하고 싶었다. 그가 원치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으면서(않았으면서) 국민을 중대 선거사범으로 몰아간 것뿐 아니라, 사건 발생 만 10일이 지난 6월 9일 낮 12시(기사 작성 시점)까지도 선관위가 그 근거조차 밝히기를 거부하는 것은 ‘정상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선관위가 A를 왜 사건 초기부터 자작극 추정자로 몰았는지 해명할 수 없다면, 선관위는 A뿐 아니라 국민에게 일단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행복과 보호를 존립 목적으로 하는 국가 기관의 올바른 태도이다. 설령 A가 추후 ‘자작극자’로 밝혀져도 마찬가지이다. 결과가 옳더라도 과정이 잘못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중앙선관위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쓰기만 했던 대부분 언론 역시 정도를 걸었다고 보기 힘들다.
이 사건은 ‘회송용 봉투에 들어있던 기표된 투표용지를 누가 넣었는가’에 대한 규명에만 집중할 단계는 지나버렸다. 국가 기관 선관위가 왜 국민에게 객관적 근거조차 제시하지 못하면서(않으면서) ‘한 국민’(A)을 중대 범죄인 취급했느냐에 대한 진상규명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것이 ‘정상 국가’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