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관련 세금 등 제도 개혁 없이는 농업 발전 못 합니다
추신부터.
속칭 '팝콘 각'이 나왔네요.
트럼프는 미국 농산물, 한국 시장에서 전면 개방이라고 했는데, 우리 측은 "쌀과 소고기 추가 개방은 없다"고 했네요. 흠, 누가 맞는 걸까요?
====================================================
미국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미국 농산물 전면 개방을 한국이 수용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서 31일 오전 6시쯤(한국 시간) 밝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1년 차이던 08년, 미국 소 수입을 둘러싸고 ‘광우병 사태’로 나라가 뒤집힐 듯했는데, 이번에는 어떨까요? 당시 미국 소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고 떠들던 이동욱 김규리 김미화 김제동 씨 등 몇몇 연예인들은 이번에 어찌 나올지요.
농민이지만, 저는 미국 농산물 시장 전면 개방에 찬성합니다. 물론 농민은 더 힘들어지겠지요. 하지만 대한민국에 농민만 사는 것은 아니니까.
더 본질적으로 말해서, 현재 한국 농업 발전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미국 농산물이 아닙니다.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법과 제도입니다. 더 정확히는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과, 이에 따르는 세법’ 때문입니다.
제가 사는 곳을 예로 들겠습니다.
이곳 농민의 평균 나이는 70세가 넘습니다. 내년에 환갑이 되는 제가 가장 젊습니다. 그러다 보니, 삶의 의욕이나 진취성 등은 젊은 사람들보다는 떨어지기 쉽습니다. 농민 중 일부는 80세가 넘는 분도 있습니다. 걷기조차 버거운 분들도 있고요. 한데 그런 분들조차도 ’농사를 짓겠다‘고 합니다. 농사가 천직이어서요? 아닙니다, 세금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121조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헌법 121조
①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②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
피치 못해 소작을 시켜야만 한다면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해야 한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나이가 들어 걷기조차 불편한 분들이라면, 젊은 사람에게 소작을 주면 됩니다. 젊은 분들이 의욕적으로 논밭을 대량 경영하면서 농업 현대화를 추진하면 지금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하지만 소작을 주는 순간, 토지 소유자는 대개의 경우 농민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예, 소위 ’부재(不在) 지주‘로 몰려 토지를 팔 때 양도세가 확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일부에서는 농어촌공사에 경작을 위탁해서 ’합법적 소작인‘을 만나면 부재지주를 피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실 겁니다. 하지만 농어촌공사 위탁 경작으로 부재지주가 되지 않으려면, ’8년 이상 위탁 경작‘이 돼야 합니다. 막말로, 농어촌공사에 위탁한 지 7년째 되는 해 급하게 땅을 팔면 부재지주로 몰린다는 뜻입니다.
8년 이상이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느냐? 아닙니다. 8년이 지난 뒤에 다시 농어촌공사에 위탁하려고 해도 최소 임대 기간은 5년 이상입니다. 그나마 농어촌공사를 통해 소개받은 위탁인과 재계약을 할 때나 최소 임대 기간은 3년 이상으로 줄고요.
예를 들어, 농지를 위탁한 지 만 8년이 지나, 다른 위탁 경작자와 소작 계약을 하려면 5년 이상 경작 계약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농어촌공사에 위탁 경작을 맡기면 이런 제약이 있으니, 가능하면 위탁 경작을 맡기지 않고 ’허깨비 같은 몸‘으로도 농사를 짓겠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뭔 8년을 온갖 제약을 다 맞아가면서 기다려야 하나요?
그러다 보니, ’구멍가게 같은 소규모 농업‘만이 나이 든 분들을 통해서 유지되는 겁니다. 농업 현대화를 꿈도 꾸지 못하는 이유도, 걷기조차 힘든 분들이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요.
여기에 더해, 21년 LH 직원들의 ’개발 계획이 잡힌 노른자 땅을 사서 보상비 받을 목적으로 나무를 밀집해서 심은 사건‘이 터지면서, ’토지는 농민만이 살 수 있다‘는 유명무실했던 원칙이 다시 확고해졌습니다.
그 결과, 농지 매매는 사실상 실종된 상태입니다. 나이 든 농민이 무슨 의욕이 있다고 땅을 더 삽니까? 지금 가지고 있는 땅도 경작하기 힘든데.
이런 와중에, 농업 현대화가 될 것 같습니까?
왜 법을 바꾸지 못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토지 매매에서 나오는 차익을 ’없어져야 할 불로소득‘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토지를 대량으로 보유한 이들은 없어야 하며,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런저런 제약을 가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해는 합니다.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땅 면적을 기준으로 본 인구밀도가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 1위이니, 토지 소유에 대해 이런저런 제약을 내릴 수밖에요.
그런 과정에서, 나이 든 농민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재지주로 몰리는 순간 맞을 양도세가 워낙 무서우니 농사로 돈을 벌든 말든, 무조건 경작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농업 현대화를 통한 국가 발전? 그게 내 세금 문제와 완전히 배치된 채로 가면?
노령 농민의 농어촌공사 위탁 경영? 꿈도 꾸지 마세요. 이런저런 제약으로 내가 부재지주가 되는 순간, 양도세는 그 어떤 징벌적 세금보다 높아지게 되니까.
#농산물시장전면개방 #관세협정 #부재지주 #양도세 #구멍가게같은소규모농업